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세 측근으로 '젊음' 강조한 황교안식 '연명정치'

고령에 친박-영남-관료 출신으로 중용
고비 때마다 '전환 이벤트'로 넘기지만
쇄신의 진정성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
반면 '읍참마속' 준비과정이란 기대도

핵폭탄급 '당 해체' 요구를 단식으로 잠재우더니 당무 복귀 직후 주요 당직에 다시 고령, 그리고 구체제를 상징하는 친박(친박근혜)계를 내세웠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국면 전환용 이벤트로 눈앞에 놓인 위기를 모면하는 방식으로 당권을 연장하고 쇄신의 진정성을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다만 이렇게 내부 장악력을 높인 뒤 총선 공천에서 단칼에 인적 청산하는 방식으로 '읍참마속(泣斬馬謖)'을 꾀하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당내에 상당하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단식을 중단하고 나흘만에 당무에 복귀한 2일 서울 청와대 사랑채 앞 정미경-신보라 의원의 단식 농성장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정미경-신보라 의원의 단식은 황교안 대표의 만류에 5일만에 단식을 종료했다.) 윤창원기자
한국당은 지난 2일 주요 당직 인선을 발표하며 젊은 초·재선 의원 중용으로 당에 활력을 불어넣고, 측근 배제, 수도권 의원 전면 배치로 민심을 체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 보니 거명된 인사 대부분은 이런 취지와 거리가 있었다. 일단 '젊음'이란 키워드가 무색하게 지명자 7명이 모두 55세 이상이었다.

특히 공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될 사무총장은 황 대표보다 2살이 많은 박완수(64) 의원이 낙점됐다. 박 사무총장은 강성 친박이었지만 전당대회 때부터 황 대표 최측근으로 자리매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전략기획부총장으로 지명된 송언석(56) 의원을 비롯해 모두 친박, 영남, 그리고 관료 출신이라는 기존 '3대 인사 공식'이 되풀이됐다.

김태흠(재선)·유민봉(초선)·김세연(3선) 의원 등의 쇄신론 제기 이후 당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있다는 공감대가 있었던 터라 회심의 '방향 전환'이 없었다는 점에서 아쉽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한국당의 한 재선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단식 끝나고 오자마자 인선한다고 해서 뭐라도 달라질까 기대를 했는데 지금 이건 누가 뭐라 해도 친정 체제 구축밖에 없지 않느냐"며 "통합과 쇄신을 메시지로 들고나왔지만 거기에 걸맞는 인선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당 해체를 요구했던 김세연 의원을 여의도연구원장에서 사실상 '찍어내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정치권에서는 결국 '소참세연(笑斬世淵)'이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돈다. 소참세연은 '눈물을 머금고 사사로운 정을 포기한다'는 성어 읍참마속에 빗대 꾸며낸 말로 '웃으며 김세연을 벤다'는 뜻이라고 한다.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자료사진=윤창원기자)
황 대표가 이처럼 고비 때 반전 카드를 내밀어 국면을 전환한 건 처음이 아니다. 다만 매번 근본적 체질 개선이나 방향 전환을 이룰 만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고, 별다른 소득도 없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앞서 박찬주 전 육군 대장 영입 시도로 리더십 위기가 거론됐을 때도 협의기구 제안으로 보수통합 카드를 띄웠다. 하지만 기득권을 고수하면서 현재까지 뚜렷한 진전을 보이지 못하는 모습이다. 외려 유승민 의원과 통화한 사실을 언론에 흘렸다는 의심을 받으면서 대화는 더 어려워졌다.

쇄신론 제기 직후에는 선거법 개편안 철회 등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돌입했지만 8일 뒤 병원으로 이송되며 중단했다. 풍찬노숙으로 당내 장악력은 높였지만 실질적인 정책 전환을 끌어내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런 가운데 이번 인선에서도 기존 원칙을 고수하면서 쇄신, 그리고 통합 흐름에도 물꼬를 트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단식을 중단하고 나흘만에 당무에 복귀한 2일 서울 청와대 사랑채 앞 정미경-신보라 의원의 단식 농성장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정미경-신보라 의원의 단식은 황교안 대표의 만류에 5일만에 단식을 종료했다.) 윤창원기자
그러다 보니 제1야당 대표지만 대선주자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당 지지도보다 낮은 20%대 정체를 수 개월째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청와대 하명수사 등의 의혹에도 반사이익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총선을 어떻게 치르느냐'는 곡소리가 전국 선거의 풍향계가 될 수도권 중심으로 끊이지 않는 것도 이와 결부된다. 지도부가 결국 중도 외연확장을 포기하고 '도로친박당', '도로영남당'을 추구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심심찮게 들린다.

수도권의 한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만약 연말까지 지지율이 오르지 않고 당이 이렇게 지리멸렬하게 간다면 비대위 얘기도 나올 수 있을 것"이라며 "차라리 그렇게 되면 다행이 아니겠냐. 따뜻한 물에 당이 삶아지는지도 모르고 그냥 이렇게 살 지도 모르겠다"라고 토로했다.

반면 이번 인선이 개혁 공천으로 가기 위한 방편, 즉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는 낙관론도 당내에 적잖다. 황 대표 의중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공천의 칼끝이 어디를 향하는지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영남권 한 비박(비박근혜)계 의원은 "황 대표가 이번에 임명한 박완수 총장이 나름대로 추진력과 과단성을 갖췄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친박으로 분류되지만 그가 친박 의원들을 직접 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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