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정해인 "10대 연기 마지막일 듯해 절실함 있었죠"

[노컷 인터뷰] 영화 '시동' 상필 역 정해인 ①

지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시동' 상필 역 배우 정해인을 만났다. (사진=FNC엔터테인먼트 제공)
뛰어난 비주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아이돌 최강인('백년의 신부'), 아름다운 외모로 많은 여성에게 사랑받지만 마음이 복잡할 땐 불경을 외는 무사 안민서('삼총사'), 기계·전자·해킹 등 다방면에 밝은 천재 재야감염학자 주현우('블러드'), 유쾌하고 붙임성 있는 성격의 여행 마니아 유세준('그래, 그런거야'), 넉살 좋고 의협심이 뛰어난 경찰 한우탁('당신이 잠든 사이에'), 게임회사에서 일하는 타고난 그림쟁이 서준희('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따뜻하고 강직한 약사이자 싱글대디인 유지호('봄밤').

정해인은 그동안 반듯하고 단정하며 속 깊거나, 밝든 대인관계가 원만하든 웬만하면 남에게 폐 끼치지 않는 착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의 최근 주연작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와 '봄밤'에서는 각각 귀여움과 듬직함을 모두 갖춘 멋진 연하남, 한 여자를 향한 순애보를 가진 남자를 맡았고 그것이 곧 정해인의 대표 이미지가 되었다.

이런 흐름을 고려하면, 영화 '시동'(감독 최정열)의 상필은 우리가 그동안 극중에서 본 정해인 캐릭터와는 영 딴판이다. 할머니와 같이 살며 넉넉지 않게 지내 큰돈을 벌고 싶어 하는 상필은 친구 택일(박정민 분)과 밤거리의 오토바이 드라이브를 즐기고, 학교도 다니지 않는 10대 고등학생이다. 그 또래의 약간 불량한 아이들이 그렇듯 말과 행동이 거칠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해인은 상필 캐릭터를 두고 "정말 재기발랄하고 의욕이 넘치는 진짜 행동파"라면서도 "학창 시절 제 모습과는 좀 다른 것 같다"라고 밝혔다. 그래서 그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이때 나라면 어땠을까, 하고. 특히 이번 상필 역은 아마도 마지막으로 맡는 10대 역할일 것 같아서 절실했다고 말했다.


◇ 재기발랄한 행동파, 그러나 '효자' 상필

정해인은 상필 캐릭터를 처음 보고 "정말 재기발랄하고 의욕이 넘치는 진짜 행동파구나. 효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극중 상필은 할머니(고두심 분)와 같이 사는 설정인데, 정해인은 실제로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고 기억했다. 치매가 오신 후 자신을 못 알아본 것과 영화 속 내용이 똑같아서 "감정이 확 올라올 때가 있었"고, "억누르느라고 조금 신경 썼다"라고 밝혔다.

상필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네 형 동화(윤경호 분)를 따라갔다가 대부업체에서 일하게 된다. 처음에는 생각보다 그렇게 무서운 일이 아니면서도 돈을 쉽게 벌어 좋아하지만, 점점 이 일의 위험함을 깨닫는다. 사사건건 엄마와 부딪혀 가출까지 하는 택일과 달리 별문제 없어 보이는 상필이 어쨌건 자진해서 비행하는 것이 이해됐는지 궁금했다.

정해인은 "그게 무슨 일인지 정확히는 몰랐을 거다. 험난하고 험악할 줄 알았는데 (초반엔) 생각보다 괜찮았고, 하다 보니까 아닌 거다. 이면을 다 봤을 때 좌절하고 후회하는 장면이 나온다. 글로벌 파이낸셜의 다른 씬들이 편집되긴 했다. 워낙 딥(deep)하게 그려져서… (채무자를) 쫓아가고 잡아 와야 하고 돈을 받아야 하니까 상필이도 점점 그걸 깨닫는다. 돈 빨리 벌고 이 사회에서 나가야 한다고"라고 설명했다.

정해인은 '시동'에서 의욕충만 반항아 상필 역을 연기했다. (사진=외유내강)
글로벌 파이낸셜에서 일하는 '형들' 씬이 편집됐다고. 상필이 글로벌 파이낸셜에 왔을 때 면접 보던 날이나, 서로 장난치는 것들이 빠졌다. 정해인은 "사장님에 대한 공포, 민재 형에 대한 무서움을 더 극대화하기 위해서 가벼운 농담 부분을 쳐내신 것 같더라. 궁지로 몰아붙여 (상필을) 후회하게 만드는 거라서 편집했다고 (감독님이) 말씀해주셨다"라고 말했다.

상필은 정육점 주인에게 돈을 받으러 갔다가 맞고, 분노가 차올라 복수하려고 한다. 정해인은 "택일이랑 다르게 상필이는 뭔가 주저하는 모습이 나온다. 택일이는 그냥 하는데, 상필이는 위압감이 들지도 않고. 계속 그러다가 푸시가 들어오니까 등 떠밀려서 하는데 (상대도) 결국 (제가) 못할 것 같으니까 쑤시라고 하지 않나. 복합적인 감정인 것 같다. 많이 괴로웠다. 칼을 든 순간에도 엄청난 갈등이 와서"라고 밝혔다.

극중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 정해인은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고 했다. 그는 "이미지 컨트롤, 이미지 트레이닝도 되게 중요한 것 같다. 근데 대본에 다 답이 있기 때문에 대본을 미친 듯이 보면 된다. 계속 읽고 상상하면서 읽고, 걸어보면서 움직이면서 읽고, 왜 이렇게 말했는지 생각해 보면 풍성해지더라"라고 말했다.

