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 캠페인이 극에 달했던 7월 말, 8월 초부터 눈치를 보며 일본 책 출간일을 예정보다 미뤘던 출판사들이 서서히 재어 놨던 일본 소설들을 하나둘 내놓기 시작했다. 출판계 관계자는 14일 "소나기는 피해가자는 심정으로 출간일을 늦춘 곳이 꽤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일 간 충돌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국내 문학 출판계 최대 효자상품이었던 일본 소설이 다시 경쟁에 뛰어들면서 어떤 효과가 나타날지 주목된다.
이번 주에만 일본 소설 3종이 서점가에 등장했다.
은행나무출판사는 치고지에 오비오마가 쓴 두 권짜리 장편 '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를, 비채는 미쓰다 신조의 장편소설 '검은 얼굴의 여우'를 출간했다.
소미미디어는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출세작 '동급생'을 새로운 번역과 표지로 재단장해 내놓았다.
사실 문학 분야에서 일본 소설을 빼놓고 영업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출판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올해 상반기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종합순위에서도 톱20에 든 소설 4편 가운데 2편이 일본소설이었고 한국소설은 단 하나도 없었다.
'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는 단 두 권의 소설로 세계 3대 문학상인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일본 천재 작가 치고지에의 신작이다.
사랑에 빠진 젊은이가 연인과의 미래를 기약하고자 출세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몰락한다는 다소 통속적 줄거리지만, 엄혹한 현실 속에서 발버둥 치는 마이너리티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독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심지어 화자는 인간이 아니라 절대자인 신과 사람 사이에서 중개인 역할을 하는 수호령이다. 소설은 이런 마술적 리얼리즘을 통해 새로운 느낌을 준다.
'검은 얼굴의 여우'는 호러와 미스터리를 융합한 호러 미스터리물의 총아로 불리는 미쓰다의 역작이다.
여우신 괴담을 모태로 신비의 존재인 '검은 얼굴 여우'가 밀실 살인의 배후에서 털이 곤두서는 공포를 선사한다.
괴담과 미스터리의 결합이 주는 공포에 지쳐 기진맥진한 순간 마지막 반전이 뇌리를 강하게 때린다.
'동급생'은 추리작가로서 히가시노의 지위를 더욱 탄탄하게 만든 작품으로, '방과 후'의 뒤를 잇는 두 번째 학원 미스터리 소설이다.
임신한 여고생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뒤 사건 장소에 있던 여교사도 살해된 채 발견된다. 피살 장소는 공교롭게도 여고생의 남자친구인 야구부 주장 니시하라의 교실.
용의자로 몰린 니시하라는 결백을 증명하고자 범인을 직접 찾아 나선다. 그에게 선생님과 어른들은 믿을 수 없는 존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