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서울고법 행정7부(노태악 부장판사)는 퀄컴 측이 공정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등 취소사건에서 이같이 판단하고 퀄컴의 청구 대부분을 기각했다. 일부 주장은 받아들였지만 과징금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이번 소송은 미국에 있는 퀄컴 본사이자 특허권 사업을 담당하는 △퀄컴 인코포레이티드와 이동통신용 모뎀칩셋을 제조하는 △퀄컴 테크놀로지 인코포레이티드 △퀄컴 CDMA 테크놀로지 아시아퍼시픽 PTE가 1조311억원 규모 과징금과 시정명령들을 취소해달라며 제기했다.
모뎀칩셋은 휴대전화의 음성·데이터 정보를 신호로 변환하는 필수 장치다. 퀄컴은 모뎀칩셋 제조에 반드시 필요한 표준필수특허(SEP)를 보유하고 있다. SEP 사업자는 원하는 사람에게 공정하고 차별 없이 SEP를 제공하겠다는 일명 'FRAND 확약'을 지켜야 하는데 공정위는 퀄컴이 이를 위반했다며 제재했다.
이번 재판부가 인정한 퀄컴의 행위를 보면, 경쟁 모뎀칩셋 제조사에게는 자신의 SEP 라이선스를 주지 않거나 제한적으로만 제공했다. 퀄컴의 모뎀칩셋을 구매하려는 휴대전화 제조사에는 먼저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위반할 시 모뎀칩셋 공급을 종료하겠다는 계약조건을 강요했다.
공정위는 퀄컴의 이같은 행위가 시장에서의 지배적인 지위를 남용해 불공정한 거래를 강요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재판부는 "퀄컴은 정상적인 거래 관행에 비춰 타당성이 없는 조건을 제시했다"며 "FRAND 확약 취지를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모뎀칩셋 라이선스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로 경쟁을 제한하려한 의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어 "시장지배적인 사업자 지위를 남용해 거래 상대방인 휴대폰 제조사에 대해 불이익이 되는 거래를 강제한 점도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다만 공정위가 위법하다고 본 '포괄적 라이선스 제시' 등 행위 일부에 대해서는 시장지배적인 지위를 남용한 것인지 증명이 부족하다며 퀄컴 측 손을 들어줬다. 다만 해당 부분은 1조원대 과징금 처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관련 시정명령만 취소됐다.
재판부는 지난 2017년 10월부터 2차례의 변론준비기일을 거쳐 이날 선고 전까지 정식 변론기일만 17회를 진행했다. 퀄컴 미국 본사 임원은 물론이고 미국·스웨덴·독일의 이동통신 라이선스 전문가와 국제 특허 관련 법학교수 등에 십수명에 대한 증인신문도 진행했다.
이번 소송은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 받은 퀄컴 뿐 아니라 직접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모바일 대기업들에도 첨예한 이슈여서 이례적으로 소송 보조참가가 이어졌다. 소송 초반에는 삼성전자와 애플, LG전자, 인텔, 미디어텍, 화웨이 등이 공정위 측 보조참가인으로 참여했지만 소 진행 중 삼성전자와 애플은 보조참가를 취하했다.
공정거래 소송은 다른 재판과 달리 서울고법이 1심, 대법원이 2심을 맡기 때문에 퀄컴이 이번 판결에 불복하면 바로 대법원의 판단을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