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공효진과 동백이는 '나 자신'을 믿는다

[KBS2 '동백꽃 필 무렵'을 보내며 ②] 옹산 사람들을 만나다 ⑵ 동백
노컷 인터뷰 - KBS2 '동백꽃 필 무렵' 동백 역 배우 공효진

KBS2 '동백꽃 필 무렵' 중 (사진=방송화면 캡처)
동백_"내 인생은 모래밭 위 사과나무 같았다. 파도는 쉬지도 않고 달려드는데, 발밑에 움켜쥘 흙도, 팔을 뻗어 기댈 나무 한 그루가 없었다. 이제 내 옆에 사람들이 돋아나고, 그들과 뿌리를 섞었을 뿐인데, 이토록 발밑이 단단해지다니. 이제야 곁에서 항상 꿈틀댔을 바닷바람, 모래알, 그리고 눈물 나게 예쁜 하늘이 보였다.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될 수 있을까."

동백_"용식 씨, 근데요. 내가 용식 씨를 만난 게 기적일까요?"

용식_"동백 씨는 고런 복권 같은 거를 믿어요?"

동백_"아니요. 나는 나를 믿어요."

용식_"나도요. 나도 너를 믿어요."_KBS2 '동백꽃 필 무렵' 40회 중 동백과 용식의 대사

용식(강하늘 분)은 말했다. 동백(공효진 분)은 용식(강하늘 분)이 지킬 줄 알았는데, 동백은 동백이 지킨다고 말이다. 그 말처럼 우여곡절 많고 외로운 동백의 인생을 지켜낸 건 '동백'이었다. 동백은 '나는 나를 믿는다'고 마음속으로 되뇌며 자신만의 행복을 찾았다.

늘 웃음 지으며 누구에게도 싫은 말 할 줄 모르는 것 같던 동백. 홀로 아들 필구(김강훈 분)를 키우며 술집 '까멜리아'를 운영하는 동백은 작은 시골 마을 옹산에서 누구나 함부로 대하는 존재였다. 그런 동백이 진상을 부리는 건물주 노규태(오정세 분)에게 이렇게 말한다. "근데요, 사장님. 골뱅이 만 오천 원, 두루치기 만 이천 원, 뿔소라가 팔천 원. 이 안에 제 손목 값이랑 웃음 값은 없는 거예요. 저는 술만 팔아요. 여기서 살 수 있는 건 딱 술, 술뿐이에요."

동백은 '하마'다. 초식동물이라 마냥 온순할 것 같지만, 숨겨 놓은 한 방을 꺼내 드는 순간 옹산을 평정할 수 있는 동백은 하마다. 잔잔하기만 한 줄 알았지만 누구보다 강인하게, 싫은 건 싫다고 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동백을 누구보다 선명하게 그려낸 건 배우 공효진이다.

공효진은 일상의 소소함마저 자신만의 색깔로 구현해낸다. 흔히 말하는 '생활 연기'에서도 공효진만의 현실감이 돋보인다. 공효진의 연기는 언제 봐도 동백의 말마따나 '댓츠 오케이'다. 지난 25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공효진은 '동백꽃 필 무렵'에 대한 만족감을 거듭 드러냈다.

배우 공효진 (사진=매니지먼트 숲 제공)
◇ 공효진과 '동백꽃 필 무렵'

