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하게도 한국 정부는 미국이 협조하지 않거나 제동을 걸면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없는 경제 군사적 종속관계라는 한계를 갖고 있다. 이 상황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남북문제나 한일관계를 주체적으로 돌파해 나갈 힘도 묘안도 없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 협정 결렬과 한일 간 지소미아 갈등을 지켜보면서 한미동맹 재설정이라는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결렬된 방위비 분담금 협상 시한을 연말로 정해놓고 있지만 워낙 입장 차가 커서 타결을 낙관하기가 어렵다. 자칫 주한미군 감축과 철수라는 최악의 상황이 닥칠지도 모른다.
정부 출범과 동시에 공들여온 북한과의 우호적 관계 개선은 오히려 김정은 위원장의 냉대와 압박의 결과만 가져왔다. 남북협력사업의 상징인 금강산의 남쪽 자산 철거 요구에 이어 서해 최전방인 창린도를 찾아 포사격을 지시하는 등 9.19 남북군사합의까지 위반하며 긴장을 높이고 있다.
중국 역시 한국의 사드배치 이후 닫았던 빗장을 여전히 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북한과의 군사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이처럼 한반도를 둘러싼 북·미·일·중 모두가 자국의 경제와 군사이익을 앞세워 한국에 날을 세운 형국이다.
그야말로 사면초가가 되고 말았다. 한국전쟁 이후 처음 겪는 위기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이 이대로 동북아에서의 외톨이가 되는 순간 구한말처럼 사냥개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수 있다. 그래도 미국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란 생각은 위험하다. 미국은 영원한 우리 편이 아니다. 미국은 동북아 유사시 남한을 포기할 수 있지만 일본은 포기하지 않는다. 대한해협 건너 일본에 주둔 중인 주일미군과 유엔사령부를 통해 북한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와 싸워야하기 때문이다.
전환기에 들어선 동북아의 안보질서 속에서 대한민국이 외톨이가 되지 않고 사면초가에 몰리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프레임은 한·미·일 동맹임을 부인할 수 없다. 누가 뭐라 해도 아직은 그렇다. 북·중·러 동맹의 군사력이 냉전시기 이후 가장 위협적일 만큼 강력해진 것만 보아도 그렇다.
넘어야할 산 같은 일본이지만 지금 당장 일본을 적으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간을 벌어 일본의 경제전쟁에 맞설 수 있는 기반을 세워야 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종속된 경제 군사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새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라도 시간을 벌어야 한다. 지금은 한미동맹을 견고하게 구축해 동북아 질서에서 편입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