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이번 순방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하면서도 실질적인 한일관계의 전환으로 이어질 지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한일 정상은 지난 3~5일 방콕에서의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 일정 대부분을 함께 소화할 예정이었음에도 둘만의 시간을 마련하는 것은 난망해 보였다.
순방 직전이었던 지난 1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했던 노영민 비서실장은 "한일간 양자 정상회담은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도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한일정상회담은 계획에 없다. 이번 순방의 최대 목적은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의 관심과 협력을 촉구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외교부에서도 일본을 담당하는 동북아국 소속 외교관 중 어떤 인사도 이번 순방에 동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4일 문재인 대통령과 일본 아베 신조 총리가 11분간 깜짝 환담을 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13개월 만에 이뤄진 대화지만 시간이 짧아 두 정상은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과 이에 따른 경제보복 조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와 같은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이야기는 나누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아베 총리에게 "필요하다면 고위급 협의를 갖는 방안도 검토해 보자"고 제안했고, 아베 총리는 "모든 가능한 방법을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도록 노력하자"고 화답했다.
문 대통령도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아베 총리와는 대화의 시작이 될 수도 있는 의미있는 만남을 가졌다"고 강조했다.
다만, 여전히 한일 사이 간극은 뚜렷한 상태라 이번 환담이 실질적인 관계 개선으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외교부 이태호 2차관은 5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비경제부처 부별심사에 출석해 "한일청구권협정 위반 여부를 둘러싼 인식 차이가 있다"고 판단했다. 우리 대법원은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내리며 개인에 대한 배상청구권은 살아 있다고 봤지만, 일본은 일관되게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 의해 모든 배상문제는 해결됐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지난 6월 양국 기업의 자발적인 출연금으로 확정판결 피해자들에 대해 위로금을 지급하자는 이른바 '1+1'안을 제시했지만, 일본 측은 일본 기업이 피해를 봐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도 5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외교 채널을 통해 일본과 물밑접촉을 계속 해오긴 했다"면서도 "일본의 변화는 감지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고 전했다.
다만, 외교적 해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원칙에 아베 총리가 화답함에 따라 최소한의 협상 동력은 마련됐다는 평가가 청와대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이에 오는 12월 중국에서 열릴 것으로 보이는 한중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양국 정상이 간극을 좁히고 냉각기를 녹여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외에도 7년간 협상을 진행해온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의 협정문이 타결된 것도 성과로 꼽을 수 있다.
인도가 빠졌다는 한계는 있지만 RCEP는 아세안 10개국과 한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15개국이 참여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메가 FTA'로 우리 정부에게는 역내 교역·투자 활성화의 기회가 될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이 시작된 만큼 서로의 경제발전 수준, 문화와 시스템의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하나의 경제협력지대를 만들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또 순방기간 최대의 목표였던 부산 한-아세안 정상회의 예열에도 성공했다. 문 대통령은 아세안 10개국 모든 정상들과 환담하며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설명했고 협력을 당부했다.
정부는 이번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 필리핀·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3개국과의 양자 FTA 체결 협상, 한-아세안 간에 스마트 시티 파트너십, 미래차·에너지 등 4차산업혁명 분야 연계 강화 등에 성과를 내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또한 문 대통령은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교착에 빠진 상태에서 아세안 국가 정상들에게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지지를 당부하고 진전을 위한 동력을 마련하는 데도 힘을 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