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이하 연구소)는 28일 경남 창녕군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사적 제514호) 일원에 대한 학술 발굴조사 결과 한번도 도굴되지 않은 상태로 추정되는 63호분의 뚜껑돌 7개 중 2개를 들어 올려 내부를 공개했다.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고대 6대 가야국 중 하나인 비화가야의 최고 지배층 묘역으로 연구소는 지난 2014년부터 학술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앞선 조사에서 5세기 중반경의 봉토분 9기, 돌덧널무덤(석곽묘) 15기 등 총 24기의 고분 조사 결과, 벽에 나무기둥을 세워 축조하는 방식 및 봉토가 서로 가까이 축조되는 연접 방식 등을 확인한 바 있다.
문화재청은 2016년부터 5세기 중반에서 후반에 걸쳐 조성된 곳으로 보이는 고분군의 동쪽 상단 부분에 대한 조사를 하고 봉토분 4기(39호분, 63호분, 38호분, 62호분)를 확인됐다.
연구소는 바로 위에 위치해 있으면서 나중에 축조된 39호분 봉토(지금 27.5m)에 63호분(지름 21m)이 가려져 있어 도굴 피해를 입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무덤 위에는 길이 2m의 편평한 뚜껑돌 7개가 얹혀져 있고, 점질토로 밀봉된 상태였으며, 매장주체부의 내부에는 시신과 부장품을 매장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간이 남아있었다.
연구소는 사전에 카메라로 내부를 조사해 큰 항아리인 대호(大壺)와 유개장경호(有蓋長頸壺·뚜껑이 있고 목이 긴 항아리) 같은 토기를 확인했다.
이날 뚜껑돌이 열린 63호분에는 다수의 토기들이 가득했다. 땅을 일구거나 논에 물꼬를 틀 때 사용하는 농기구로 추정되는 철제 유물 2점과 말을 부릴 때 쓰는 도구인 마구(馬具)로 보이는 물건도 나타났다.
연구소 관계자는 "정확한 유물 점수는 발굴해 봐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데 매장주체부 조사에는 두달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며 "공간 넓이를 봤을 때 2명 정도 순장했을 가능성이 있는데 인골 유무는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에서 세번째로 큰 고분인 39호분은 고분군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다. 붕괴를 막기 위해 중심부는 점토로, 가장자리는 흙으로 쌓았고 봉분을 쌓는 단계마다 점토를 깔았다.
또 매장주체부는 약 1.5m 길이의 큰 돌을 세우거나 눕혀서 네 벽을 만들었다.
인근에 있는 소형분인 62호분에는 400여 점의 유물이 이미 출토됐다. 양쪽에 잔이 달린 토기와 6개의 잔이 달린 등잔형 토기, 주전자형 토기와 같이 특이한 모양의 토기가 발견됐다.
큰 토기 안에 작은 토기를 넣고 같은 종류의 토기를 위아래로 포개거나 열을 지어놓는 등의 다양한 매납 방식도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비화가야 지배자 무덤의 축조기법과 장송의례, 출토유물 등은 가야와 신라의 접경지역에 위치하면서 복잡하고 다양한 문화가 나타나는 비화가야의 성격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