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나 내나' 이동은 감독 "평범한 가족은 없더라고요"

[노컷 인터뷰] 영화 '니나 내나' 이동은 감독 ①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니나 내나' 이동은 감독을 만났다. (사진=황진환 기자)
※ 영화 '니나 내나'의 내용이 나옵니다.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 제목은 '정분'이었다. '사귀어서 정이 든 정도. 또는 사귀어서 든 정'(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뜻하지만, 일상에서는 '정분났다' 등 부정적인 표현으로 주로 쓰여서 고민스러웠다. 또, 이야기 속 한 인물에게만 집중한 것 같아서, 모든 사람을 보여줄 만한 제목을 궁리했다. 그러다 큰딸 미정(장혜진 분)의 대사 속에서 답을 찾았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영화 '니나 내나'(감독 이동은)의 제목 변천사를 짧게 정리한 것이다. '니나 내나'는 '서로 사는 모습이 달라 보여도, 결국 너나 나나 다 비슷하다'라는 '너나 나나'의 경상도 방언이다. 이 감독은 데뷔작 '환절기', 두 번째 장편영화 '당신의 부탁'에 이어, 엄마를 만나러 가는 여행을 함께하는 삼 남매 이야기 '니나 내나'까지 가족 3부작을 완성했다.

가족 이야기를 차례로, 꾸준히 내놓았다는 건 그만큼 '가족'이 그에게 중요한 관심사라는 의미일 터. 영화 개봉 하루 전이었던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이동은 감독을 만나 '가족 3부작' 탄생 배경을 물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쓰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시나리오를 쓰는 동안 사람들을 만나면서 알게 된 건 있었다. 어떤 가족도 평범하지 않고, 각자의 사연이 있다는 것.

이 감독은 주변의 이야기를 참고하며 '니나 내나' 속 가족을 그려나갔다. 큰딸 미정, 둘째 경환(태인호 분), 막내 재윤(이가섭 분), 일찍이 집을 나간 엄마 경숙(김미경 분), 치매를 앓는 괴팍한 아버지 만길(고인범 분). 글을 쓰면서 가족 구성원 중 가장 이입했던 인물이 있냐고 하자, "제 얘기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제 얘기만은 아니기도 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다음은 일문일답.

▶ 2014년 당시 제목이 '정분'이었는데, 지금은 '니나 내나'란 이름으로 개봉했다.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궁금하다.

정분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많이 쓰이지 않나. 좀 올드한 제목이고, 엄마(경숙) 당사자에게 좀 집중한 거 같아서… 병렬적으로 모든 사람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울리는 제목이 뭐가 있을까 하다가 미정이 한 대사를 봤다. '니나 내나'. 사는 게 달라 보여도 니나 내나 비슷하다고. 사실 이해해야 하는 제목이긴 하다. 그냥 말하면 잘 못 알아들으시더라. 사투리로 하면 '아, 그 니나 내나!' 하신다. (웃음)

▶ '환절기', '당신의 부탁', 이번 '니나 내나'까지 어쩌다 보니 가족 3부작이 되었다.


