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위안부' 피해를 입고 일본 정부에 책임을 묻는 소송을 낸 이용수 할머니(90)가 13일 소 제기 3년만의 첫 재판을 앞두고 이같이 말했다.
이날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이 할머니는 이번 사건의 소송액수를 묻는 질문이 나오자 민변 변호사의 답변을 가로막았다.
이 할머니는 "우리는 돈이 아니라 사죄와 배상을 요구한 지 30년이 됐다"며 "일본은 소녀상이 무서우면 사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민변 일본군 '위안부' 문제대응 TF의 이상희 변호사는 "피해자분들의 고통을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다"며 "이 소송은 일반적인 손해배상 소송이 아니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2016년 12월 이 할머니를 비롯해 당시 '위안부' 생존자 11명과 사망한 피해자 6명의 유족 10명 등 총 21명의 원고는 일본 정부가 1인당 2억원씩 배상하라며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이 할머니의 말대로 돈이 아니라 일본 정부에 전시 성범죄에 대한 불법행위 책임을 지우는 것이 목적인 싸움이다.
같은 TF의 류광옥 변호사는 "일본 정부의 불법행위 책임을 법정에서 성립시키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며 "1965년 청구권 협정이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로 이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이 아님을 확인받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밝혔다.
소제기 3년 만에야 첫 재판이 열리게 된 것은 해외 송달 절차의 문제도 있었지만 일본 정부가 불응한 탓이 컸다. 2017년 4월 일본 외무성은 소장 원본과 번역본의 표지가 다르다며 소송 서류를 반송했다. 같은 해 8월과 이듬해 11월에는 "이 소송 절차에 따르는 것은 일본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된다"며 두 차례에 걸쳐 반송했다.
여러 방법을 시도한 법원이 올해 3월 공시송달을 통해 송달의 효력을 강제하고 나서야 재판이 진행될 수 있게 됐다. 그 사이 곽예남 할머니 등 6명의 원고가 사망했고 남은 생존자들의 나이는 아흔을 넘겼다. 이날 이 할머니와 길원옥·이옥선 할머니는 각각 휠체어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기자회견장과 법정에 나왔다.
재판 시작 후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난 이 할머니는 "현명하신 재판장님. 저희를 살려주세요"라고 수차례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 사건의 원고는 아니지만 함께 재판에 온 이옥선 할머니는 "할머니들이 다 죽어도 이 문제는 해결돼야 한다. (재판부에)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재판부는 현재 일본이 주장하고 있는 국제법상 '주권면제' 원칙과 관련해 변호인단에서 설득력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5월 한국 정부에 '한 나라의 국내법으로 다른 국가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논리로 이번 소송이 각하돼야 한다는 입장을 전한 바 있다.
변호인단은 "전쟁 범죄의 유일한 회복 수단인 피해자의 재판청구권을 막아서는 안된다"고 반박하고 있다. 2004년 이탈리아 대법원의 판결 등도 유리한 근거로 제시할 계획이다. 이탈리아 대법원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강제동원 당한 자국민이 독일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주권면제' 원칙보다 피해자의 재판청구권이 우선한다"고 판단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재판을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다시 한 번 당부했다. 그는 "우리는 죄가 없는데 이렇게 나이 먹도록 위안부·성노예 소리 듣는 게 너무 속상하다"며 "어떻게 이 딱지를 떼어야 하나 생각하니 반드시 재판에서 이겨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