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결과가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다. 미국은 조선에서 손을 떼고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는 것을 인정했다. 이 밀약을 발판으로 일본은 조선에 을사늑약을 강요했고 미국은 일본을 지지했다. 미국은 그해 11월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지금의 대사관 격인 주한미국공사관을 철수시킴으로써 한반도에서 완전히 발을 뺐다.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길을 만들어준 것이 미국이었다.
미국은 이때부터 남한에 막대한 군사경제 원조를 시작했다. 6.25 전쟁 이후 남한이 공산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미국은 북한과의 전쟁에서 무려 3만6천여 명의 군인을 잃었다. 한국과 미국은 혈맹관계로 발전했고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로 동맹국이 됐다.
동맹국 미국의 경제 원조를 바탕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남한은 1984년 대미수출 100억 달러 돌파를 시작으로 2018년 727억 달러를 넘어섰다. 2019년 현재 한국은 미국의 수입 1위, 수출 3위, 교역대상국 3위의 경제 강국이자 주요 파트너로 자리 잡았다.
최근 들어 미국은 동맹국 남한을 예전처럼 대하지 않으려 한다. "한국이 (동맹 중)최악"이라며 "우릴 벗겨먹는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초 발언이 공개되기도 했다. 대북 억제력을 가진 주한미군 주둔비용과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비용까지 내놓으라며 윽박지르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방위비분담금협정(SMA)에서 미국은 남한에 대해 방위비를 지금보다 무려 6배 더 올려야 한다고 우기고 있다. 매년 약 70조원(600억 달러)을 미국에 지불하라는 것이다.
남한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종료하자 미국이 나서 재연장할 것을 다각도로 압박하고 있다. 남한 입장은 흘려듣지만 일본 주장에는 적극 동조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주한미군 철수와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금지가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
북한의 값싼 노동력과 지하자원을 미일이 나눠 갖기 위해 남한을 고립시킬 수도 있다. 남한을 분쟁지역으로 만들어 미일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의 경제 호황을 누리는 최악의 패를 만지작거릴 수도 있다. 둘 다 상상조차하기 싫은 예측이지만 미일이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시나리오다.
한미수교 137년. 미국은 그 동안 한국을 일본의 먹잇감으로 던져줬고 한반도를 남북으로 분단시킨 당사국이다. 137년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미국은 자신들의 이익과 전략에 철저히 부합했다는 사실이다.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동북아에서의 전략적 가치가 사라지면 언제든 남한에서 발을 뺄 수 있는 나라였다는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미일 동맹이 흔들린다지만 미일동맹은 건재하다. 오히려 미국은 한미, 한일 관계가 삐걱대는 원인이 남한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미국이 일본 편을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미국은 언제쯤 남한을 포기할까.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지정학적 전략적 가치마저 미미해졌을 때다. 너무 지나친 상상이라고 흘려보내지 말자. 재수 없는 예측이라지만 이제 그런 가능성도 마음속에 담아 둘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