음, 의도적으로 쓰려고 했던 건 아닌데 2012~2014년에 시나리오 쓸 때, 제가 주변 사람들을 만나봐도 평범한 가족이 없더라. 스스로 정상적인 가족이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평범한 가족이라고 생각했는데 가까워지면 다 정말 예외적인 사연이 있었다. '아, 저 친구는 걱정 하나 없지 않을까' 했던 친구도 그 가족만의 사연이 있고 그렇더라. 어떻게 보면 (사람들은) 가족 때문에 제일 힘들고, 뭔가 자기만의 마음의 무게가 있지 않나. 그런 가족의 무게감을 홀가분하게 덜어낼 수 있는 게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가족이라는 게 보통명사인데, 미정, 경환, 재윤은 다 고유명사인 거다. 고유명사인 사람들의 서로 다른 모습을, 서로 다른 아픔과 상처를 인정하고 싶었다. 언론 시사 때도 가족이라는 게 출발지는 같지만 목적지가 다 다른 사람들처럼 조금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인정할 때 서로 홀가분해지고 행복한 길이 아닐까, 라고 했다. 가족에 대한 생각이 저는 이렇다. 그런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니나 내나'는 오래전 집을 떠난 엄마에게서 편지가 도착하고, 각자 상처를 안고 살아온 삼 남매가 엄마를 만나기 위해 여정을 떠나며 벌어지는 용서와 화해의 시간을 그린 이야기다. (사진=명필름, 로랜드 스튜디오 제공)
▶ 미정, 경환, 재윤 삼 남매에 셋째 수완(이종원 분)이 있고, 집 나간 어머니와, 분노하는 아버지가 있다. 가족 구성을 이렇게 한 배경이 궁금하다.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너무 자녀가 많다는 말을 들었다. 부부 금실도 안 좋은데 아이가 너무 많다고. 그런데 김미경 선생님이 옛말에 부부 금실 안 좋은 집안에 자식이 더 많다고 하시더라. 저도 그런 의도가 있었다. 논리적으로 맞거나 검증된 말은 아니지만, 자식이 없거나 적은 집안은 부부 금실이 더 돈독해지는데 금실은 안 좋아도 '자식 때문에 산다'고 하는 쪽도 있지 않나. 그런 아이러니를 의미하는 것 같다. 그런 맥락에서 봐주셨으면 좋겠다. 지금이야 한두 명 자식도 많지만, 저 (어릴) 때만 해도 삼 남매, 사 남매가 많았다. 그런 가족에서 엄마가 집을 비우거나 떠나가면 본의 아니게 (큰딸이) 엄마 역할을 맡지 않았나. 그래서 미정이 장녀인 가족이 됐다.

▶ 삼 남매가 돌림자를 쓰지 않고 각자의 이름을 가졌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개별성을 지니고 싶었다. 미정은 정말 평범한 이름이었던 거 같다. 다른 친구들도 평범한 이름인데 (다들) 그 시대에 맞는 평범함에 다 개별성을 주고 싶었다. 재윤이 게이인 것도 어떤 분은 너무 못 받아들이시더라. 억지로 갖다 끼워 맞춘 거 아니냐고. 근데 재윤이 왜 게이냐고 하는 건, 미정이 왜 이성애자 여성이냐고 묻는 것과 똑같다. 전 소재주의로 접근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초반에 펍에서 레인보우 깃발이 나왔고, 친구가 (재윤 집에) 왔을 때 면도기가 두 개 있고, (재윤 연인을 부를 때) '금마는 뭐'라고 했다. 게이라는 걸 말할 때도, 반전처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카메라도 그렇게 찍지 않았다. 성소수자는 주류 매체에서 실제 존재하는 비율만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가족 구성원으로 나왔을 때 너무 특이하게, 너무 크게 받아들이시는 것 같다. 또, 재윤이 게이인 건 어떤 분에게는 특이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재윤에겐) 어릴 때부터 내 존재인데 가족에게는 말 못 할 사연인 거다.

▶ 앞서 언급하긴 했지만, 재윤은 가족 앞에서 커밍아웃하는 성소수자다. '환절기'에서도 고등학생인 성소수자를 주인공으로 했고, 이번에도 삼 남매 중 한 명으로 등장시켰다. 이런 설정을 한 까닭은.

그냥 저는 제 주변의 이야기고 저는 늘 접하기도 해서 그게 막 특이했던 건 아니다. 매체나 이런 콘텐츠에서 다룰 땐 아주 특이한 케이스로 많이들 다루다 보니까… 더 조심스러운 게 있다. '보편성'으로 다가가고 싶었다. 가섭 씨(재윤 역)도 게이라는 캐릭터를 특별히 염두에 두진 않았다고 한다. 여러 요소 중 하나로 이해했다고 했다. '내 게이다'라고 할 때 카메라를 들이댄다든지 하지 않고 되게 플랫하게, 세 명(삼 남매)을 똑같이 보여줬다. (성 정체성이) 재윤에게는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니어서 나머지 두 사람에게 그냥 각자의 모습을 보여줬던 것 같다.

