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은 7일(이하 한국시간)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의 라이코 미티치 경기장에서 열린 츠르베나 즈베즈다와 2019~2020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조별리그 B조 4차전 원정경기에 선발출전, 멀티골을 터뜨려 팀의 4-0 승리를 이끌었다.
손흥민은 이날 개인 통산 122,123호 골을 넣으며 유럽 프로축구 통산 한국인 최다골 신기록도 세웠다. 종전 기록은 차범근의 121골.
기록과 함께 손흥민의 빠른 심리 회복에도 이목이 쏠린다.
손흥민은 지난 4일 에버턴과 2019~2020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11라운드에서 자신의 백태클에 넘어진 상대팀 안드레 고메스가 발목이 골절되자 정신적인 충격이 컸다.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한 손흥민은 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가 토트넘의 항소로 퇴장과 징계가 철회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즈베즈다와 경기에서 심리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기량을 십분 발휘했다.
이는 축구 경기의 항상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7년 동안 여자 축구국가대표팀 멘탈코치로 활동한 윤영길 한체대 교수는 CBS노컷뉴스에 "축구선수들은 경기 중 다치거나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 상황을 심판의 오심처럼 경기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이는 자연스럽게 동업자 정신으로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때문에 선수들은 부정적 감정이 오래 가지 않고 2~3경기 정도 치르면 심리를 회복할 수 있다. 이러한 심리적 대응력은 손흥민이 유럽리그에서 살아남은 비결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손흥민은 즈베즈다와 경기에서 첫 번째 골을 넣은 뒤 고메스의 쾌유를 비는 기도 세리머니를 펼쳤다. 수술 후 재활 중인 고메스 역시 SNS를 통해 "응원해주고 힘을 줘서 고맙다"고 적었다.
토트넘의 즉각적인 심리지원도 돋보였다.
토트넘은 지난 4일 경기 직후 손흥민이 심하게 자책하자 전문가로부터 심리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손흥민이 의도적으로 백태클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줘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선수에게 심리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해외구단과 달리 국내 프로구단은 선수에 대한 심리지원이 부족하다.
K리그1은 2007~2008 두 시즌 동안 김병준(인하대) 교수를 멘탈 코치로 뒀던 FC서울을 제외하면 멘탈 코치를 정규스태프로 둔 구단이 없다. 전문가를 초빙해 비정기적으로 단기 심리특강을 진행하는데 그치고 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이후 남자대표팀에도 멘탈 코치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됐지만, 지난해 8월 출범한 벤투호에도 멘탈 코치는 탑승하지 않았다. 러시아 월드컵 당시 한국과 함께 F조에 속했던 독일, 멕시코, 스웨덴에는 모두 멘탈 코치가 있었다.
멘탈 코치는 심리기술훈련을 통해 선수들이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심리적인 거리가 먼 선수와 코칭스태프 간 가교 역할도 한다.
국내 축구계에서 멘탈 코치가 활성화되지 않는 건 인식 부족과 공급과 수요의 불일치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윤영길 교수는 "피지컬 트레이너와 경기분석관이 눈에 보이는 부분을 다루는데 반해 멘탈 코치는 눈에 안 보이는 부분을 다룬다. 멘탈은 훈련효과를 눈으로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중요성을 간과하기 쉬운 마지막 퍼즐과 같다"며 "감독에게 팀 구성권이 있기 때문에 멘탈 코치 고용은 감독의 입장이 중요한 변수"라고 말했다.
이어 "이전보다 멘탈 코치를 원하는 구단이 많아졌지만, 국내 멘탈 코치 인력풀이 좁다 보니 충분한 커리어와 역량을 갖춘 멘탈 코치가 적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