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한 일간지는 여론조사업체들이 문재인 정부에 유리한 조사 결과를 내놓기 위해 표본을 조작한다는 취지의 기사를 게재했다. 이 기사에는 1만 건 이상의 댓글이 달렸다. 그 중 1만2000여건의 공감을 받은 댓글이 있다. 댓글의 내용은 "여론조사 전화를 받았는데 자유한국당을 지지한다고 응답하자 업체 측에서 전화를 끊어버렸다"는 것. 이러한 주장은 댓글에서뿐만 아니라 최근 SNS 등을 통해 보수 지지층 사이 떠도는 얘기다.
여론조사 도중 특정 지지층이라고 답하면 전화를 끊는다, 과연 사실일까?
우선 가능성은 있다. 목표 할당량이 다 채워졌을 때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 관계자에 따르면 선거여론조사는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통계에 따라 성별, 연령대별, 지역별로 목표 할당을 채우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객관성과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가령 '서울시에 거주하는 남성 50대'의 참여율이 높아 목표 할당량을 달성했을 경우에는 전화가 끊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울 소재 대학교의 언론정보학과 A 교수는 "여론조사업체가 다짜고짜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지부터 묻는 일은 없다. 대개는 할당표집을 하기 때문에 지역, 연령, 성별부터 물어본다. 그런데 그 응답자가 이미 달성한 표본에 해당할 경우 업체 측에선 더 이상 답을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끊을 수 있다. 여론조사 도중 특정 지지층이라고 해서 전화를 끊는 일은 웬만해선 일어날 수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또 다른 가능성은 당내 경선 조사를 할 때다.
여론조사업체들은 선거철마다 예비 출마자나 정당의 내부 공천 조사 의뢰를 받는다. 공천 조사에서는 해당 정당의 지지층과 무당층만을 조사 대상으로 삼는다. '후보 A, B, C 중 누가 우리 정당에 가장 적합하냐'는 조사를 하는데 기타 정당 지지층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당내 경선 조사나 공천 조사의 경우 기타 정당 지지층이라고 답하면 조사가 종료될 수 있다.
여론조사업체 리서치뷰의 안일원 대표는 "당내 경선 공천 적합도 조사의 경우 특정 정당층이 필터링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전국구로 진행되는 국정 지지도나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는 의도적으로 특정 지지층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안 대표는 "만약 여론조사업체가 무작위성이 담보되는 조사를 진행하면서 특정 정당 지지층을 배제했다면, 이는 선거여론조사 기준을 위반한 것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이 사안에 대해 여심위에 신고를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조작이나 왜곡이 드러나면 패널티가 어마어마하다. 기관 인증이 취소될 수도 있는 사안이다. 주기적으로 조사결과를 공표하는 기관이 이런 행위를 했을 리는 없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여심위 취재 결과 최근 6개월 간 조사기관의 표본 조작 문제로 신고가 들어온 사례는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심위 관계자는 "표본의 대표성 확보 규정을 위반하면 여심위가 고발을 할 수 있고 징역 3년 이하, 벌금 600만원 이하의 처벌을 받는다. 또 선거여론조사기관이 기소되거나 고발될 경우 해당 선거에서 공표나 보도를 할 수 없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여론조사업체가 특정 지지층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조사하는 일은 일어나기 힘들다"고 말했다.
우선 전문가들은 추출의 문제를 지적한다.
한국의 선거여론조사 기준은 성, 연령, 지역 등 인구통계에 따라서만 가중치를 주도록 허용한다. 가령 중장년층의 투표율이 젊은 층의 투표율보다 상대적으로 높다면 표본을 추출할 때 투표율을 반영하는 것이 타당하다. 특정 현안에 대한 조사에서도 대통령 지지도나 정당 선호도 등을 기준으로 표본을 추출하는 게 더 타당할 때가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인구통계에 따라 추출한 표본만을 허용하기 때문에 과대표집(특정 집단의 여론이 실제보다 부풀려 수집)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즉, 뽑아놓고 보니 여론조사 참여에 더 적극적인 특정 지지층이 표본에 더 많이 포함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응용통계학과 B 교수는 "조사방법론 관점에서 최초의 표본들로 조사를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무작위로 추출된 사람들이 모두 응답하진 않는다. 조사업체에서는 표본의 크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최초 표본인 무응답자에게 콜백(다시 전화를 거는 것)을 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응답해줄 사람을 찾는다. 그렇다면 누가 응답을 잘 해주겠나. 뚜렷하게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이 있는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조사에 참여하지 않겠나"라고 주장했다. 이런 이유로 인구통계에 따라서만 표본을 추출하는 방법은 전세계적으로 이미 사라졌다는 게 B 교수의 설명이다.
'승자편승효과'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본인이 투표한 후보가 낙선했을 경우 해당 후보를 지지했다는 사실을 감추려 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정부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여론조사 전문가 C 교수는 "현 정부 지지층이 과대표집되는 현상은 과거 정부에서도 늘 있던 일이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굉장히 심했다. 지난 정부 때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실이 드러나고 대통령 탄핵까지 겪으면서 이른바 '샤이보수'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현 정부 초기 보수층 유권자들은 거의 여론조사에 참여하지 않는 경향이 뚜렷했다.
C 교수의 연구 결과를 보면 여론조사에 승자편승효과가 실제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C 교수에 따르면 이번 정부 초반에는 ARS 조사보다 면접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더 높게 나왔다. 이런 현상이 처음 나타나기 시작한 건 탄핵 정국에서 태블릿 PC가 드러났을 때다.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율은 ARS 조사보다 면접조사에서 훨씬 낮게 나왔다. C 교수는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를 "조사원에게 직접 의사를 밝혀야 하는 면접조사에서는 당당하게 박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말하기 힘든 시기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균태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침묵의 나선 이론에 근거를 두고 설명하면 자신의 의견이 소수의견일 때는 감추려는 심리적 속성이 있다"고 밝혔다. 한 교수는 이어 "SNS 등을 통해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성향도 있는 반면, 자신의 의견이 우세 여론이 아닐 때 이를 표출하지 않으려는 성향도 있다"고 덧붙였다.
언론학을 전공한 C 교수는 최근 불거지는 여론조사의 객관성 논란에 대해 "정치적 갈등이 과거보다 심해졌고, 매체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에는 사람들이 접하는 뉴스가 거의 비슷했지만 이제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뉴스만 선택해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자신이 지지하는 진영이 더 옳고 우세하다는 착시효과가 생겨났다. 정치적 갈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여론조사에 대한 객관성 논란이 나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