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단식 투쟁에 이어 대규모 인적쇄신을 예고한 칼을 빼들면서 성공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일각에선 야당 대표로서 최후 수단인 단식투쟁이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날 경우 리더십 붕괴가 예상돼, 사실상 도박에 가까운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황 대표는 지난 20일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 수용,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공수처, 선거법 포기 등 3대 조건을 내세우며 단식투쟁을 선언했다.
동시에 “당을 쇄신하라는 국민의 지엄한 명령을 받들기 위해 저에게 부여된 칼을 들겠다”며 총선을 앞두고 대규모 물갈이를 시사했다. 지난 17일 김세연 의원의 불출마 선언으로 본격 불이 붙은 인적쇄신 요구에 대해 총선기획단은 이날 현역의원 50% 교체 카드로 응답했다.
총선기획단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 총선 공천에서 현역의원 3분의 1 이상 컷오프(공천심사 배제)를 포함한 현역들의 절반 이상을 교체하는 개혁공천을 하겠다고 밝혔다. 공천 작업의 최종 책임자인 당 대표와 사전 교감 하에 발표된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황 대표의 의중이 실린 셈이다.
현재 108명에 달하는 한국당 의원 중 지역구 의원은 총 91명이다. 해당 방식을 적용하면 최소 30명 이상이 공천심사 단계에서 배제된다. 비례대표 17명과 불출마를 선언한 김무성‧김세연 의원 등과 내부 경선 탈락자를 포함하면 현역의원의 50%(54명)를 넘길 것으로 총선기획단은 전망하고 있다.
예상을 뛰어넘는 대규모 물갈이 계획을 두고 당내 반응은 엇갈린다.
불출마 선언과 함께 당 해체를 촉구한 김세연 의원은 통화에서 “과감한 혁신에 대한 논의는 의미가 있지만, (교체비율을) 50%로 한정한 것은 아쉽다”며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다같이 불출마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말씀 드린 바 있다”고 말했다.
오는 23일 지소미아 종료, 다음달 3일 패스트트랙 법안 상정 등 굵직한 일정을 앞두고 공천 물갈이의 성공 여부도 결국 황 대표의 단식투쟁에 달렸다는 게 중론이다.
내부에선 인적쇄신, 외부에선 보수통합의 압박을 받던 황 대표가 고차 방정식을 풀기 위한 수단으로 단식이라는 초강수를 뒀지만, 기본적으로 도박성이 짙다는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우선, 황 대표의 단식 투쟁 도중 청와대의 입장 변화 또는 항복을 받아내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다. 지소미아 연장과 선거법 개정안 저지 등을 통해 외부에서 먼저 존재감을 높일 경우, 인적쇄신과 보수통합 등 내부 이슈에서도 확고한 주도권을 쥐게 된다.
당내 한 친박계 초선의원은 통화에서 “지난번 패스스트랙 사태 때도 봤지만, 지금 야당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이라며 “황 대표라고 해서 그걸 모르겠나. 이 추위에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모습을 보이며 국민들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게 모든 것을 걸었다”고 말했다.
반면, 단식투쟁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리더십에 막대한 타격이 예상된다. 내부 문제를 풀지 못한 상황에서 외부로 시선을 돌리기 위해 단식을 택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던 만큼, 장악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당내 한 중진의원은 통화에서 “황 대표가 단식으로 큰 베팅을 했는데 성공하지 못하면 곧바로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며 “당 대표의 리더십이 약하면 물갈이에 저항하는 의원들을 제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을 종합하면 황 대표가 이미 단식에 돌입한 순간부터 현 정권과의 정면대결을 피할 수 없는 형국으로 들어섰다는 분석이다. 황 대표가 제시한 조건이 청와대와 여당이 쉽사리 수용하기 힘들다는 점이 향후 펼쳐질 상황을 더욱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당내 핵심관계자는 통화에서 “단식에 돌입하기 전이라면 장단점을 따져볼 수 있겠지만, 지금은 사실상 낙장불입(落張不入)이다”라며 “어떻게든 펼쳐진 도박판에서 무조건 이겨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