◇ 열여덟 상필과 서른다섯 지호를 오가던 시간

1988년생인 정해인은 올해 서른둘, 1987년생인 박정민은 서른셋이다. 30대 초반 청년들이 10대 소년을 연기하는 데 어렵진 않았을까. 정해인은 "아이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냥 10대 후반의 철없고 어설프고 의욕이 앞서는, 패기 왕성한 아이처럼 보이면 좋겠다고 (감독님이) 말씀하셨다"라고 전했다.

'시동'의 '의욕충만 반항아'는 그동안 봐오던 익숙한 정해인의 이미지가 아니다. 정해인은 "그건 (기존) 배역을 좋아해 주시고 (그게) 두드러지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 같은데, (저는) 다양한 작품 통해서 여러 가지 모습 보여드리는 게 더 즐겁다"라며 "저는 다 하고 싶다. 제가 보여드리지 못한 게 많다"라고 말했다.

상필이 본인의 10대 때와 닮은 부분이 있는지 묻자 정해인은 "제 학창 시절 모습과는 좀 다른 것 같다. 저는 좀 어중간한 보통 아이였다. 유행에도 민감하고 친구들 따라 하는 거 좋아하고 어울려 다니는 거 좋아한다. 외향적이거나 튀지 않고 내성적인 편이었던 것 같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상필도 어떻게 보면 선한 역이었다. 철이 없고 표현방식이 그냥 그런 아이일 뿐이지. 그래서 크게 어렵거나 이질감이 들진 않았다"라고 전했다.

'시동'에는 파격적인 단발머리로 변신한 마동석(거석이 형 역)과 좀처럼 눈 뗄 수 없는 샛노란 머리와 새빨간 머리를 한 박정민과 최성은(소경주 역) 등 현란한 헤어스타일이 나온다. 본인은 머리에 욕심부리고 싶은 생각 없었냐는 질문에 정해인은 "해봐야 앞머리 올리는 것밖에 없어서…"라며 웃었다. 상필까지 굳이 머리에 변화를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MBC '봄밤'을 촬영하고 있어서 머리를 바꾸기 힘들었다.

정해인은 '시동'으로 박정민과 함께 단짝 또래 친구 사이를 연기했다. (사진=외유내강)
'봄밤'에서는 서른다섯의 싱글대디로, '시동'에서는 열여덟 반항아 고등학생으로 변해야 했던 정해인은 "되게 재미있었다"면서도 "절실함이 있었다. 왠지 10대 연기는 ('시동'이) 마지막일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학생을 연기하는 게 멀어질 수밖에 없어서…"라며 아쉬워했다. 그는 "앞으로 제가 촬영할 드라마도 나이대와 직업군이 있기 때문에"라며 "좋게 봐주신다면 새로운 변신을 할 수 있겠지만 하면서도 본능적으로 (10대 연기는) 마지막이겠구나 싶었다. 학원물은… 글쎄 안 들어올 것 같다. 불러주신다면 하겠다"라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상반된 두 캐릭터를 왔다 갔다 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도 정해인은 "되더라. 신체적으로는 좀 힘든 부분이 있었는데 정신적으로는 거기('봄밤')서 못하는 건 여기서 할 수 있고, 여기('시동')서 못하는 건 거기서 할 수 있었다. 좋게 말하면 재미있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 박정민과는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사이

정해인은 '시동'에서 박정민과 오랜 동네 친구 사이를 연기했다. 둘의 관계가 어떻다고 봤냐는 물음에 정해인은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사이. 서로 욕하거나 욕을 들어도 그냥 호칭 부르는 것처럼 상처받지 않는 그 정도의 관계라고 생각했다. 정말 친하고, 상필이 정말 의지할 수 있는 또래 친구. 떠난다고 하니까 붙잡고 싶은"이라고 설명했다.

택일이 가출한다고 했을 때 상필이 만류하는 장면은 여러 가지 버전으로 찍었다. 강한 어조로 거칠게 한 것도 있었고, 농담처럼 가지 말라고 하는 것도, 쿨하게 가라고 하는 것도 있었다고. 정해인은 "정민이 형이랑 실제 촬영장에서는 그냥 눈빛으로도 되게 통했던 것 같다. 정민이 형은 씬을 풍성하게 해주는 애드리브를 많이 했다. 움직임으로도 애드리브를 한다. 그런 게 되게 좋았다"라고 말했다. 자신은 아직 여유가 없어서 대사를 잘 지키고 상대의 애드리브를 받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

정해인은 박정민을 데뷔작 '파수꾼'(2011) 때부터 좋아한 팬이다. 연기를 꾸준히 한다면 언젠가 한 번쯤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번 '시동'에선 예상보다는 함께 촬영한 장면이 적었다. "오토바이 타는 것도 다 뒤통수만 보고 연기해야 하는 거니까…"라는 정해인의 말에 일순간 웃음이 터졌다.

정해인은 "제가 열심히 한다면 다른 작품에서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분명히 저 말과 행동이 대본에 쓰여 있는 것일 텐데 그걸 너무 생동감 있게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표현하더라. ('파수꾼' 때) 정민이 형이 20대 중반인데 저걸 표현하는구나 하고 정말 놀랐다. 평소에 이런 얘기는 민망해서 서로 잘 안 한다"라고 웃었다.

이어, "형이랑 수다와 대화가 이어지진 않았지만, 현장에서 가만히 있어도 불편하지 않았다. 침묵이 어색해서 형한테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걱정하지 않았다. 공기 자체가 편했다. 형이 좀 편하게 만들어준 것 같다. 진짜 친구같이 대해주니까 거부감이 안 들었던 것 같다"라고 전했다. <계속>

배우 정해인 (사진=FNC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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