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9년…“우리 삶은 더 나빠지고 있다”

포격 이후 저소득 인구 4배 이상 급증
불법조업 중국어선 겹쳐…지역경제 붕괴
‘지원 약속’ 정부도 결국 ‘공약(空約)’

연평도 포격사건 나흘째인 2010년 11월 26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 포격 피해 현장에서 강아지가 힘에 겨운 모습으로 잠을 청하고 있다. 박정호기자

“북한이 얼마 전에 우리 정부한테 연평도는 벌써 잊었냐고 물어봤잖아. 내가 보기엔 자기들 필요할 때만 생각하는 거 같아. 우리가 아무리 얘기해도 인구가 적으니 신경이 쓰이겠어?”

한 연평도 어민이 연평도 신항에 대해 묻자 답한 말이다. 연평도 포격 사태가 벌어진 지 딱 9년째 되는 23일. 강산도 변할 만큼 시간이 지났지만 연평도 주민들은 자기들의 삶이 포격사건 이전보다 더 나빠지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연평도를 비롯한 대청도, 백령도 등이 있는 서해5도는 유일하게 국회와 정부가 지원특별법까지 제정해 경제 지원을 약속한 곳이다.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집단 이주를 요구하는 주민들을 달래고 낙후된 정주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였다.


◇ 포격 이후 저소득층 4배 이상 증가…식수난도 지속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의 삶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옹진군이 매년 발간한 군정백서를 보면 연평도 저소득인구는 매년 빠르게 늘고 있다.


포격사건이 발생한 2010년말 연평도에서 기초생활보장을 위해 지원을 받는 저소득 인구는 35명이었지만 포격 이후인 2012년에는 68명으로 늘었다. 2015년에는 122명으로 처음 세 자리 수를 기록했고 2016년 141명까지 치솟았다. 포격사건 이후 저소득 인구가 4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서해5도로 확대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2010년말 138명이었던 저소득 인구는 2015년 463명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저소득층만 늘어난 것은 아니다. 식수난도 고질적인 문제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 1명당 하루 평균 물소비량은 282ℓ, 인천시는 297ℓ지만 연평도는 90∼100ℓ 수준이다.

소연평도의 경우 식수난이 포격 이후 가속화돼 2013년에는 하루 1시간, 2014년에는 30분씩 제한 급수가 이뤄졌다. 이후 지하수도 고갈돼 2015년부터는 이틀에 30분가량 급수가 이뤄진다. 지금도 이 곳은 1.8ℓ 생수를 육지로부터 공급받아 식수로 쓰고 있다.

포격 피해를 직접 입은 대연평도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2014∼2016년 1일 1시간 제한급수가 이뤄졌으며, 현재는 1일 2시간 제한급수를 실시하고 있다. 마을상수도 역시 노후화돼 누수율이 40%를 넘는다.


저해 5도 인근에서 불법조업하다 해경 서해5도 특별경비단에 단속된 중국어선. (서해5도 특별경비단 제공)

◇ 연평도 포격 이후 무너진 지역경제…불법조업 중국어선 피해도

그 이유는 무엇일까. 포격사건 이후 지역 경제가 무너진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섬 주민들의 수익창출 수단은 대체로 관광과 어업에 집중된다. 연평도를 비롯한 서해5도는 안보를 이유로 조업구역이 협소하고, 전국에서 유일하게 야간조업이 불가하다. 이 지역 주민들이 조업구역 확대를 요구하는 이유다.

최근 몇 년동안 서해5도 어장을 ‘싹슬이’한 중국어선의 불법조업도 어민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2016년 6월 연평도 어민들이 직접 중국어선을 나포한 건 그런 불만이 그대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연평도 어민들의 주수입원인 꽃게 어획량은 매년 빠르게 줄고 있다. 서해수산연구소에 따르면 연평도를 포함한 인천 해역의 꽃게 어획량은 1990년 처음 통계를 집계한 이래 2009년 1만4675톤을 기록했지만 점차 줄어 2015년 1만톤, 2017년 5723톤 등 감소추세다.

어민들의 불만이 커지자 정부는 2017년 4월 해양경찰 ‘서해5도 특별경비단’을 창설해 대대적인 불법조업 중국어선 단속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황폐화된 어장을 되살리는 데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어민들의 주장이다.

관광산업도 침체기다. 2009년 연평도를 포함한 서해5도를 방문한 관광객은 11만 8423명으로 집계됐다. 포격 이후 옹진군과 인천시의 관광객 뱃삯 50% 지원 등으로 관광객 유치에 힘썼지만 2016년에도 관광객은 11만 9891명으로 집계됐다. 결과적으로 제자리 행보지만 그나마 관할 자치단체인 옹진군과 인천시의 유인책이 없었으면 더 악화됐을 거라는 게 중론이다.


연평도 포격으로 파손된 벽을 정부지원으로 복구한 주택의 모습. (사진제공=연평도 주민)

◇ ‘정주여건 개선 약속’ 서해5도 특별지원법도 ‘공약(空約)’에 그쳐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서해5도의 주민들의 집단이주 대신 정주 여건을 개선하는데 힘쓰겠다던 정부의 약속도 ‘공약(空約)’으로 그쳤다.

행정안전부는 연평도 포격사건이 발발한 2010년 10월 23일 이후 제정된 서해5도 지원특별법에 따라 종합발전계획을 세우고 2020년까지 총 9109억원을 서해5도에 투입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종합발전계획 종료 1년여를 앞둔 현재 예산 집행률은 38%에 머물고 있다. 대피소 설치와 정주 자금 지원, 노후 주택 개선 등 사업이 일부 이뤄졌지만 이마저도 반쪽짜리였다.

정주자금 지원은 2017년까지 주민들에게는 매달 5만원 지급하면서 지방공무원들에게는 20만원씩 지급해 ‘공무원 정주자금 지원’이라는 불만을 자초했다. 1000명이 넘는 주민들이 탄원서를 제출해 이후 소득에 따라 5∼10만원 지급하는 것으로 조정됐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대피소 설치의 경우 장애인 대피시설은 제외했다. 연평도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으면 대피소에 들어갈 수 없는 장애인이 거주하고 있다. 이밖에도 포격으로 파손된 주택 복구는 ‘하다가 말았다’며 주민의 불만을 샀다.

국가관리 연안항으로 지정하며 개선을 약속했던 연평도 신항 건설사업은 첫 삽도 뜨지 못했다. 섬 주민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인 여객선은 물 때를 맞춰 운행해야 하고, 불법조업 중국어선 단속에 힘쓰는 해경의 경비함정은 접안도 못하는 실정이다.

예산 절반도 못쓴 행안부는 서해5도 종합발전계획의 시행 기간을 10년 연장하고 각 부처 예산과 사업을 재정비하기 위한 용역을 추진하려 했지만, 용역비 1억원이 기재부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연평 포격 9주기에 앞서 지난 21일 연평도 신항 건설과 서해5도 종합발전계획의 정상 추진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국무총리실에 제출한 박태원 전 연평도 어촌계장은 탄원서를 통해 “우리 주민들이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자괴감을 갖지 않도록 절박한 마음을 담아 간청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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