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총리로 적극 검토되던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의원(5선)이 지난 주말 청와대에 "문재인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총리 자리를 고사하겠다"는 뜻을 전달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정세균 카드'가 급부상했다.
하지만 정작 정세균 전 의장과 청와대의 막판 고심은 깊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의원의 고사 의사를 전달받은 청와대는 집권 중반기 '경제'와 '정국 안정'을 이끌 총리 적임자로 정 전 의장을 낙점했지만, 현재 정 전 의장측으로부터 명확한 수락 의사를 받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총리 후보자에 대한 검증동의서가 청와대에 접수된 것으로 전해졌지만, 정 전 의장측은 여러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16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국회의장으로서 헌법을 수호하고 탄핵 가결에 핵심 역할을 한 정 전 의장이 가장 고민하는 지점은 차기 총리로서 본인의 역할과 책임감이다.
집권 초반과 달리 개혁 동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각종 개혁 입법은 산적해 있고, 청와대를 향한 검찰의 수사(하명수사, 감찰무마 의혹 등)가 진행되는 등 총리로서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도 부담이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경제 실정 프레임을 내세워 더욱 공세를 높일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총리직 수락을 고민하게 만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인 출신으로 참여정부 시절 산업자원부 장관까지 지내는 등 민주당 내 '경제통'으로 꼽히지만, 글로벌 보호무역 강화 추세와 미중 무역갈등, '인구절벽' 등으로 당시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권 관계자는 "정 전 의장은 현 상황이 녹록치 않다고 판단하면서 거기에 따른 책임감을 크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 전 의장이 문재인 정부 태동에 큰 힘을 보탠 만큼 이 정부의 성공을 누구보다도 바라는 사람"이라며 "본인이 총리로 가는 게 보탬이 될 지 등을 두고 깊은 고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헌법상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을 견제하는 국회의장 출신(의전서열 2위) 인사가 총리(의전서열 5위)로 자리를 옮긴 전례가 없다는 점도 부담이다.
당장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국회 무시'와 '삼권분립 훼손'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15대 총선 때부터 전북 무주·진안·장수에서만 4선을 내리 역임하고 2012년 19대 총선부터 서울 종로로 지역구를 옮겨 야권 거물들을 잇달아 꺾으며 정치적 입지를 다졌던 정 전 의장 입장에서는 당장 지역구를 내려놓는 문제도 부담이다.
'정치 일번지'라는 상징성이 짙은 종로 지역 주민들의 민심이 내년 총선에서 어디로 향할 지 예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 전 의장은 최근까지도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해 지역 표심 잡기에 공을 들여왔다.
이와 함께 '총선 뒤 대권 출마'라는 본인의 정치적 타임테이블도 변경해야하는 고민도 깊은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정세균 카드'가 예상보다 일찍 조명받는 것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정 전 의장이 어떤 결단을 내리든지 그 뜻을 존중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의전 문제 등에 대한 외부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면서 정 전 의장의 빠른 결단을 직간접적으로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