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더불어 GSOMIA를 한미일 안보협력의 상징으로 판단하고 보기 드물게 강한 수위의 압력을 가해 왔던 미국 또한 다소간의 태도 변화는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일본이 대화에 성실히 나서지 않을 경우 우리는 GSOMIA를 언제든 다시금 종료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일본이 가장 크게 문제삼았던 강제징용 문제를 두고, 차후 대화가 어떻게 전개되느냐가 향후 한일관계의 '포인트'가 될 것으로 분석된다.
일단 전망은 밝지만은 않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GSOMIA 종료를 통보하는 외교문서의 효력을 일시 중지한다는 것으로, 언제든지 다시 활성화시킬 수 있는 권한을 유보하고 있는 것이다"며 "이럴(활성화할) 경우 GSOMIA는 그 날짜로 다시 종료하는 것이 한일 양국간 합의한 내용이다"고 설명했다.
비슷한 시각 외교부 고위 당국자도 "일본이 시간 끌기로 나올 경우 WTO 제소절차 재개를 생각할 수 있고, GSOMIA 또한 언제든 종료시킬 수 있다는 안전장치를 걸어 놓았다"며 "일본 측이 대화에 진지하게 임해서 원만한 결과가 나올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즉, 종료에 이르는 카운트다운을 잠시 멈추게 한 것일 뿐이고, 여차하면 시계의 초침이 다시 돌아갈 수도 있게 되는 셈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종료를 언제까지 유예할 것이냐'는 질문에 "일본 측 태도에 달려 있다"면서도 "상당 기간 지연되는 것은 허용 불가하다"고 답했다.
앞으로 이어질 한일간의 대화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한일 경제전쟁의 '정전협정'은 다시금 깨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일본 측이 문제의 핵심으로 꼽고 있는 강제징용 문제는 이번 합의에서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위한 해결책도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일본이 강제징용 문제와 수출규제 조치를 연계한 전략을 우리가 수출규제 조치와 GSOMIA를 연계하는 전략으로 대응해서 일본의 연결 고리를 깼다고 생각한다"며 "(수출 규제 조치를 풀기 위한) 방향성이 있는 과정이 시작됐다"고 일단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조성렬 자문연구위원은 22일 저녁 CBS 라디오 '정관용의 시사자키'에서 "발표에는 빠져 있지만 내년 봄부터 시작될 일본기업 압류자산 현금화 문제가 시작되면 한일관계는 파국으로 치닫기 때문에 관련 논의도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문희상 국회의장이 제안한 이른바 '1+1(+@)'안은 아베 총리가 '검토해 보라'고 하는 정도의 단계이니, 이런 정도의 타협이 나온 것 같다"며 "더 논의하자는 합의를 전제로, 모든 조치를 동결시켜 놓은 셈이다"고 말했다.
이를 종합해 보면, 그 동안 "한국이 징용 판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막무가내'식 입장을 보이던 일본 측이 일단은 대화에 합의했고, 한국은 이를 위해 GSOMIA 종료 유예라는 조건을 걸었으니 차후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GSOMIA를 한미일 안보협력의 상징으로 삼아, 우리 측의 종료 결정에 그간 보기 드물게 강력한 압박을 가해 온 미국 또한 일정한 태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은 지난 8월 우리 정부의 종료 결정 직후부터 최근까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등을 필두로 "실망과 우려" 등의 표현까지 사용해 가며 GSOMIA 종료를 재검토하라는 외교적 압력을 가해 왔다.
따라서 GSOMIA 종료라는 카운트다운이 일단 멈췄으니, 다시금 다가올 수도 있는 '파국'을 막기 위해서라도 미국이 한일간 중재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것이 우리 입장에서는 최고의 선택지인 셈이다.
조성렬 자문연구위원은 "미국의 외교적 압력이 큰 작용을 한 것 같지만, 우리로서는 명분과 체면이 있으니 일본의 대응을 촉구했고 미국도 물밑에서 중재 역할을 한 것 같다"며 "시간을 벌었기도 하거니와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에 대한 시각' 문제에 대한 제기가 많았으니, 앞으로 미국이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 노력을 한층 더 강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다만 앞으로 한일간의 대화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고, 그 때문에 우리가 남겨 둔 '안전장치'인 GSOMIA 종료와 WTO 제소라는 카드를 다시금 발동할 경우 미국의 압력은 다시금 강력해질 가능성도 엿보인다.
따라서 일본이 얼마나 성의 있는 태도로 대화 테이블에 나서느냐와, 미국이 물밑에서 한일간의 '화해'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할 것이냐가 앞으로 지켜봐야 할 중점 사항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