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는) 다 우리 대한항공에 있다가 간 사람들이야."
2014년 12월 5일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이 발생한 후, 당사자였던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현 대한항공직원연대 지부장)은 곧바로 본사로 소환돼 위와 같은 말을 들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을 보좌하던 여모 상무는 박 전 사무장에게 비행기에서 내리게 된 과정을 왜곡·은폐한 경위서를 5~6회에 걸쳐 작성토록 했다."너 회사 오래 다녀야 되잖아. 정년까지 안 다닐 거야?"라고 협박해 박 전 사무장이 시말서를 쓰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항소심 법원은 박 전 사무장에게 기내에서 폭언과 폭행을 가한 조 전 부사장보다 이를 덮으려한 대한항공의 죄질이 더 나쁘다고 판단했다.
지난 5일 서울고법 민사38부(박영재 부장판사)는 1심에서 인정된 대한항공의 손해배상 금액 2000만원을 7000만원으로 올려 선고했다. 조 전 부사장이 박 전 사무장에게 지급해야 할 손해배상 금액은 3000만원으로 원심과 같이 유지했다.
재판부는 "여 상무는 단순히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 조양호 회장의 딸이자 회사의 부사장인 조현아의 잘못을 은폐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불법행위를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벌 일가나 고위임원의 잘못을 은폐하려 근로자의 인격권을 침해하고 (비행기) 승객에 대한 안전배려의무를 게을리 했다"며 "재발을 억제·예방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위자료 산정에서 중요하게 고려했다"고 밝혔다.
최근 회사 측 위자료가 크게 책정된 사례로는 르노삼성의 성희롱 사건이 있다. 지난해 4월 서울고법은 사내 성희롱 피해를 호소한 피해자를 오히려 부당하게 징계한 회사에 대해 4000만원의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회사의 불법행위가 명백히 인정되더라도, 위자료 액수는 1000만원 미만 소액인 경우가 많았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가해 당사자가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줬거나 회사가 임금이나 위로금을 일부 보전해줬다는 점을 재판부가 참작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그러나 불법행위에 대한 회사의 책임은 명백히 분리돼야 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변호사는 "아직 국내엔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없기 때문에 이번 판결 같은 사례가 쌓이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며 "회사의 불법행위로 인한 직원의 피해는 균형성 측면에서 회복이 어렵고 장기간 이어진다는 것을 법원이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