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화성 8차 직접 조사 나서면서 경찰과 갈등 왜?

경찰, 수사 중이라며 검찰의 자료 요청 수차례 거부
검찰, 이춘재 이감 후 경찰에 안 알려 허탕치게 만들어
박준영 변호사 "검경이 서로 못 믿으니까 이런 일 벌어져"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 윤모 씨 재심 청구 기자회견에서 윤 씨가 자리로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 씨, 박준영 변호사.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검찰이 재심이 청구된 화성 8차 사건에 대해 직접 조사에 나서면서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과 갈등을 보이고 있다.

14일 검찰과 경찰 등에 따르면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돼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하는 윤모(52) 씨는 지난달 13일 수원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곧바로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필수적인 절차에 따라 수원지검에 의견 제시를 요청했다.

검찰은 4일 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남부지방경찰청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넘겨받아 검토에 들어갔다.

이 사건의 핵심은 ▲이춘재의 자백으로 인한 새로운 증거, ▲고문 등 강압 수사에 의한 허위 자백 의혹, ▲결정적인 물증인 국과수 감정 의혹 등 크게 세 가지다.

하지만 경찰은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과거 기록과 이춘재 자백을 제외한 수사 자료를 검찰에 넘기지 않았다.

검찰은 경찰에 구두로 수차례 수사 자료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하자 직접 국과수에 당시 감정과 관련한 자료 확보에 나섰다.

검찰은 지난달 29일부터 국과수에 수차례 자료 제출을 요구했으나 불응하자 지속적인 설득으로 지난 9일에야 받아냈다.

그동안 윤 씨의 재심을 맡고 있는 변호인단은 지난 4일 검찰에 직접 조사와 재심 관련 의견을 신속히 제출해 달라는 취지의 촉구 의견서를 제출했다.


검찰은 또 지난 9일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춘재를 직접 조사하기 위해 수원구치소로 이감 신청하고 경찰에 알렸다.

경찰은 이날 부산에 내려가 이춘재를 조사한 뒤 다음 날 다시 찾았다가 분통을 터뜨렸다. 검찰이 이춘재를 이감한 후에는 알려주지 않아 허탕을 친 것이다.

◇ 경찰, 검찰의 직접 조사에 불편한 기색 감추지 못해

검찰은 지난 11일 브리핑을 열고 전담조사팀을 꾸려 이 사건을 직접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경찰에서는 검찰이 직접 조사를 명목으로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갈등 국면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시도 또는 중복 수사 아니냐는 시각을 내비쳤다.

검찰은 이에 대해 "전혀 아니다"며 "재심청구인 측의 요청과 법원으로부터 재심 관련 의견 제시를 요구받은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직접 조사에 착수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다음 날 검찰이 국과수 감정 결과가 조작된 사실을 확인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검찰은 오보 대응 및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는 중요사건인 점을 고려해 좀 더 구체적인 사실을 공개했다.

검찰은 또 화성 8차 사건 당시 장모 형사 등 3명의 수사관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윤 씨에게 잠을 재우지 않는 등 가혹 행위를 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처음으로 확보했다.

장 형사 등은 앞서 이뤄진 경찰 조사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이라는 과학적 근거가 있어 가혹 행위를 할 이유가 없었다"며 반박했었다.

이에 경찰은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있다. 국과수 감정서 조작과 관련한 자료를 확보해 알고 있었지만, 수사 중이어서 밝히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아직 수사 중인 상황에서 어떤 근거로 국과수 감정서가 조작됐다고 확정지어서 밝혔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경찰 관계자는 "검찰이 얼마나 수사했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걸 검증하고 확인한 다음에 결론을 말하는 게 수사기관으로서 바람직한 것 같다"라며 "어떤 근거로 국과수 감정서가 조작됐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라고 강조했다.

윤 씨의 재심을 맡고 있는 박준영 변호사는 "경찰은 수사 중이라는 논리로 본인들이 정보 관리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을 해 버린 것 같다"라면서 "검경이 서로 못 믿으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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