[노컷발리뷰]는 배구(Volleyball)를 가까이서 지켜보는 CBS노컷뉴스의 시선(View)이라는 의미입니다. 동시에 발로 뛰었던 배구의 여러 현장을 다시 본다(Review)는 의미도 담았습니다. 코트 안팎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배구 이야기를 [노컷발리뷰]를 통해 전달하겠습니다.
말 그대로 사랑이 꽃피는 V-리그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지난 19일 제16기 제2차 이사회를 열고 여러 안건에 대해 논의했다. 이사회는 V-리그 운영을 위한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남녀부 13개 팀 단장이 모여 의견을 주고받는 모임이다. 이사회에 앞서 각 팀 사무국장이 참여하는 실무위원회를 통해 이사회 안건을 결정한다.
남녀부 13개 팀 고위 관계자가 모두 참석한 이날 이사회는 지난달 27일 CBS노컷뉴스의 단독보도로 드러난 한국전력의 샐러리캡 최소 소진율 위반에 대한 논의도 포함됐다. 이는 안건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공정배 한국전력 단장의 제안으로 상당히 오랜 논의가 오갔다는 후문이다.
이 자리에서 한국전력의 제안에 남녀부 팀 고위 관계자는 만장일치로 KOVO가 부과한 제재금 3억2500만원을 면제하기로 했다. KOVO는 이사회 결과를 담은 자료에 '이사회에 참석한 한국전력이 깊은 사과와 함께 불가피한 상황을 설명하고 재발 시 어떠한 가중 처벌도 감수하겠다고 밝혔다'며 이사회가 제재금 면제를 결정한 배경을 설명했다.
샐러리캡은 공정한 경쟁을 위해 만든 일종의 보험이다. 선수 보유의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해 샐러리캡을 도입하고, 이 중에서도 70% 이상을 소진하도록 강제했다. 이는 단순히 V-리그에서의 공정한 경쟁뿐 아니라 부족한 국내 배구선수 자원의 확보라는 대의명분까지 고려한 결정이다.
V-리그는 한국 배구의 미래를 포기했다. 적어도 이 자리에서 만장일치로 한국전력의 제재금 면제를 결정한 고위 관계자 모두가, 그리고 13개 팀 모두가 한국 배구의 미래를 포기했다.
단순히 제재금 부과 면제뿐 아니라 샐러리캡 소진율도 2020~2021시즌부터 기존 70%에서 50%로 하향 조정했다. 선수 연봉 제도의 조정으로 샐러리캡이 증액된다고는 하나 소진율의 하향 조정으로 각 팀이 실제 사용할 금액은 현행과 큰 차이가 없다. 더욱이 2022~2023시즌부터는 신인선수의 연봉도 샐러리캡에 포함된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규정 손질이다.
현재 V-리그는 여자부 단장을 주축으로 여자부 분리 운영을 위한 독립 연맹 설립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V-리그 여자부의 인기가 가파르게 상승하자 여자부 6개 팀이 남자부와 별개로 리그를 운영하겠다는 것.
하지만 여자부의 분리 운영은 새로운 연맹의 설립으로 인해 배구단과 KOVO에서 일했던 전·현직 관계자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라는 의도가 숨어있다. 이런 상황에서 V-리그 여자부 운영을 위한 새로운 연맹이 만들어진다면 현재 V-리그가 안고 있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불과 최근까지 많은 V-리그 여자부 팀이 남자부와 비교해 상당히 적은 샐러리캡의 최소 소진율을 가까스로 넘겼다. 이런 상황에서 샐러리캡 최소 소진율 규정 위반에 따른 제재금 면제 결정은 V-리그 여자부의 인기 상승과는 별개로 현재 V-리그에 몸담고 있는 선수의 복지, 그리고 앞으로 V-리그에서 뛰어야 할 꿈나무의 미래를 위협할 위험한 오판이다.
V-리그는 팀만 있어서는 운영이 불가능하다. 팬이 늘고, 관계자가 늘어도 정작 선수가 줄어든다면 V-리그는 존재할 수 없다. V-리그 남녀부 13개 팀은 그저 당장의 난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래를 포기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유명한 역사 명언이 있다. 이는 과거의 일을 거울삼아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V-리그는 과거의 잘못을 그저 덮는 데만 급급하다. 지금 이대로라면 더 나은 V-리그는 단언컨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