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농구 대세' 무엇이 허재의 피를 일깨웠나

8년 만에 kt 6연승 이끈 에이스 허훈

'허, 쟤가 허재 아들이래' kt 가드 허훈이 11일 SK와 원정에서 돌파한 뒤 상대 최부경의 수비에 동료에게 패스를 하고 있다.(잠실=KBL)
피는 못 속이는 걸까. '농구 대통령' 허재 전 국가대표 감독(54)의 아들이 올 시즌 프로농구를 주름잡고 있다. 부산 kt 에이스 허훈(24·180cm)이다.

'2019-2020 현대모비스 프로농구'에서 허훈은 국내 선수 득점 1위(16.4점)를 달린다. 리그 전체로도 6위, 어지간한 외국인 선수들을 앞선다. 3점슛도 경기당 2.3개로 전체 3위에 올라 있고, 성공률도 전체 7위(39%)로 슛 감각도 나쁘지 않다.

도움은 리그 전체 1위(7.3개)를 질주하고 있다. 득점뿐 아니라 동료들에게 기회도 잘 만들어주고 있다는 뜻이다. 아버지의 전성기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지만 득점은 물론 도움에도 일가견이 있던 허 전 감독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허훈은 11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서울 SK와 원정에서도 존재감을 뽐냈다. 리그 1위를 달리는 SK를 상대로 양 팀 최다 9도움을 배달했고, 3점슛 2개를 곁들이며 18점으로 팀의 81 대 68 승리를 이끌었다.

덕분에 kt는 거침없는 6연승을 달렸다. kt의 6연승은 2011년 11월 이후 8년 1개월 만이다. 이 기간 허훈은 평균 18.7점 7.8도움에 3점슛도 3.2개를 꽂았다. 12승9패가 된 kt는 단독 3위로 뛰어올랐다. 2위 안양 KGC인삼공사(12승8패)와는 0.5경기, 1위 SK(14승6패)와는 2경기 차다.

허훈은 올 시즌 맹활약으로 올스타전 팬 투표 1위를 달리고 있다. 12일 오전까지 유일하게 2만 표를 넘겼다. 2위 전주 KCC 송교창과는 3000여 표 차로 넉넉하게 앞서 있다.

올 시즌 장족의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 2017-2018시즌 허훈은 32경기 10.6점 4.3도움 2리바운드 3점슛 0.9개로 데뷔 시즌을 보냈다. 2년차에는 11.3점 4.1도움 2.3리바운드 3점슛 1.6개였다. 재능은 인정받았지만 무언가 아쉬움이 남았는데 올 시즌 기량이 만개한 것이다.

지난 9월 2019 FIBA 농구월드컵 순위결정전 한국과 코트디부아르의 경기에서 허훈이 슛을 시도하는 모습.(사진=대한농구협회)
무엇이 달라진 걸까. 허훈은 농구 월드컵을 꼽았다. 지난 9월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2019 국제농구연맹(FIBA) 농구 월드컵에 출전한 경험이 자신을 성장하게 했다는 것이다.


11일 경기 전 만난 허훈은 "비록 많이 뛰지는 못했지만 세계 강호들과 대결하면서 많이 배웠다"고 했다. 특히 코트디부아르와 마지막 경기가 인상적이었다. 당시 허훈은 25분여를 뛰며 고비마다 3점포 4개를 꽂는 등 알토란 16점으로 승리를 이끌었다. 이전까지 4경기에서 5분도 뛰지 못했던 허훈이었다.

한국 농구가 25년 만에 거둔 월드컵 승리. 이 경기가 사실상 허훈이 농구에 눈을 뜨게 한 계기가 된 셈이다. 허훈은 "솔직히 지난 시즌 뒤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다"면서 "그러나 농구 월드컵을 계기로 자신감을 얻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런 자신감이 올 시즌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시즌을 치르면서 점점 발전하고 있다. 사실 허훈은 지난 1일 SK와 홈 경기 때는 좋지 않았다. 30분여를 뛰며 8점 6도움을 올렸다. 팀은 이겼지만 승부처인 4쿼터에는 김윤태가 팀을 이끌었다. 이에 허훈은 "당시는 상대 집중 수비에도 혼자 볼을 운반하려다 체력이 떨어진 부분이 있었다"면서 "오늘도 상대 견제가 예상되는 만큼 대비하겠다"고 했다.

허훈의 각오는 현실이 됐다. 이날 허훈은 무리한 플레이보다 동료들과 유기적인 호흡을 보였다. 1쿼터부터 빠른 패스로 양홍석, 김민욱 등 속공 득점을 도왔다. 상대 문경은 SK 감독은 "1쿼터 너무 많이 속공을 내준 게 패인"이라고 했을 정도. 이후에도 허훈은 바이런 멀린스와 2 대 2 플레이, 김영환의 외곽슛을 어시스트하는 등 이타적인 모습이 돋보였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기회도 많아졌다. 속공 때 열심히 달리고, 날카로운 돌파로 골밑 득점을 쌓은 허훈은 외곽에서도 불을 뿜었다. 특히 4쿼터 초반 최장수 외인 애런 헤인즈를 농락시킨 화려한 개인기가 압권이었다. 페이크 동작으로 헤인즈를 뜨게 한 뒤 부딪히며 깔끔하게 뱅크슛을 성공시킨 3점 플레이였다.

'부전자전' 허훈이 지난달 홈 경기에서 시투자로 나선 아버지 허재 전 국가대표 감독과 얘기를 나누는 모습.(사진=KBL)
이런 활약에 부모도 반색이다. 요즘 예능 프로그램 대세인 허 전 감독은 워낙 칭찬에 인색한 편. 허훈은 "아버지는 경기에 대해 가타부타 말씀이 없으시다"면서도 "그저 '다치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격려하신다"고 귀띔했다. 이어 "어머니는 정말 좋아하신다"고 웃었다.

프로농구 선배인 친형 원주 DB 허웅(26·185cm)을 능가할 기세다. 2년 먼저 데뷔한 허웅은 통산 10.1점 2.8도움 2리바운드를 기록 중인데 올 시즌은 부상 여파로 9경기 9.3점 1.6리바운드 1.2도움의 성적이다. 허훈은 "형은 워낙 잘 하는 선수로 올 시즌 부상이 있었지만 곧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한 점도 적잖다. 서동철 kt 감독은 "올 시즌 허훈이 정말 잘 해주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볼 소유 시간이 많은 점 등은 개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허훈이 많은 득점을 해서 이기는 것도 좋지만 다른 선수들도 고루 득점해서 이기는 게 팀을 위해 더 좋다"는 것이다. 혼자 잘 하는 것보다 전반적으로 팀 밸런스를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허훈도 이를 인정한다. 이날 경기 후 허훈은 "나 혼자 볼을 운반하고 할 때는 체력적으로 힘들다"면서 "그러나 김윤태 형이 투 가드를 이루면서 많이 도와줬다"고 말했다. 이어 "나도 동료들을 위해 스크린을 서면서 경기가 풀렸다"고 덧붙였다.

올스타전 팬 투표 1위에 대해서도 허훈은 "올 시즌 농구가 잘 풀리다 보니 따라온 것 같다"면서 "기분이 좋고, 우리 팀 모두 다같이 잘 되면 좋겠다"고 미소를 지었다. 허훈이 아버지를 이어 농구 대통령의 길을 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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