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오늘 방한… 북미대화 모멘텀 살릴 수 있을까

북한, 최근 '크리스마스 선물'까지 언급하며 릴레이 담화
"북한도 초조감 노출한 것"… 연내 대화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
"안보리 제재 완화, 미국이 독자적으로 할 수는 없다"
"미국, 연말 시한 얽매이지 않고 일정 잡으며 설득하려 해"
미국, 최근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유연한 접근' 강조
북한이 응할지는 미지수… 성사돼도 결과는 알 수 없는 상황
14일 "전날 서해 위성발사장서 중대한 시험" 발표… '핵전쟁 억제력' 언급
같은 날 북한군 총참모장은 "자극적인 언행 삼가야 연말 편할 것" 경고

지난 8월 21일 외교부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오른쪽)이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북핵 수석대표 협의를 위해 미 국무부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왼쪽)와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의 미국 측 대표인 국무부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15일 오후 한국을 찾는다.

북미대화가 난항에 빠진 가운데 국무부 부장관으로 지명된 그가 판문점에서의 물밑 접촉 등을 통해 대화 모멘텀을 살릴 수 있을지 기대되지만, 방한 전날 북한이 서해 위성발사장에서 '중대한 시험'을 또 진행했다며 경고성 담화를 내는 등 결과는 '두고 봐야' 안다는 것이 중론이다.

정부는 비건 대표가 15일 2박 3일의 일정으로 한국을 찾아, 다음 날 외교부 조세영 1차관과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김연철 통일부 장관을 만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 국무부 또한 "비건 대표가 한국과 일본의 카운터파트(대화 상대방)들과 만나 북한에 대한 긴밀한 조율을 계속할 것이다"고 밝혔다. 그는 방한 뒤 일본으로 가 외무성 다키자키 시게키(瀧崎成樹) 아시아대양주국장 등을 만날 것으로 보인다.

비건 대표는 지난 8월에도 방한해 이도훈 본부장과 김연철 장관 그리고 청와대 국가안보실 김현종 2차장 등을 만나 현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당시 판문점을 통한 대북 접촉도 타진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성사되진 않았다.

이후 10월 초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비건 대표와 북한 외무성 김명길 순회대사를 각각 대표로 하는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이 열렸지만, 북한이 "미국은 구태의연한 태도로 기존의 입장을 고집했으며, 아무런 타산이나 담보도 없이 연속적이고 집중적인 협상이 필요하다고만 했다"며 결렬을 발표하면서 북미대화는 다시 냉각기에 접어들었다.

그 뒤 북한은 앞서 언급했던 '연말 시한'을 잇따라 거론하며 계속 담화를 발표했고, 급기야는 지난 3일 외무성 리태성 미국 담당 부상이 "남은 것은 미국의 선택이고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하는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에 달려 있다"고 경고하기까지 이르렀다.

다만, 국가정보원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북한이 스스로 설정한 '연말 시한'이 다가오자 이처럼 무더기로 담화를 내며 초조감을 노출하고 있고, 수위도 조절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래픽=연합뉴스 제공)
연말이 되기 전에 북한도 대화를 원한다는 뜻인데, 그러려면 비건 대표의 이번 방한이 마지막 기회다. 따라서 북한이 이른바 '판문점 물밑 접촉'에 호응할 가능성도 열려 있고, 응한다면 카운터파트(대화 상대방)는 비건 대표가 이미 자신의 상대로 지목한 외무성 최선희 제1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북미간의 이같은 접촉이 성사돼도 그 속성은 문제를 곧장 해결할 수 있는 '딜'보다는 상황 관리와 '연말 시한부'를 넘기는 차원일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최용환 안보전략연구실장은 "북한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한미연합훈련의 중단과 전략자산의 반입 금지를 포함한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와 제재 완화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연합훈련 문제를 검토해볼 수는 있지만, (유엔 안보리의) 제재 완화는 미국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때문에 미국이 줄 수 있는 것은 크지 않고, 그런 의미에서 보면 '연말 시한'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이를 넘겨 새로운 일정을 잡아 나가고, 그 일정 속에서 북한을 설득해내려고 하는 것이 미국의 기본적인 입장이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그러려면 북한이 얼마나 (대가를) 받을 수 있을지, 그리고 그것을 받으려면 어느 정도의 진전에 대한 언질을 줄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쟁점이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안보전략연구원은 비건 대표가 방한해 실무협상의 일정 정도에만 합의해도 '연말 시한'은 넘어갈 수 있지만, 그 대신 북한이 2020년 말에 열리는 미국 대선이 본격화되기 전 최대한 많은 양보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태도 변화는 일정 부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11일(현지시각) 미국의 요구로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도 켈리 크래프트 유엔주재 미국 대사가 동시적이고 병행적 조치 그리고 '유연한 접근'을 강조하며 북한의 협상 복귀 촉구에 무게를 싣기도 했다.

그는 "우리는 포괄적인 과정에 관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여러 번 말했고, 병행적인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고, 합의를 이뤄내기 위한 구체적 조치를 동시적으로 취할 준비가 돼 있다.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는데 있어 유연할 준비도 돼 있다"고 말했다.

이는 비건 대표가 과거 북미협상의 물꼬를 트기 위해 '선 비핵화, 후 제재 해제' 요구에서 물러설 수 있음을 시사하면서 언급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많은 재량권을 받았다며,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유연한 접근'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접촉이 성사돼 잘 이뤄진다면 연말의 긴장 완화와 상황 관리가 가능해지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북한이 이달 하순 열리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등에서 이른바 '새로운 길'을 천명할 가능성도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일 북한 조선중앙TV가 보도한 함경남도 경성군 중평남새온실농장과 양묘장 조업식 현장에서 포착된 북한 인민군 박정천 총참모장(맨 왼쪽), 김명식 해군사령관(가운데), 김광혁 항공 및 반항공군 사령관(맨 오른쪽). (사진=연합뉴스)
특히 비건 대표의 방한을 하루 앞둔 14일 북한은 "전날 서해 위성발사장에서 대단히 중대한 시험이 진행됐다"며 "최근에 연이어 이룩하고 있는 국방과학 연구성과들은 믿음직한 전략적 핵전쟁 억제력을 더 한층 강화하는 데 적용될 것이다"고 밝혔다.

이날 밤엔 인민군 박정천 총참모장이 "거대한 힘을 비축했다"며 "미국을 비롯한 적대세력들은 우리를 자극하는 그 어떤 언행도 삼가해야 연말을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고까지 경고함에 따라, 접촉의 성사 여부와 결과는 더욱 예측하기 힘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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