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 잡으려 '정시확대'카드 냈지만 범진보는 '글쎄'

문재인 "정시확대"·교육부 학종실태조사 후 범진보 연이어 토론회
정의 간담회선 "'사교육 부담', '수능도 공정 담보 못해'" 등 부정기류 강해
심상정 "정시-수시 오가는 회전문식 논쟁 접어야…교육주체와 대화 필요"
정의·평화 토론회 모두 참석한 사교육걱정 구본창 "英, 지역격차해소 제도 주목해야"
다만 평화당 토론에선 "학종보다 수능이 객관성 높은만큼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

문재인 대통령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이른바 '조국 사태'가 촉발한 입시 불공정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정시 확대'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범진보 진영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사교육 과열 등 부작용이 뻔하고 현재 다변화된 입시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 없이 단순히 정시 비율을 높이는 것은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만 늘릴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정의당과 민주평화당은 6일 일제히 '대입제도 개편 교육당사자 간담회'와 '대학입시개혁특별위원회 긴급토론회'를 개최했다.

최근 문 대통령이 "정시 확대"를 언급했고 이와 관련해 교육부가 13개 대학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등 최근 정부의 움직임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여부가 주된 논의 대상이었다.

정의당은 단순히 '수시가 문제이니 정시를 확대해야 한다'는 식의 처방이 정답은 아니라며 현행 수시전형의 문제점을 개선하면서도 고교 서열화와 특권 계층보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놓인 학생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하자는데 방점을 뒀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수십 년 동안 수십 번 고쳤지만 나아진 것이 없는 정시-수시의 회전문식 논쟁은 이제 접어야 한다"며 "11월 중에 발표한다는 개편도 '깜깜이'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데, 교육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대입제도 개선 방안을 교육 주체들과 함께 논의하고 합의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부모찬스' 없앨 수시전형 내 불균형 조정 △상위권 대학의 고른기회 전형 획기적 확대 △고교 서열화 폐지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 공영형 사립대 등 대학 서열화 개혁을 주문했다.

발언자로 나선 정의당 여영국 의원도 "불과 대통령 발언 하루 전날 열린 국정감사에서 유은혜 장관이 '정시확대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했었는데, 교육부는 하루 만에 대통령 발언 을 지지하는 내용의 억지 꿰맞추기식 성명을 냈다"며 "교육문제는 백년지대계인 만큼 토론과 회의를 통한 최소한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전문가들의 의견도 정시 확대로의 급회전이 가져올 부작용과 허점 등을 거듭 지적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장인 김승환 전북교육감은 "우리 헌법은 교육의 전문성을 보장하고 있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교과서 등 지금은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한 마디에 좌지우지되고 있다"며 "이미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엄마찬스'나 '아빠찬스'는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데 '정시확대가 답'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그 전제조건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어처구니가 없다"고 비난했다.

전교조의 전경원 참교육연구소장은 "지난 3년 간 부산·광주·대구·인천 등 4개 광역시 전체에서 나온 서울대 정시 합격자수가 325명인 반면 같은 기간 서울 강남구에서만 347명이 합격했다"며 "수능, 정시 시스템이 공정하고 정의로운지를 지켜봐야 할 텐데 지금도 농어촌이나 도서산간 지역 학생들은 EBS 인터넷강의조차 제대로 못 보는 경우도 많다"고 우려했다.

