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묵직한 타이틀인 올림픽 챔피언의 자리를 지키는 것도 쉽지 않게 됐다. 내년 도쿄에서 12년 만에 열리는 올림픽 야구 종목에서 라이벌 일본의 거센 도전을 뿌리치기 위해 할 일이 더 많아졌다.
김경문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17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19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일본과 결승에서 3 대 5 패배를 안았다. 1회 3점을 내며 기분좋게 출발했지만 곧바로 역전을 허용했고, 끌려가던 흐름을 끝내 뒤집지 못했다.
지난 2015년 1회 대회 정상에 올랐던 한국은 우승컵을 일본에 내줬다. 당시 한국은 일본과 4강전에서 기적같은 9회 3점 차 대역전승을 거둔 여세를 몰아 결승에서 미국을 완파하며 초대 챔피언의 영광을 안았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조별리그를 3연승으로 통과했다. 그러나 슈퍼라운드에서 대만에 완패를 당했고, 일본에도 연패를 안았다. 물론 소기의 목적인 올림픽 본선 진출 티켓은 확보했지만 챔피언의 자존심을 지키지 못했다.
▲야구는 투수 놀음, 제구에서 완패
무엇보다 한국은 라이벌 일본과 전력으로 맞붙어 힘의 차이를 느끼며 패한 게 컸다. 특히 경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마운드 싸움에서 밀렸다.
결승에서 한국은 1회 김하성의 2점포, 김현수의 솔로포 등 홈런 2방으로 3점을 냈다. 그러나 2회 1점, 3회 3점을 내주고 곧바로 역전을 허용했다. 에이스 양현종이 흔들렸는데 모두 볼넷이 화근이었다. 1회말 1사에서 사카모토 하야토를 볼넷으로 내보낸 양현종은 2사에서 4번 스즈키 세이야에게 좌월 2루타로 실점했고, 2회는 2사에서 8번 타자 아이자와 츠바사를 볼넷으로 내보낸 뒤 안타와 홈런을 맞고 고개를 떨궜다.
양현종은 한국을 대표하는 에이스다. 올해 KBO 리그에서 16승8패, 평균자책점(ERA) 1위(2.29)에 올랐다. 볼넷은 33개만 내줘 규정 이닝을 채운 선수 중 최소 3위일 정도로 제구가 안정적이었다.
"제구가 워낙 좋다"는 김경문 감독의 경계심처럼 일본은 마운드가 탄탄했다. 비록 선발 야마구치 순이 흔들렸지만 이후 불펜은 철벽이었다. 선발 야마구치와 다카하시 레이가 볼넷 1개씩만 내줬을 뿐 완벽한 제구로 한국 타선을 잠재웠다. 1회 이후 일본 불펜은 3안타로만 내줬다.
이번 대회에서 일본은 핵심 투수들이 빠졌다. 에이스로 꼽히던 센가 고다이에 이어 양대 리그 세이브 1위 마쓰이 유키, 모리하라 고헤이 등이 대회 직전 제외됐다. 그럼에도 한국 타선을 제압한 것이다. 일본 야구에 정통한 관계자는 "결승전 선발이 요미우리의 타선 덕을 많이 봤던 야마구치가 아니라 소프트뱅크 에이스 센가였다면 한국은 완패를 안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내년 도쿄올림픽에서 일본은 완전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한국은 양현종과 김광현 등 에이스들이 이번 대회에 나섰다. 그러나 양현종은 일본, 김광현은 대만과 경기에서 패전 투수가 됐다. 일본에 대항항 새로운 투수들을 발굴, 육성해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기본기에서부터 뒤졌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고 하지만 더 중요한 게 기본기다. 수비와 주루 플레이 등 세밀한 부분에서 일본에 뒤졌고, 이게 승부를 가른 한 요인이 됐다.
