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작가는 작업을 통해 호주의 탄생 배경 등에 대한 기존의 낭만주의적 개념을 경계하고 의심하며 일방적인 역사관이 놓친 시선을 복원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시대와 국경을 초월, 현 세계의 질서를 재고할 수 있는 다니엘 보이드의 이러한 작업관이 담긴 신작을 선보인다.
‘심연의 경험은 그 심연의 안과 밖에서 이루어진다’는 프랑스 철학가 에두아르 글리상(Édouard Glissant)의 말에서 출발하는 본 전시는 빛과 어둠, 지식과 무지, 정보와 비정보(non-information) 등의 양극 사이에서 진동하는 작가의 신작 회화로 꾸려진다. 우리가 우주를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호기심을 놓치지 않는 작가는 인류의 집단적 지성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란 바로 복수성(plurality)이라 강조한다.
그에 따라 역사란 결국 주관적으로 규범화된 서사라는 사실에 문제의식을 제기하며 유럽중심적 사고와 관점으로 서술된 역사를 끊임없이 반문한다. 특히 작가는 호주 원주민 출신이라는 자신의 배경에 기대어 호주의 역사를 새로운 관점으로 꾸준히 재해석해왔는데, 호주의 역사 형성 과정에서 주요 역할을 한 다양한 이미지를 차용해 회화를 제작한다.
다니엘 보이드의 회화는 내포한 메시지를 명확하고 완전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회화의 상당부분이 풀(glue)로 찍은 하얀 점으로 구성되어, 그 내용의 정보값 중 일부를 가리는 양상을 띤다. 이때 각 점은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를 재현하는데, 작가는 이처럼 수많은 렌즈를 장착함으로써 이 세상을 단일의 역사 구조가 아닌 다수의 서사로써 읽어내고자 한다.
보이드 회화의 표면을 뒤덮은 점들은 호주 원주민들의 전통 회화기법을 모방한 것으로, 작품의 내용뿐 아니라 형식 역시 작가의 사적 뿌리에 닿아있는 셈이다. 과거 호주 원주민의 전통 회화의 점들이 ‘상징적인 지혜의 운반체’로 기능했다면, 보이드의 회화에서 점들은 일종의 광학 장치나 다름없다. 각 점은 흑과 백, 어둠과 빛 사이에서 계산된 양의 정보를 시각화하여 전달하는 기능을 맡는다. 이로써 감상자는 이렇게 작가가 마련해놓은 양과 음 사이의 영역을 적극적으로 연결시키면서 회화를 독해하고 과거와 현재 사이의 시점을 재조율하게 된다.
이렇듯 다니엘 보이드의 작업은 복수의 관점 및 시점을 배양하며 단일한 혹은 즉각적인 의미의 전달을 보류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 어둠 내지는 미지의 영역을 각자의 지식, 배경, 상상력으로 채워 밝히며 새로운 의미의 가능성을 타개해야 한다고 작품을 통해 피력하고 있다.
[작가소개]
다니엘 보이드(b. 1982, 호주 케언즈 출생)는 시드니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2005년 이래 전시 활동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주요 참여 전시 이력으로는 2015년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 《모든 세계의 미래(All the World’s Futures)》, 2014년 모스코 국제비엔날레 《꿈을 꿀 때(A Time for Dreams)》, 2012년도 제7회 브리즈번 아시아-태평양 근현대미술 트리엔날레를 비롯하여 2010년 시드니 MCA에서 열린 《여기서 우리는 그들을 해적이라 부른다(We Call Them Pirates Out Here)》, 2008년 브리즈번 현대미술관(Queensland Art Gallery | Gallery of Modern Art)에서 열린 《현대 호주: 낙관주의(Contemporary Australia: Optimism)》, 그리고 2007년 캔버라의 호주 내셔널 갤러리에서 열린 《문화 전사: 원주민 미술 트리엔날레(Culture Warriors: National Indigenous Art Triennial)》 등이 있다. 그의 작품은 런던 자연사 박물관, 캔버라의 호주 내셔널 갤러리, 호바트의 타즈마니아 박물관, 멜버른의 내셔널 빅토리아 갤러리, 시드니의 뉴 사우스 웨일스 아트 갤러리 등 다수의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