▶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보니 특히나 관계성이 눈에 띄는 것 같다. 인물과 관계성을 설정하면서 신경 쓴 부분은.

제 주변 이야기를 많이 참고했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미정이 캐릭터 모델이 됐던 분이 있다. 경환이 둘째이긴 하지만 누나가 약간 철이 없다는 부분이 있다. 본인 모습으로 살았으면 귀여운 누나 같은 캐릭터였겠지만, 맞지 않는 엄마 역할 하다 보니까 우왕좌왕하는 거다. 사진 찍는 행위는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지 않나. (사진 찍는 경환은) 장남 역할을 하면서 밸런스를 맞춰주는 인물이다. 재윤은 엄마처럼 빨리 가족을 떠나고 싶어 했던 인물이다. 수완이가 스키장 알바하는 건… 제가 고향이 부산인데 대학교 때 처음 하는 알바가 스키장 알바가 많다. 부산에는 눈이 안 오니까 가급적이면 무주 이런 데로 가서 스키장 알바를 한다. 돈도 벌고 눈도 보고. (웃음) 그게 로망이었다.

'니나 내나'는 엄마를 만나러 가는 삼 남매와 규림의 로드 무비다. 첫째 미정 역은 장혜진, 둘째 경환 역은 태인호, 막내 재윤 역은 이가섭이 연기했다. 극중 미정의 딸 규림 역은 김진영이 맡았다. (사진=명필름, 로랜드 스튜디오 제공)
▶ 글을 쓰면서 가장 이입했던, 혹은 본인으로부터 시작했던 캐릭터가 있나.

다 주변 사람들 얘기라서… 제 얘기기도 하지만 그래서 한편으로는 제 얘기만은 아니다. 모델로 삼았던 분들은 (영화를 봐도) 오히려 잘 못 느끼시더라. 저희 가족은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내 얘기네' 하더라. (웃음) 아무래도 글을 쓸 때는 제 이야기가 있으면 제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더 가공을 한다든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참고해서 짓는다. ('니나 내나'에) 제가 특별하게 드러났다기보다는, (극중) 관계가 (저와) 비슷한 게 많았다. 아버지와 서먹서먹한 면이나 누나가 있는 점, 그런 관계 부분이 많이 드러나지 않았을까 싶다. 부모님이 부부 싸움할 때 느꼈던 감정이나, 아버지 보면서 이해하면서도 '저 세대들은 왜 저렇게 살까?' 싶은 마음도 들어갔고. (부모 세대도) 저희를 보며 이해 못 하는 게 있겠지만.

▶ 가족 사이에 그렇게 큰 갈등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데, 미정과 재윤은 자주 언쟁을 벌이고 장례식장에서는 갈등이 폭발한다. 그 응어리의 원인은 뭐였을까.

가족끼리 참… 얘기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맨날 보는 사이에 '앉아 봐. 얘기 좀 해' 그러면 더 싸우게 되고, 그래서 얘기하기가 어렵고. 멀리 살면 멀리 사니까 어렵고. 엄마 장례식장이라는 장이 펼쳐지니까 서로 모일 수밖에 없고 서로 속내를 볼 수밖에 없는 자리니까 얘기한 것 같다. 저희 포스터 태그 라인 카피에 '그냥 한 마디 말이면 되는걸'이란 게 있다. 제가 쓴 건 아니지만. 이처럼 남이면 더 쉬운 사이가 될 수 있는 거다. 가족이니까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고, (그게) 진심인지 아닌지도 아니까 가짜로 하기도 어렵고. 미안한데 괜히 (표현은) 엇나가고, 그런 스스로를 보면서 싫은 감정도 생기고… (가족은) 그동안 쌓아온 히스토리가 많으니까 사소한 말도 상처가 되는 것 같다.