"엄청 재밌게 찍었어요. 더 찍어도 되겠다 싶게 재밌게 찍었어요. 우리는 항상 이야기가 차고 넘쳤고 진짜 한 회에 들어가기에 빡빡했어요. 작가님이 일찌감치 대본을 다 쓰시고 맨날 아까워 죽겠다고 하셨어요. 배우들도 대본이 너무 재밌어서 여기서 줄인 게 뭔지, 아까운 게 뭔지 궁금했어요. 마지막 회를 봤을 때 한 회가 더 있었으면 조금 더 풍부하게 작가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고 끝났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공효진은 자신이 맡은 '동백'에 대한 이야기보다 '동백꽃 필 무렵'의 이야기와 매력에 대해 먼저 이야기했다. 물론 자신이 맡은 배역도 만족스럽지만, 그 배역에 녹아들어 만족스럽게 연기할 수 있는 '이야기'가 공효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향미(손담비 분)가 죽었다는 걸 일찌감치 말로 한 후, 이후 향미가 죽기까지 과정을 풀어내는데 전혀 삐걱거리거나 앞뒤가 혼란스럽지 않았어요. 글의 힘이 이렇게 대단하다고 느꼈죠. 대본이 좋았다는 이야기는 네티즌, 기자, 배우들도 입이 아파서 더 못할 거 같아요. 그렇게 글로만 봐도 매력적인 대본을 연기하면서, 그리고 모두가 다 예상보다 더 멋진 연기를 하는 배우들의 플레이를 보면서도 희열이 느껴졌어요. 서로가 방송을 보면 누구밖에 기억이 안 난다, 누구는 어떻다, 어떻게 이렇게 연기를 했냐, 글로 읽어본 것보다 잘했네 등 다들 그런 이야기를 하느라 바빴어요. 서로의 케미가 진짜 정말 좋아서, 몸이 떨리는 경험이었어요."

'동백이는 동백이가 지킨다'는 용식의 말처럼, '까불이'(이규성 분)를 잡을 거라 종종 이야기했던 동백의 말처럼 마지막에 까불이를 잡은 건 동백이었다. 향미의 500cc 맥주잔으로 까불이의 머리를 내려치며 "네가 향미 죽였지? 이거 향미 500잔이야. 너 까불면 진짜 죽는다"며 소리친다.

"모든 게 반전의 반전을 거듭했어요. 저는 제가 향미의 500잔으로 까불이를 때려잡을 줄 몰랐어요. 제 손으로 때려잡고 동네 언니들이 까불이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달려드는 걸 보면서 작가님이 정말 뚝심 있게 밀고 갔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까불이는 내가 잡을 거라는 이야기를 몇 번 했거든요. 내가 무슨 깡으로 까불이를 잡나 생각했는데, 결국 제 손으로 때려잡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KBS2 '동백꽃 필 무렵' 중 (사진=팬엔터테인먼트 제공)
◇ 공효진과 '동백'

"저는 솔직히는 이 시나리오 안에서 동백이가 제일 단순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동백이 캐릭터가 제일 단순하고, 어떤 웨이브가 별로 없는, 플랫한 역할이라고 생각했죠. 지금은 아쉬움이 전혀 없어요. 이렇게 좋은 캐릭터를 그때는 그렇게 느끼고 받아들인 거 같아요."


동백은 옹산으로 흘러들어왔지만, 옹산에 섞여들진 못한다. 편견으로 뒤섞인 시선 안에 있다. 사람들에게 무시 받지만 늘 웃고 늘 친절하다. 그럼에도 동백은 "사람들이 사는 게 징글징글할 때 술 마시러 오잖아요. 그니까 나는 웬만하면은…. 사람들한테 다정하고 싶어요. 다정은 공짠데…. 서로 좀 친절해도 되잖아요…"라고 말한다. 옹산 사람들은, 옹산 토박이들은 모두 충청도 사투리를 쓴다. 그러나 동백은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말'에서조차 동백은 경계인이고, 외부인이다.

마지막까지도 동백은 동백이 다운 '말'을 한다. 옹산 사람들과는 다르지만, 자기만의 방식으로 옹산에 어우러진다. 동백은 동백이다. 그렇게 '동백다움'으로 세상의 편견을 깨고, 차별의 언어를 견디고, 용식이가 주는 사랑을 자기 것으로 소화해 나간다.

