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장을 가득 채운 팬들의 목소리. 선수들은 이 목소리를 고스란히 가슴에 담았다. 그리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짜릿한 승리로 보답했다. 연패에도 포기하지 않고 선수들을 격려한 팬들의 진심이 만든 승리였다.
KB손해보험은 3일 경기도 의정부체육관에서 열린 OK저축은행과의 도드람 2019~2020 V-리그 남자부 3라운드 경기에서 지긋지긋했던 12연패 사슬을 끊어냈다.
개막전 이후 승리의 여신은 번번이 KB손해보험을 외면했다. 연패가 길어지자 권순찬 감독이 사의를 표명하는 등 선수단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하지만 팬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선수들이 다시 일어설 원동력을 만들기 위해 응원과 격려에 더욱 힘을 쏟았다. 그리고 선수들은 그 진심을 고스란히 가슴에 담고 승리로 보답했다.
팬들의 흔적은 경기장 곳곳에 묻어났다. 이날 경기장에 울려 퍼진 "할 수 있다 KB!"라는 응원 문구도 팬들의 작품이다.
KB손해보험 관계자는 "지난달 23일 대한항공과 경기에서 팬 몇 분이 쉼 없이 큰 목소리로 '할 수 있다 KB'를 외치는 모습에 너무 감동받았다"라며 "해당 응원을 모든 팬들이 함께 외치면 좋겠다는 생각에 공식 응원 문구로 정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소수 팬들의 목소리였지만 선수들에게는 큰 울림을 줬다. 그리고 구단을 발 빠르게 움직여 해당 문구를 담은 현수막을 제작해 경기장에 배치했고 응원 단장과 함께 모든 팬들은 한목소리로 "할 수 있다 KB"를 외쳤다.
베테랑 김학민은"팀 성적이 좋지 않은데도 많은 팬이 경기장을 찾아주셔서 힘이 났다. 팬들의 소중함을 느꼈다"라고 팬들의 성원에 감사함을 전했다.
주전 세터 황택의의 자리에는 "KB스타즈 선수 여러분, 연패 중이라 많이 힘드시죠. 아마 선수들이 가장 힘들 겁니다. 5세트까지 가는 경기가 많아지면서 체력도 많이 떨어져 보여 걱정되지만 우리 선수들의 자랑은 젊은이니까 패기와 열정, 그리고 신나는 플레이 앞으로 보여주세요. 팬들은 항상 그 자리에서 응원하고 있겠습니다"라는 응원 메시지가 있었다.
김학민의 자리에는 도종환 시인의(전 문체부 장관)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시와 함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 스타즈는 잠시 흔들렸을 뿐입니다.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 줄, 사시사철 푸른 나무를 키워낼 줄 아는 사람들이에요 스타즈는. 우리 팬들은 어떤 상황이 와도 좋은 거름, 응원할게요"라는 팬의 진심이 묻어나는 글이 보였다.
이런 응원 메시지는 감독실에도 자리하고 있었다. 권순찬 감독이 머무는 방에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팬들을 위해 내색하지 않지만 지금 가장 힘들게 마음고생하고 계시는 권순찬 감독님을 비롯한 선수단 여러분 끝까지 포기하지 마시고 게임을 즐겨주세요. 팬들은 응원합니다"라는 글이 붙어있었다.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외국인 선수 브람 반 덴 드라이스의 자리에 붙은 메모는 친절하게 영어로 작성되어 있기도 했다.
KB손해보험은 홈 경기 때 한 명의 선수를 선정해 해당 선수의 포토 카드를 소지한 팬들을 대상으로 경기 후 사인회와 포토타임을 진행한다. 경기 승패 상관없이 진행했던 행사지만 연패가 길어지면서 승리 시에만 진행하는 것으로 바꿨다.
구단 사무국이 고민해 내린 결정이었다. 혹여나 패배 이후 선수의 표정이 좋지 못해 팬들이 실망감을 느낄 수 있겠다는 우려에 급하게 변경하게 됐다. 그러나 이를 다시 돌려놓은 것도 권순찬 감독이다.
KB손해보험 관계자는 "권순찬 감독님이 '내가 선수들에게 잘 설명할 테니 기존대로 진행해도 된다. 걱정하지 말고 팬들과의 시간을 마련해달라'라고 말해주셨다"라며 "감독님이 이어 '팬들이 있기에 선수들도 존재한다'라고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김학민 역시 "감독님이 선수들에게 경기를 마치고 힘들겠지만 팬들께 웃어주면서 사진을 찍어주고 사인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게 프로라는 말도 함께했다"라며 "나이를 먹으면 팬들의 존재가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질 것이라며 팬들에게 잘해달라는 말도 함께 했다"고 전했다.
선수단을 향한 팬들의 진심. 그리고 그 진심을 고스란히 가슴으로 느낀 선수단. KB손해보험의 연패 탈출은 팬과 선수단이 함께 만든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