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집을 사 지긋지긋한 출퇴근 전쟁에서 벗어나는 것. 2년 전 결혼 후 친정 근처에 신혼집을 얻어 전세로 살고 있었지만 버스 대기줄에 서서 칼바람을 맞고 '각성'한 뒤 본격적으로 서울의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김씨는 "하루종일 부동산 매물 새로고침을 누르며 업무시간 틈틈이 전화를 걸고 있다"며 "광역버스 줄 대신 이제는 부동산 대기줄에 서 있는 기분"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로 촉발된 청약 시장 과열 양상이 부동산 시장 전체로 불이 옮겨붙는 모양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쏟아지는 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에도 서울 집값은 20주 넘게 상승중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11월 3째주 서울 아파트 가격은 0.10%로 지난주 0.09%에 비해 상승폭이 확대됐다.
조정지역이 해제된 부산과 고양 등 일부 지방에도 집값이 급등 현상을 보였다. "연말부터 규제효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말이 무색할 정도다.
지난 6일 분양가 상한제 핀셋규제와 조정지역이 해제된 정부 정책이 발표된 뒤 분양가 규제 대상 지역을 피해간 과천은 1주일 동안 1% 넘게 집값이 급등했다. 분상제의 '풍선효과'였다. 이같은 오름세는 과천에서 시작돼 하남과 성남 등으로 확산됐다.
조정지역 해제로 수혜를 입은 부산 역시 하루 1억원씩 오르는 기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부산뿐 아니라 일산과 남양주 등 갭투자를 하러 버스를 빌려서 오는 원정투자도 기승을 부리고 있는 상황이다.
11월 초까지 마이너스를 기록하던 부산 집값은 조정지역 해제 발표 이후 11월 3째주 0.19% 상승했다. 발표 직전(11월4일) 부산의 아파트가격 상승률은 -0.04%였다.
◇ 양도세에 '움찔' 보유세에 '피식'…갈수록 줄어드는 매물
정부의 계속되는 부동산 규제 정책에도 아파트 가격이 오르는 데는 3가지 요소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먼저 역대 최저 수준인 1.25% 금리와 시장에 넘쳐나는 풍부한 유동자금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올해 7월과 10월 금리가 두 차례나 떨어졌고 시장의 유동자금이 150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며 "대체 투자처가 마땅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 매도자보다 매수하려는 대기 수요가 훨씬 많다보니 이같은 '매물 품귀' 현상이 집값을 자극하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매물이 없어서 한 달 넘게 거래를 성사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시장의 '매물 잠김'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4월부터 시행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로 3주택자의 경우 60%까지 과세하다보니 팔고 싶어도 집을 팔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의 규제가 시장에서 매물이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또 다주택자들이 집을 파는 대신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는 경우가 늘면서 임대사업기간 8년을 채워야 하는 점도 시장에서 매물이 줄어든 요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재건축 지위양도금지와 분양가 상한제 지역 아파트 의무거주 등 거래규제가 워낙 많다보니 점점 더 새 아파트를 시장에서 찾기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KB부동산 리브온이 발표한 월간 매매가격 전망지수는 지난 9월 85에 이어 이번달에는 118.1을 기록했다. 기준선인 100을 넘을 경우 매수자가 많다는 것으로, 집을 팔 사람보다 사고 싶은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집값이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정부가 만지작거리고 있는 종합부동산세 등 세금 규제 카드도 다주택자들의 움켜쥔 주먹을 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보유세가 늘어나면서 고가, 다주택자의 심리적 부담을 클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다주택자 양도세 부담이 적지 않아 매도 대신 자녀 증여가 많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위원은 "매물 출회는 가격 하락 기대가 있을 경우와 보유세 부담이 커져야 가능하지만 집값 상승 기대가 큰 상황에서는 보유 심리가 크다"며 "특히 조정대상지역에서는 양도세 부담으로 팔기도 어려워 종합부동산세가 늘어나도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훨씬 강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