3회 역전 3점포를 내주기 전 수비에서 아쉬움이 있다. 상대 기쿠치 료스케의 빗맞은 타구를 3루수 허경민이 놓치면서 안타가 됐다. 물론 타구의 바운드가 커 전진하면서 잡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수비 강화를 위해 투입된 허경민이었음을 감안하면 아쉬운 대목이다. 결국 이닝을 마무리하지 못한 양현종이 다음 타자 야마다에게 홈런을 맞았다.
잇딴 주루사는 뼈아팠다. 대표팀은 3회초 선두 김하성이 안타로 출루해 기회를 맞았다. 그러나 김재환의 깊숙한 좌익수 뜬공 때 김하성이 2루로 언더베이스하다 횡사했다. 물론 과감한 시도였다고도 볼 수 있지만 일본의 탄탄한 수비, 결승전의 승부처임을 감안하면 아쉬움이 더 컸다.
이런 가운데 또 다시 1점 차 승부에서 주루사가 나온 것이다. 5회도 한국은 선두 김상수가 내야 안타로 출루했다. 그러나 1사에서 김하성이 헛스윙 삼진을 당한 사이 풀 카운트에서 2루로 뛰던 김상수가 협살에 걸렸다. 3회와 5회 모두 무사 1루에서 주루 플레이에 의해 기회가 무산된 것이다. 반대로 일본의 단단한 수비가 돋보였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일본은 세밀한 분석으로 한국을 괴롭혔다. 한국 투수들의 패턴을 읽고 침착하게 대응했다. 2회 야마다는 양현종의 주무기 체인지업의 타이밍을 정확하게 읽고 커트해냈고, 결국 실투를 유도해 결승포를 뽑았다. 한국 마무리 조상우도 7회 변화구와 속구가 읽히며 실점했다. 일본 야구 관계자는 "투구 동작을 읽고 있기 때문에 시속 150km 중반 강속구라도 때릴 수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극일의 가능성은 발견했다
하지만 한국 대표팀은 젊은 선수들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중심 타자, 에이스들이 다소 부진했던 상황에서 한국이 이번 대회 거둔 소득이다.
앞서 언급한 이정후(21)와 김하성(24)는 주루 플레이가 아쉬웠지만 나머지는 선배들을 뛰어넘는 활약을 펼쳤다. 이정후는 이번 대회 8경기 타율 3할8푼5리 4타점 5득점을 기록했다. 10안타 중 절반이 2루타였을 만큼 장타력도 선보였다.
김하성도 일본전 홈런을 포함해 타율 3할3푼3리에 팀 최다 6타점을 올렸다. 이정후와 김하성은 이번 대회 베스트11에도 뽑히는 영광을 안았다. 특히 김하성은 일본전 뒤 기자회견에서 "일본에 좋은 선수가 많지만 한국이 더 많다"면서 "내년 올림픽에서는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당찬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이영하는 이번 대회 5경기에서 8⅓이닝 동안 단 1점만 내줬다. 평균자책점은 1.08을 찍었다. 특히 올림픽 본선행의 분수령이 된 미국, 멕시코전에서 제몫을 훌륭하게 해냈다.
조상우도 광속구를 뽐내며 이번 대회 4경기에서 5⅔이닝 1실점, 평균자책점 1.59를 기록했다. 일본과 결승에서 2이닝 1실점이 아쉬웠지만 차세대 대표팀 마무리로 낙점받았다.
김경문 감독도 "중심 타선이 부진했지만 젊은 선수들, 투수와 야수가 성장했고 좋은 선수들이 보였다"고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돌아가서 지금 11월이지만 준비 잘 해서 8월에 싸울 수 있는 대표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대표팀 이나바 아츠노리 감독은 경기 후 "한국이 강한 팀이라는 걸 다시금 느꼈다"면서 "두 번 이겼지만 모두 종이 한 장 차이였다"고 평가했다. 종이 한 장 차이였지만 기본기의 차이였고, 거기서 승부가 갈렸다.
말은 종이 한 장이었지만 그 무게는 연이틀 패배로 이어졌다. 내년 도쿄올림픽에서 과연 그 종이 한 장 차이를 한국 야구가 극복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