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업체가 내민 계약서…소비자는 영원한 '을'

[주택 건축의 함정③] 정부 표준계약서 사용해야
피해 건축주들 모여 업체 상대로 고소해야 유리

※ 자연을 벗 삼아 전망 좋은 집에서 보내는 여유로운 전원생활. 내 집을 짓는다는 것은 누구나에게 가장 큰 꿈이자 로망이다. 설계부터 인테리어까지 전문가의 도움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막상 주택을 짓게 되면 소비자는 '갑'이 아닌 '을'이 된다. 불공정계약, 공사 중단, 건축 하자 등 물적·심적 고통을 겪는다. CBS노컷뉴스는 '주택 건축의 함정'을 통해 일부 건축회사가 소비자를 어떻게 기망하는지, 또 피해를 최소화 하는 방안은 무엇인지 모색해 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로망의 기쁨 보다 좌절만…전원주택 건축 주의보
②눈뜨고 코베이는 건축주…법인회사도 먹잇감 전락
③보기 좋은 떡은 주의…대금 지불 방식 개선해야
<계속>


공사가 멈춘 주택 건설현장. 피해 건축주는 계약에 따라 건축회사에 총 건축비 가운데 90%를 이미 지불했다. (사진=피해 건축주 제공)
건축 지식이 없는 개인 건축주는 건축회사를 믿고 멋진 집이 지어지길 기대하지만 막상 공사가 시작되면 건축주는 '갑'이 아닌 '을'로 뒤바뀐다.

주택 건축은 설계→기초공사→골조공사→외장공사→내장공사 순으로 진행된다. 설계는 인허가를 포함해 약 3개월, 건축은 규모와 방식에 따라 3~6개월 정도 소요된다.

건축주는 공사 단계에 따라 건축비를 업체에 지급한다. 지불 조건은 계약서에 명시하는데 건축주는 계약 내용에 따라 대금을 지급해야 한다. 제때 지급하지 못하면 공사는 중단된다.

계약서는 업체가 제시한다. 대부분 국토교통부의 건축공사 표준계약서를 통해 계약이 이루어지지만 일부 업체는 자신들이 만든 계약서에 서명하도록 유도한다.

계약서에는 건축주가 '갑'으로 표기돼 있지만 서명을 하는 순간 자신만 모르게 '을'이 된다.

한 건축회사의 건축공사 계약서는 계약금 10%, 착공미팅시 40%, 골조완료시 40%, 완공시 10% 순으로 지불 방식이 명시돼 있다.

공사를 착공하기 전에 전체 건축비의 50% 지급하는 구조다. 예를 들어 3억원에 주택을 짓는다고 가정하면 업체는 삽도 뜨기 전에 1억5천만원을 확보하게 된다.

또 골조가 완성되면 건축주는 계약에 따라 40%를 추가로 지급한다. 보통 골조가 완성되면 전체 공정률의 약 50%가 진행된 것으로 보는데 돈은 90%가 넘어가는 셈이다.

공사가 멈추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건축주에게 돌아간다. 건축주가 항의해도 업체는 버티면 그만이다. 공사가 중단된 현장의 건축주들은 다른 업체를 선정해 남은 공사를 진행한다.

여유가 없는 건축주는 주변에서 돈을 끌어다 건축비에 보탠다. 추가 비용 부담으로 최초 계약금액 보다 약 40% 더 주고 집을 짓는 셈이다.

CBS 노컷뉴스 취재결과, 한 건축업체에 10여명의 건축주가 피해를 입은 사례도 확인됐다. 피해금액도 20억원이 넘는다. 아직 파악되지 않은 건축주와 돈을 받지 못한 하청업체까지 포함하면 피해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업체에 지급된 돈을 돌려받는 것도 쉽지 않다. 업체를 고소해도 공사가 진행됐기 때문에 사기 혐의가 적용될지도 불투명하다.

민사소송을 제기하면 되지만 보통 2~3년이 걸린다. 또 변호사 선임비용, 인지세 등 법적 소송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자칫 소송 과정에서 업체가 파산하면 돈을 돌려받지도 못한다. 돈 받을 주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변호사 이형섭 법률사무소 이형섭 대표 변호사는 "건축이 진행되고 중간에 멈추었다고 해도 사기 혐의를 적용하기 어려워 보인다"며 "사기는 금전 편취 정황과 목적을 명확히 증명해야 된다"고 말했다.

