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민주화운동가’ 이명남 목사 별세.."1980년대 민주화운동 증언자"

故 이명남 목사. (사진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1980년 이후 한국교회 민주화 운동을 이끈 것으로 평가 받는 이명남 목사가 지병으로 29일 밤 향년 79세 일기로 별세했다.

故 이명남 목사는 1941년 대전 출생으로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1980년 충남 당진시에 위치한 당진교회로 부임 해 31년 동안 목회했다.

이 목사는 교단에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 충남노회 노회장과 총회 부회록서기, 인권위원장 등을 지냈다.

대외적으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위원장, 일치위원회 위원장, 한국교회 인권센터 이사장, 기독교사회운동연합 의장, 한국사형폐지운동연합회 공동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전국목회자정의평화운동실천협의회 상임의장과 재일동포인권선교위원회 위원장, 민주화운동관련 명예회복분과위원회 위원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운영위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자문위원을 역임하면서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인권, 통일 운동에 힘썼다.

또, 당진시 승격 추진위원회 위원장, 충남환경운동 상임의장, 지방분권운동 충남지부 공동대표, 당진문화재단 이사장, 충남문화재단 이사장, 당진 YMCA 고문 등을 역임하며 지역사회 발전에도 기여했다. 고인은 이러한 공로로 지난 2005년 대통령 표창, 2009년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상했다.

사단법인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이하 기독교민주화운동)은 지난 달 4일, 1980년대 군사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 인권운동에 앞장서 온 이명남 목사의 회고록 <인권, 온몸으로>를 출간하기도 했다.

이명남 목사는 회고록에서 “나는 누구보다 하나님께 한없는 은혜를 받았다. 주변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목회 하나도 힘든 일인데 민주화운동까지 어찌 했느냐고. 1980년대 군사독재정권과 싸우는 일은 정말 고통스러운 길이었다. 내 곁에는 늘 경찰이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했다. 그 감시의 덕분이었을까. 나는 매사에 신중하고 조심했다.(중략) 불법을 저지를 수 없었고, 부끄러움을 안고 살 수 없었다. 민주화운동을 한답시고 뛰어다니려면 그래야했다”며, 목회자로서 민주화, 인권 운동을 벌인 고뇌를 고백하기도 했다.

기독교민주화운동 이사장 권호경 목사는 “이명남 목사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의 태동기와 6.10민주항쟁을 거쳐 이 땅에 민주주의가 정착하기까지 현장을 지켜온 증언자였다”고 평가했다.

故 이명남 목사 빈소는 당진 장례식장(충남 당진시 남부로 28)이며, 예장통합 충남노회장으로 치러진다. 사단법인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 주최 추모예배는 1일 오후 7시에 열린다. 발인예배는 다음달 2일 오전 9시이다. 장지는 대호지 추모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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