▶ 셋째 수완의 죽음은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예정돼 있던 건가.

조심스럽긴 한데, 시나리오 썼던 계기가 됐던 것 같다. 2014년 그해에 모든 사람이 받아들이지 못한 사건이 있었다. 저 역시도 세월호 사건을 겪었다기보다 목도했고, 그 사건이 제 안에서 이해되기를 바랐던 거 같다. 그때는 워낙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공적인 영역에서 진실규명이 이뤄져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사적으로도 감정 자체가 크기 때문에 그걸 어떻게 풀어내야 하나… 하여튼 마주하기도 힘든 사건이었다. 당연히 세월호 유가족분들은 더 그랬을 것 같은데, 저도 그때 많이 무거웠다. 저는 데뷔하기 전이니까 제가 하는 일이 글 쓰는 일밖에 없으니 더 이입하게 됐다.

그해 여름인가 심리센터에서 치료 도와주시는 분들을 만났는데, 그분이 자기는 하는 일이 없을 수도 있다고 하시더라. 대단한 일이 아니라 그냥 (유가족분들과) 매일 일상을 함께해준다고 한다. 내일 고지서 내세요, 휴지 사러 가세요 하신다고. 왜 그런 일을 하시는지 물으니, 그분들도 어쨌든 살아내야 하니까 매일매일 새로운 기억을 만드는 거라고 한다. 좋은 기억을 만들어주는 데 집중한다고. 예전 심리 트라우마 치유 방식이 과거 상처 입었던 걸 바라보고 마주하고 스토리텔링 하는 것이었다면, 요즘은 새로운 현재나 미래의 기억을 만들어주는 거라고 한다.

그때 너무 공감했다. 더 이전에 저도 지인분을 떠나보낸 적이 있다. (돌아가신) 지인과 더 가까운 분이 있었는데 저는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결과적으로 저도 방치했던 건데 그분도 세상을 떠나셨다. 그러고 나서 그 얘기를 딱 들으니까 후회가 되더라. 제가 대단한 걸 하려고 하지 않고 떠난 사람 마음에 담아둔 그분과 현재에 집중했더라면 오히려 그분이 아픔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됐다. 그런 게 이 작품에 녹아들었던 것 같다. 저희가 뭔가 상처를 위로하거나 상처를 없앨 수는 없겠지만, 그 흉터 위에 계속 새 살과도 같은 기억을 만들어 내자는 마음? 그게 시발점이 돼서 작품을 쓰게 됐다.

▶ 아버지 만길(고인범 분)이 수완으로 착각하는 현중(이효제 분)의 이야기는 왜 넣은 것인가.

그 아버지가 치매도 걸리고 죄책감으로 그 친구를 만나게 되지만, 아마 수완에게도 역시 잘 못 대했을 거 같다. (현중을) 수완으로 착각하고 못다 한 과거를 현재로 사시는 분이다. 또 저희가 수완 이야기에 굳이 세월호를 빗댈 수는 없겠고, 세월호 사건이 개인의 사건일 수도 있지만 저는 공동의 사건이라고 본다. 사건 당사자와 가해자가 있지만, 그때 어린 친구들이 많이 세상을 떠났지 않았나. 저를 포함해 저희 윗세대의 잘못인 것 같더라, 모든 면에서. 그 친구들에게 너무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아버지(만길)가 못다 한, 그 세대분들이 먼저 해야 하는 말이 미안하다는 말 같아서, 떠난 아들(수완)에게는 못 했겠지만 비슷한 (또래)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말하는 장면을 넣게 됐다. <계속>

'니나 내나' 각본을 쓰고 연출한 이동은 감독 (사진=황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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