KBS2 '동백꽃 필 무렵' 중 (사진=방송화면 캡처)
그런 동백을 보며 향미는 왜 동백은 자신과 다르냐고 말한다. 향미와 똑같이, 마치 '편견 종합세트'처럼 팔자 사나운 동백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기의 말을 하고,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 사랑받지 못하고 살았지만,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저도 15~16부에 접어들면서 그 생각을 많이 했어요. 향미랑 동백이랑 비슷하게 어릴 때 보호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한 소녀였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동백은 옹산에 와서 사랑받을 준비를 해간 거 같아요. 종렬이가 자기는 그 동네(옹산)가 참 좋다고, 옹산은 신기한 곳이라는 말을 듣고 동백이가 옹산으로 온 건데, 사실 종렬이가 동백이에게 해준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해요. 살 이유를 얻게 된 거죠. 종렬이의 이야기에 옹산에 와서 산 거, 그게 동백이가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찌 보면 마지막까지 몰린 동백을 품어준 건 미우나 고우나 결국 '옹산'이었다. 그곳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백'이 되어 준 회장님 곽덕순(고두심 분)을 만났다. 김치도 주고받고, 같이 홈쇼핑에서 물건도 사서 나눈다. 동백이 인생에 가장 큰 신분의 '백'이다. 옹벤져스로 불리는 4인방, 박찬숙(김선영 분)-김재영(김미화 분)-정귀련(이선희 분)-오지현(백현주 분) 등 옹산 게장 골목의 터줏대감들도 처음에는 동백에 까칠하기도 하고 티격태격하기도 했다. 그러던 이들까지 옹산은 이방인 같던, 옹산 밖에 존재하던 동백을 품었다.

"그곳에서, 그 사람들에게 어쨌든 동백이는 시기와 얄미운 대상이었을지 몰라도 계속해서 김치를 받으면서 그렇게 같이 부대끼고 살았잖아요. 그렇게 향미랑은 조금 다른 인생을 설계한 게 아닌가 싶어요. 향미도 사랑받을 수 있는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인생이 달라졌을 거 같아요. 그리고 또 동백이의 철학이나 신념이라기보다 동백이를 둘러싼 환경이 동백이가 잘 살아야 하게끔 만든 거 같아요. 아이를 낳았으니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살았어요. 책임질 무언가 때문에, 부모라는 입장에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말이죠. 그런 것도 있는 거 같아요. 동백이는 '엄마'라는 존재가 됐기에 살아날 수 있지 않았을까요? 향미는 혼자였지만, 부모가 되면, 엄마가 되면 다른 거 같아요. 어쩌면 동백이한테 필구가 없었으면 다르게 살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배우 공효진 (사진=매니지먼트 숲 제공)
◇ 공효진과 옹산 사람들

비슷한 인생을 살았지만 서로 다른 길을 걸어 나가게 된 향미, 그 향미 역에 배우 손담비를 추천한 건 공효진이었다.

"처음에는 향미를 조금 더 여린 친구로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러다가 대본이 계속 나오고, 생각할수록 약한 역할인 동백이를 더 그렇게 보일 수 있도록 향미가 외적으로도 더 화려하고 센 친구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저도 강단 있는 배우라 그 반대인 동백이를 연기할 때 동백과 반대의 인물을 통해 도움받고 싶었죠. 삶의 굴곡이 있지만 옹산에 와 있기엔 너무 예쁘고 세련된 사람, 그런데 담비가 화려한 직업인 가수를 했던 배우예요. 설명해주지 않아도 느낌이 올 것 같았죠. 그런데 진짜 잘했어요. 어려운 역을 맡아서 진짜 잠도 잘 못 자고 마음고생을 많이 했죠. 담비의 활약을 보면서 제가 너무 감격스럽더라고요. 이제 됐다, 이제 됐다 싶었죠. 진짜 담비가 칭찬받으면 뭉클하고 그렇더라고요." (웃음)

늘 동백만을 향해 '직진'으로 달려오는 용식이. 동백이 안에 숨어 있던 반짝이는 것들을 밖으로 꺼내 동백이가 더 멋지게 도약하도록 도운 용식이를 연기한 배우 강하늘에 관해 공효진은 "화려하다"고 표현했다. '노규태존(No규태Zone)', '노규태 노(No)땅콩'의 주인공 노규태 역의 오정세 역시 에너지를 뿜어내는 배우라고 설명했다.