다만 "건축회사 1곳에서 다수의 건축주를 상대로 같은 피해가 반복됐다면 의도적으로 금전을 편취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피해액이 수억원에 달한다면 경찰과 검찰도 수사를 설렁설렁할 수 없기 때문에 구속 수사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전원주택을 짓다 피해를 입은 건축주들이 업체 사무실 앞에 설치한 현수막. (사진=피해 건축주 제공)
◇건축박람회 등 '부실 업체 만연'…표준계약서 사용해야

공사 중단으로 피해를 입은 건축주 대부분이 인터넷 검색 또는 건축박람회에 참가한 건축회사와 계약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공신력을 가진 박람회에 부실업체가 참여할 것이란 생각은 꿈에도 못했다. '업계 1위', '최다 시공', '친환경 건축' 등 소비자를 현혹하는 홍보로 넘쳐났고, 건축주는 그대로 믿었다.


그러나 막상 박람회에 참여한 업체와 계약, 공사를 진행해 피해를 입게 되면 박람회를 주최한 주관사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부실 업체인지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돈만 받고 자리를 빌려주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건축박람회의 공신력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돈은 돈대로 날리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이중 삼중 고통을 겪는 건축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우선 계약서부터 꼼꼼히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건축 계약을 체결할 경우 업체가 보기 좋게 제작한 계약서는 피하고 되도록 국토부의 '건축공사 표준계약서'를 사용해야 한다.

건축주에게는 불리하고 업체에게 유리한 조항이 곳곳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업체에서 인쇄한 계약서를 이용할 경우 표준계약서의 조건과 비교해 따져봐야 한다.

우선 ▲공사예정공정표·공사가격 내역서 ▲상세시공도면 작성 ▲안전관리·재해보상 ▲지체상금 ▲하자담보 ▲하도급 제한 ▲선금 등의 내용이 업체가 제시한 계약서에 기재되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해당 내용은 건축주 피해를 방지하는 조항이지만 건축회사가 제작한 계약서에는 빠져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표준계약서에는 건축주가 계약금 등 선금을 지급한 경우 업체는 이를 집을 짓는데 외에는 사용할 수 없으며 인건비와 자재확보에 우선 사용하도록 명시돼 있다.

또 준공 후 건축하자 피해 예방을 위해 업체는 남은 공사대금을 받기 전까지 현금 또는 건설공제조합 보증서, 보증보험증권, 은행 지급보증서 등의 담보를 건축주에게 제공해야 한다.

특히 업체가 준공기간 내 공사를 완료하지 못하면 건축주는 전체 공사비에 지체일수, 지체상금률을 곱한 지체상금을 업체에 청구해 받을 수 있다.

이밖에도 건축주는 설계를 기초로 한 공사예정 공정표와 내역서, 상세시공도면 등을 업체에 요구해 꼭 확보해야 한다. 분쟁이 발생하면 이를 토대로 모든 귀책사유를 따지게 때문이다.

건축회사가 자체 제작한 계약서(좌측)와 국토교통부의 표준계약서(우측). (사진=고태현 기자)
◇건축 피해 예방 위한 '3자 지급 방식' 도입해야

이처럼 계약내용을 확인했다면 건축주는 업체와 상의해 대금 지불방식을 보다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업체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공사 대금을 요구하는데 공정률에 비해 많은 대금이 지급되면 건축주는 업체에게 끌려 다니게 돼 주의가 필요하다.

때문에 대금 지불방식을 건축주와 업체 간 직거래가 아닌 제3자를 통해 지급하게 되면 공사 중단으로 인한 건축주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의 의견이다.

예를 들어 은행이나 신용기관 등을 매개체로 해서 건축주가 건축비용을 기관에 납부하면 건축업체가 공정률에 따라 대금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부실 업체로 인한 건축주 피해와 건축비용 지급 지연 등 불량 건축주로 인한 건설업체의 피해를 동시에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건축업계에 24년간 몸 담아온 이모(52) 건축사는 "건축주는 저렴하게 집을 지으려고 하고, 건설회사는 이윤을 남기려 하도급 업체에 공사를 맡기는 것이 현재 건축업계의 현실"이라며 "원청 업체가 하도급 업체에 제때 대금을 지급하지 못해 공사가 멈추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건축주도 내 집을 짓는다는 기대감 보다는 발품을 팔아 보다 많은 정보를 비교해야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다"면서 "법제화가 필요하지만 3자 지급 방식이 건축 피해 예방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건축사는 그러면서 "건축주도 계약 당사자인 만큼 불공정 계약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면서도 "업체가 자체 제작한 계약서는 피하고, 업체에 국세완납증명서, 법인등기부등본 등을 요구해 부실 업체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