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내 사령탑인 나경원 원내대표는 황 대표의 단식을 지렛대로 여권의 공세를 막아낼 동력을 확보한 모습이다. 다만 무턱대고 선거법 협상에 나섰다간, 연동형 비례제 철회를 단식 명분으로 내세운 황 대표와 '엇박자'를 낼 수 있기에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한국당 선거법 '필사 저지' 속 원내 전략 '고심'
20일부터 단식 농성에 돌입한 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지소미아 파기 철회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철회 ▲공수처법 포기다. 이중 지소미아는 '조건부 연장'에 이르면서 일단 명분 하나는 달성했다.
다음 수순은 선거법이다. 패스트트랙에 오른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오는 27일 본회의 부의를 앞두고 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25일 열린 여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 정례회동에서 "여야 3당이 합의를 해달라"며 "기다릴 수 있는 한 의장으로서 최대한 기다리겠다"라고 언급했다. 부의는 하되, 상정까지는 시간을 주겠다는 의미다.
현재 한국당에는 선거법을 보는 복잡한 심경이 자리하고 있다. 황 대표 주변에는 "대표가 단식까지 하면서 필사 저지를 공언하는데 협상이 왠말이냐"는 말이 나온다. 반면 원내에선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무슨 수를 벌일지 모른다"며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반론도 자리하고 있다.
이는 곧 원내 협상의 키를 쥔 나경원 원내대표의 고민 지점으로 해석된다.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가 자칫 대표의 단식이 무의미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대로 반대만 했다가는 '전략이 없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한국당의 선거법 안(案)은 지역구 270석에 비례대표 폐지다. 지난 3월 내놓은 당론에서 현재까지 변한 것은 없다.
일단 나 원내대표의 전략은 '패스트트랙' 원천 무효다. 그는 이날 정례회동에서 문 의장에게 "패스트트랙을 원천무효로 인정한다면 우리는 (선거법) 협상을 빠르게 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불법적인 패스트트랙을 저지하기 위해 물리적인 충돌과 고소고발까지 불사했는데, 이를 토대로 협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자기모순'이라는 것이 한국당의 입장이다. 불법적인 사슬을 먼저 끊고, 그간 정치권의 관례대로 선거법을 협상하자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를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적다. 오히려 물밑 공조를 통해 한국당을 압박하는 기세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 24일 열린 비상 의원총회에서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을 끝까지 할 것이다"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협상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협상 여지를 열어두면서 다른 야당에 손짓한 셈이다.
◇黃 단식 농성으로 나경원 협상력 힘 실려
황 대표의 단식으로 나 원내대표의 협상력에 오히려 힘이 실렸다는 분석도 자리한다. 지도부 한 관계자는 통화에서 "대표가 몸을 던져서 저지를 하기 때문에 나 원내대표가 패스트트랙을 막는 협상에 힘이 실렸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12월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가 연동형 비례제 도입을 위한 단식을 할 때 한국당의 대응 방식을 들기도 한다. 당시 나 원내대표는 손 대표를 직접 찾아가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당내 의견 수렴을 약속했다. 이후에는 연동형 비례제 도입을 위한 합의안에 서명했다. 고령인 손 대표가 단식까지 하는 상황에서 당의 입장만을 고수할 수 없다는 이유가 자리했다.
지도부 또다른 의원은 "손 대표 때도 그랬는데, 황 대표가 목숨 건 단식을 하는 상황에서 여당이 일단 단식을 멈출 수 있는 답을 먼저 하고 이 사태를 풀어내는 것이 맞다"며 "전적으로 이제 민주당이 하기에 달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으로는 연동형 비례제의 강행에 대비해 '액션 플랜'도 거론되는 모습이다. 의원직 총사퇴, 필리버스터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의원직 총사퇴의 경우 본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문 의장이 버티고 있는 한 쉽지 않을 것이란 회의론이 일고 있다. 필리버스터의 경우 패스트트랙 법안을 인정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패스트트랙을 불법으로 주장하는 현 상황에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어설픈 합의보다는 명분있게 패배하자는 주장도 있다. 한 초선 의원은 "필사저지 밖에 길이 없고, 강행한다면 방법이 없다"며 "완벽하게 깨지고 총선에서 역풍을 등에 업고 승부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