이미 정시 확대를 원하는 여론이 많아진 상황에서 새로운 형태의 교육철학을 제시하기 보다는 정시 확대 주장 자체가 가지는 내재적인 한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홍중 올가교육 원장은 "매년 9만8000명 정도의 학생이 공학계열에 진학하지만 전공적합적인 물리2를 신청하는 수험생은 불과 3000명을 넘지 않는다. 점수 따기 쉬운 지구과학을 선택하기 때문"이라며 "또 의대에 가려는 학생에게 단순히 공부만 잘 한다고 메스를 쥐어주면 봉사활동도 하지 않는 등 인성과 다양성을 기를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날 오후 열린 평화당 토론회에서도 수능 중심의 정시 확대의 단점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발제자로 나선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구본창 정책국장은 각종 조사 결과 수능이 결국 고소득층의 '특권 대물림' 도구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 국장은 "한국교육개발원 조사에서 월 소득 600만원 이상인 응답자는 38.2%가 수능을 선호한 반면, 월소득 200만원 미만의 응답자에서는 28.6%가 선택한 특기·적성이 가장 선호하는 방식으로 꼽혔다"며 "수능점수도 고소득과 저소득 자녀 간 격차가 43.42점이나 차이가 나는 등 정시를 늘리는 것으로는 특권 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사교육비도 초·중·고 모두 계속 오름세이고 수능과 관련한 지표로 꼽히는 인강 비용도 늘고 있다"며 "정시를 확대해도 과도한 경쟁과 대학 서열화를 해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수시냐 정시냐를 가지고 이전투구하는 모양새는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영국 대학생지원국이 지역별 부(富)의 편차를 고려한 대학생 선발제도 '배경고려 대입제도'와 △초등학교 기초학력 해소 △중등교육자격시험(GCSE) 격차 해소 △청소년 정신건강 증진 △계속교육과 직업훈련 △대학교육 질적 격차 해소 등을 위한 지표 조사를 실시하는 영국 '공평교육연합'의 활동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 대학생지원국은 현재 5.7배에 달하는 부유한 지역과 극빈지역 간 최상위권 대학교의 입학 가능성 격차를 오는 2038년까지 1대 1 비율로 맞추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공평교육연합 처럼 교육의 각종 지표를 설정해 놓을 경우 입시를 포함한 각종 교육 정책에 변화를 꾀할 때 객관적인 근거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다만 객관성만 놓고 봤을 때는 정성평가가 많은 학종보다는 수능이 더 객관적인 만큼 수능을 활용하면서 동시에 학종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발제자로 나선 부산교대 이광현 교수는 "국민들은 수능이든 뭐든 공정하게만 대학에 간다면 강남에 살든 강북에 살든 신경 쓰지 않는다. '반칙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학종의 주관적인 정성평가가 신뢰의 문제가 있는 반면 수능은 제도 자체로는 가장 공정하고 선호된다는 조사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교과내신정보를 기반으로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충실한 학생들이 수능 등 비교가능한 표준화된 시험을 활용해 공정하고 타당하게 입시를 치르게 하면 된다"며 "중장기적으로 수시 학종은 폐지하되 수능과 내신을 균형 있게 계량화 해 학생을 선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입시전문가인 이강수 원장도 "학종의 항목을 보면 학업역량, 전공적합성, 인성, 발전가능성 등이 있는데, 이 중에서도 인성 부분인 나눔과 배려, 성실성, 도덕성 등을 어떻게 서류와 15분짜리 면접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냐"며 "사교육이 생기는 이유는 공교육이 뒤쳐졌기 때문이다. (사교육에서) 발생하는 차별은 공교육이 메워야 한다"고 비판했다.

앞서 정의당 간담회에 참석했던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이윤경 서울지부장도 "정규 교육 12년을 제대로 받으면 사교육이 없이도 상급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게 국가교육의 존재 이유"라며 "현재의 문제 상황의 이유 중 하나는 공교육의 불친절함"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수능을 적극 활용하더라도 수능 100% 방식의 정시 확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 견지됐다.

이 교수는 "학종 선발비율이 높은 대학의 경우 수능 위주 전형을 확대하되 수능 100%인 수능 전형이 아니라 수능의 비율을 50~90% 수준에서 고를 수 있는 수능 '위주'의 전형이 돼야 한다"며 "교과 위주 전형도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화당 조배숙 원내대표도 "서울대의 수시 비율이 70%였다고 하는데 정기적 선발이라는 정시와, 예외적 선발이라는 수시의 의미를 고려할 때 너무 과도한 수준"이라면서도 "무조건 정시만 늘리는 것이 문제가 된다면 수시 축소에 대한 부작용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보완책 마련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평화당 토론회에 정부 측 관계자로 참석한 교육부 대입정책과의 김한승 연구관은 "학종은 상대적으로 (스펙 쌓기에) 유리한 서울 학생들은 물론 시골 학교에서도 각종 외부 이력을 통해 주요 대학에 학생들을 진학시킬 수 있는 이른바 '금수저+흙수저 전형'이라고 본다"며 "문 대통령도 "수능이 답이 아닌 것을 안다"고 말씀하셨고, 국민은 공정성, 대학은 자율성, 시도교육청은 효율성이라는 각기 다른 얘기를 말하는 만큼 입시제도가 현장에 미치는 고민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