"하늘 씨는 연기가 되게 화려해요. 용식이도, 노규태도 연기가 진짜 화려하다고 생각해요. 화면을 꽉 채우고 에너지가 뿜뿜 나오는 그런 배우죠. 반면에 저는 소박하게 연기하는 스타일이에요. 저는 소박하게 연기하는 사람인데, 그 두 사람은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연기를 해요. 그들 덕분에 어떻게 보면 답답할 수 있는 제 소박한 연기가 리얼해 보였어요."

에너지를 발산하는 건 강하늘과 오정세만이 아니었다. '옹벤져스'로 불리는 김선영, 김미화, 이선희, 백현주도 에너지가 넘치는 배우들이었다.

"옹산 언니들은 정말 좋은 의미에서 화려한 에너지가 나오는 분들이죠. 보면서 부럽기도 했어요. 나도 저런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생각도 들었죠. 정말 서로가 서로를 보면서 많은 걸 배운 작품이어서 헤어질 때 엄청 울었어요. 창피하지만 작품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죠."

배우 공효진 (사진=매니지먼트 숲 제공)
◇ 공효진과 배우 공효진의 20년

"드라마를 촬영하면서 같이 만드는 모든 배우, 감독님, 스태프, 그리고 작가님 모두가 다 이렇게 만족스럽기만 한 작품이 있었나 싶었어요. 제가 정말 여러 가지 작품을 다 해보고 많은 일을 겪어봤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몰라주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작품은 처음인 거 같아요. 화려하고 멋있기만 한 작품이 아닌, 이런 풋풋한 사람 이야기에 많은 분이 열광했다는 게 너무 반갑기도 하고 다들 마음이 똑같다고 생각했어요. 나 아니면 다 남 같다고 생각했던 냉소가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치유가 됐어요. 저는 더이상 무언가가 있을 줄 몰랐는데 이렇게 20년을 버티니 결국 또 새로운 국면에 서 있는 것 같아요."

공효진은 '동백꽃 필 무렵'을 통해 '희망'을 봤다고 했다. 시청자들 역시 자극적이고 극단의 감정이 아닌, 작지만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작품을 원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 드라마나 영화도 아직 사랑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올 수 있겠구나 싶었다.

공효진이 배우로 살아온 지도 어느덧 20년이다. 앞서 말했듯 새로울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양한 장르의 다양한 작품에서 여러 역할을 맡았다. 그때마다 배우 공효진은 '공효진이라면'이란 믿음을 주는 연기를 선보였다. 지난 시간을 어떻게 보내왔냐는 질문에 공효진은 "자신을 믿어 왔다"고 말했다.

"저는 사실 진짜 저 자신을 믿어요. 동백이가 한 말이 마음에 꽂힌 건 나도 그렇게 지나왔기에 그런 거 같아요. 어떻게 내 마음이 대본에 있을까 했던 것도 있어요. 대사를 뱉으면서 내 마음이 그랬다는 걸 알게 된 거죠. 동백이가 만두를 빚으면서 행복은 다 자기 왕만두를 빚는 거라고, 자기 입맛대로 자신의 행복을 소소하게 빚는 거라고 말해요. 자꾸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경쟁하려 하면 안 되는 거 같아요. 자꾸 남의 것을 보면서 자기 속은 터져갈 뿐이잖아요. 그러지 말고 본인이 원하는 걸 알고 본인이 빚을 수 있는 행복을 빚어가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앞으로 이런 드라마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시청자분들도 지금도 사람들에게 떠밀려서 보는 게 아니라 '동백꽃 필 무렵'을 나중에 한 번씩만 더 보시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공효진은 자신만의 왕만두, 자신만의 행복을 빚어왔을까. 공효진은 망설임 없이 동백이처럼 정말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용감하게 내가 하고 싶은 거 잘 밀고 나가며 살았구나 싶어요. 저 진짜 왕만두 잘 빚어온 거 같아요." (웃음)
배우 공효진 (사진=매니지먼트 숲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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