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미국 오레건 대학의 4학년 스타 크리스 부세이(26)는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남자농구 퍼시픽-12(Pac-12) 컨퍼런스 준결승 전반전 도중 부상을 당했다. 리바운드 경합 과정에서 상대 선수와의 충돌로 왼쪽 무릎이 꺾였다.
무릎이 다소 불편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후반전에도 코트를 밟았고 팀 승리를 도왔다.
경기가 끝난 다음날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무릎 전방십자인대 파열 진단이 나왔다. 부세이는 무릎 인대에 큰 손상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끝까지 경기를 뛴 것이다.
3학년 시절 오레건대의 한 시즌 최다 블록슛 기록을 갈아치웠던 부세이의 부상은 NCAA 토너먼트를 앞두고 발생한 변수 중 하나였다.
오레건대는 그해 1번 시드를 받을 가능성이 높은 우승후보였지만 부세이가 토너먼트에 뛸 수 없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3번 시드로 내려앉았다.
부세이는 수술을 뒤로 미뤘다. 대신 동료들과의 동행을 선택했다. "내게 미안해 할 필요없다. 눈앞에 다가온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는 말로 오히려 동료들에게 힘을 줬다.
오레건대는 부세이의 부상에도 승승장구했고 8강에서 캔자스 대학을 누르고 4강(Final Four) 진출의 위업을 달성했다. 팀 역사상 1939년 이후 첫 '파이널 포' 진출이었다.
부세이는 동료들에게서 최고의 선물을 받았지만 그의 시련은 이미 시작된 뒤였다.
부세이는 압도적인 블록슛 능력과 기동력을 갖췄고 3점슛까지 던질 수 있어 현대농구의 트렌드에 잘 맞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미국프로농구(NBA) 신인드래프트를 3개월 앞두고 큰 부상을 당한 유망주를 주목하는 구단은 없었다.
부세이는 당시 미국 현지 언론을 통해 "정말 힘든 순간이었다. 내 농구 인생이 끝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릎 인대를 다친 선수를 데려가 쓰겠다는 구단이 어디 있겠는가?"라며 답답한 심정을 전했다.
부세이에게 NBA는 인생의 목표이자 꿈의 무대였다.
카리브해의 작은 섬 나라 세인트루시아에서 태어난 부세이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캐나다 몬트리올로 이주했다. 그곳에는 부세이의 캐나다 출신 아버지가 살고 있었다.
하지만 9살 때 부모가 이혼하면서 부세이의 역경이 시작됐다. 16살 때 고등학교를 그만 뒀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한때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부세이를 버티게 한 유일한 빛은 바로 농구였다. 지역 농구팀에서 활동하며 고교 과정 수료증을 딴 부세이는 이후 대학 하부리그라 볼 수 있는 주니어 컬리지 무대(NJCAA)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2시즌동안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그는 다수의 NCAA 1부 대학의 관심을 끌었고 당시 대학농구 강팀이었던 오레건대로 무대를 옮길 수 있었다.
오레건대에서의 여정은 4강 진출의 기쁨과 부상 그리고 드래프트 지명 실패의 아픔이 뒤섞인 채로 마무리됐다. 여전히 앞날을 보장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뒤늦게 그를 주목했다.
골든스테이트는 2017년 7월 부세이와 NBA 경기 출전을 보장하지는 않는 '투-웨이(two-way)' 계약을 맺었다.
그의 대학 시절 동료였던 조던 벨이 골든스테이트 신인으로서 NBA 코트를 누빌 때 부세이는 하부리그 G-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힘겨운 재활을 마치고 2017년 11월 코트에 복귀했고 NBA 선수가 되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부세이는 2018년 3월 마침내 골든스테이트의 부름을 받고 그토록 갈망하는 NBA 코트를 밟았다. 그러나 출전시간은 1분에 불과했다. 시즌 후에는 방출 통보를 받았다.
부세이는 2018년 7월 토론토 랩터스와 '투-웨이' 계약을 맺었다. NBA에서는 28경기 평균 5.8분 출전에 그쳤지만 부세이에게 2018-2019시즌은 의미가 컸다.
부세이는 2019년 G-리그에서 MVP와 올해의 수비수상을 독식했다. G-리그에서 평균 27.2득점, 11.4리바운드, 4.1블록슛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토론토는 부세이의 성장을 눈여겨봤다. 2019년 2월 부세이에게 정식 계약을 제안했고 2019-2020시즌 연봉을 보장하기로 했다.
부세이는 올시즌 첫 7경기 중 5경기에서 평균 4.5분 출전에 그쳤다. 206cm 신장에 몸무게는 90kg에 불과해 NBA 무대에서 버티기에는 파워가 다소 떨어진다는 우려가 있었다. 토론토는 그가 실전에서 리바운드나 제대로 잡을 수 있을지 걱정하기도 했다.
토론토의 불운이 부세이에게는 기회가 됐다. 간판 빅맨 서지 이바카가 지난주 뉴올리언스 펠리컨스와의 경기에서 발목을 다쳤다. 닉 널스 감독은 오랜 기간 준비를 거듭한 부세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부세이는 지난 11일 LA 레이커스 원정에서 24분동안 출전해 15득점 2리바운드 3블록슛을 올렸다. 경기 막판 르브론 제임스와 앤서니 데이비스의 슛을 블록하는 등 넘치는 에너지로 팀 승리에 기여했다.
부세이는 경기 후 토론토 현지 언론을 통해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다. 오래 전부터 그들과 함께 경기에 뛰는 장면을 상상했고 믿기 힘든 일들이 현실로 벌어졌다. 행복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부세이는 12일 LA 클리퍼스 원정에서는 13득점(3점슛 3개) 6리바운드 2블록슛으로 활약했다. 비록 팀은 졌지만 오랫동안 기억할만한 명장면을 남겼다.
몬트레즐 해럴의 덩크 시도를 두 손으로 막아낸 장면은 올시즌 현재 최고의 블록슛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장을 입고 벤치에 앉아있던 이바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누구보다 기뻐하던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온갖 시련과 불운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을 계속한 부세이는 마침내 꿈의 무대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막을 올린 그의 도전이 이번에는 어떻게 흘러갈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