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준비한 '민간위탁 노동자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이하 가이드라인)을 5일 공개했다.
◇정부도 정규직 전환 포기한 혼란스러운 민간위탁…가이드라인으로 노동권 보호키로
공공기관의 일을 외부의 법인이나 단체, 개인에 맡기는 민간위탁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작은 정부'를 강조해온 추세에 따라 보건·복지 분야를 중심으로 급속히 증가해왔다.
하지만 대부분 민간위탁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비교적 열악하고 고용도 불안한데다, 낮은 위탁 단가 탓에 임금체불 등 노동관계법 위반 사례도 자주 발생했다.
또 민간위탁 자체가 과도한 이윤 추구나 횡령 등 비리를 부르기 쉽고, 공공부문이 직접 인력을 고용하는 것보다 오히려 비용이 더 증가한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정부는 2017년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 과정에서 1단계 중앙정부, 지자체, 공공기관, 2단계 지자체 출연ㆍ출자기관, 공공기관의 자회사에 이어 3단계로 민간위탁기관의 정규직화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난 2월 민간위탁 업무를 공공부문으로 흡수해 종사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대신 민간위탁 사업은 그대로 둔 채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로 입장을 바꿨다.
"법령 근거, 자치분권, 사무의 다양성 등으로 인해 위탁사무를 직접 수행(정규직 전환)하는 방안에 대한 일률적 기준 설정, 구속력 있는 지침 시달은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해부터 연구용역 및 실태조사를 진행한 끝에 이번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다만 노동부 권병희 공공기관노사관계과장은 "현행 수행하고 있는 민간위탁 사무를 현행방식으로 유지할지, 직영으로 전환해서 정규직으로 전환할지 여부는 계속해서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탁기관에 관리위원회 설치·수탁기관은 노동조건 보호할 확약서 제출해야
정부가 내놓은 가이드라인을 보면 우선 민간위탁 사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위탁기관에 내·외부 전문가로 구성하는 '민간위탁 관리위원회를 두도록 바꾼다.
특히 전문적이고 공정하게 운영되도록 노동조합에서 추천하는 전문가도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민간위탁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위탁기관이 수탁기관을 모집, 선정할 때 '민간위탁 노동자 근로조건 보호 관련 확약서'(이하 보호확약서)를 제출받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했다.
보호확약서에는 △책정된 임금의 지급 △ 퇴직급여 등 법정 사업주 부담금 관련 의무 준수 △사전승인 없는 재위탁 등 금지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령 준수 등의 내용을 담는다.
위탁기관은 수탁기관 및 수탁기관 노동자와의 소통 창구를 마련해 노동조건이나 복지, 임금 등 처우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애로사항을 청취하도록 했다.
특히 언제든 계약이 종료돼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민간위탁 노동자의 특성을 감안해 계약서에 수탁기관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고용유지 노력 및 고용승계 하도록 명시하고, 근로계약기간을 설정하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수탁기간과 동일하게 설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위탁기관이 수탁기관에 지급한 노무비를 노동자가 아닌 사업주가 가로채지 못하도록 앞으로 위탁기관은 계약금액 중 노무비를 별도로 떼내어 수탁기관의 전용계좌에 지급해야 한다.
위탁기관은 이러한 내용을 담은 수탁기관이 제출한 보호확약서 이행 여부 등을 수시로 지도·점검해야 하고, 재계약할 때 지도·점검 과정에서 발생한 시정요구나 관련 조치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
만약 수탁기관이 계약 조건을 위반하거나 중대한 불이행 사항을 일으키면 계약을 해지하거나, 향후 수탁기관을 정할 때 평가에서 감점 등 제재 할 수도 있다.
정부는 공공부문 민간위탁 사무가 다양해 관련 노동자들의 임금·복지 수준도 서로 다른 점을 고려해 내년에 실태조사 및 연구요역을 실시한 뒤 적정 임금 수준, 적용 가능한 임금체계모델, 소요예산 추계 등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할 계획이다.
다만 이번 가이드라인 내용으로는 민간위탁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사실상 각 기관의 자율적 판단에 맡길 뿐 아니라 보호확약서를 통한 노동조건 강화 조치에도 강제성이 부족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또 현재 진행 중인 민간위탁 사업의 보호확약서 적용 여부도 각 기관의 관리위원회 결정에 맡겨 한동안 논란이 불거질 전망이다.
이에 대해 노동부 임서정 차관은 "이번 가이드라인을 통해 민간위탁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보호에 대한 디딤돌을 놓았다"고 평가하고 "가이드라인이 현장에서 원활하게 이행될 수 있도록 관계부처와 지속적으로 협의하여 면밀히 점검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