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다녀오니 벌점" 대학 기숙사들의 어이없는 통금운영

서울소재 26개대 중 24곳 기숙사 야간 통금제…점호·불시점검 있는 곳도
"벌점 피하려 밖에서 밤새우기도…안전책임 학생에게 지우는 것"

7학기째 기숙사에 사는 A대학 재학생 신모(24)씨는 얼마 전 몸이 아파 응급실에 갔다가 학교 측이 정한 출입시간대를 넘겨 기숙사로 돌아왔다. 친구들이 사정을 설명하고 신씨를 방에 들여보내려고 했으나 경비원은 "출입시간을 어겼으니 벌점을 받아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신씨는 "벌점을 받으면 다음 학기 기숙사생 선발에서 불이익이 생긴다"면서 "학생 안전을 위해 만든 규정을 예외적인 상황에도 고집하는 건 주객전도"라고 말했다.

3일 연합뉴스가 재학생 7천명 이상인 서울 소재 26개 대학의 기숙사 운영세칙을 확인한 결과 서울대와 고려대를 뺀 24개 대학 기숙사가 '야간 통금'을 두고 규정 위반자에게 불이익을 주고 있었다.

대개 자정이나 오전 1시에 출입문을 잠그고 오전 5시께 다시 개방하되, 출입제한 시간까지 입실하지 않으면 '지각'으로 간주해 벌점을 부과하는 식이다.

많은 학생들은 이런 기숙사 통금 규정이 필요 이상으로 엄격하다며 불편함을 호소한다.

통금 위반에 따른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아예 밤을 새우고 새벽까지 기다렸다가 입실하는 학생들도 있다.

서강대 기숙사생 류모(22)씨는 "학교 행사에 참여하거나 공부를 하다 보면 통금 시간인 자정을 넘길 때가 많다"면서 "그때마다 기숙사 문이 열릴 때까지 카페에서 밤을 새우곤 한다"고 했다. 이 기숙사는 출입금지 시간대에 3차례 이상 출입한 학생을 퇴사 조치한다.

숙명여대 재학생 B씨도 "통금 시간을 조금만 넘겨 들어가도 벌점을 물기 때문에 '이왕 이렇게 된 거 통금이 풀리는 오전 5시까지 밖에서 놀다 들어가 벌점을 피하자'고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학생의 안전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통금 규정이 오히려 위험을 부추기는 것이다.

이화여대 기숙사에 1년 거주했던 조모(25)씨는 "기숙사가 높고 외진 곳에 있는데, 눈앞에서 기숙사 문이 닫혀 아무도 없는 깜깜한 길을 두려움에 떨며 걸어 내려온 적이 있다"고 말했다.

모 대학 총학생회 관계자는 "경비 인력이 건물당 1명이고 그마저 자정이 되면 없는데 새벽 2시에 기숙사 문만 닫는다고 안전하겠느냐"라고 기자에게 되물으며 "(대학 측이) 통금을 빌미로 안전에 대한 책임을 학생들에게 지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20개 대학 기숙사는 통금 규정을 두는 것도 모자라 학생들이 외박을 사전에 신고하고 승인을 받도록 했으며, 외박일수도 한 달에 5∼15일로 제한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가 시내 대학 기숙사에 거주하는 대학생들을 상대로 진행한 '대학생 거주 기숙사 인권실태조사'에서 대표적 인권문제로 꼽힌 항목도 '기숙사 출입 및 외박 통제'(26.5%), '과도한 벌점제도'(13.2%) 등이었다.

매일 통금 시간에 맞춰 점호하고,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출입 전산자료를 부모에게 보내도록 규정한 대학 기숙사마저 있었다. 관리자가 불시에 방 청소 상태 또는 실거주 여부를 확인하는 경우나 동료 기숙사생의 벌점 행위를 신고하는 학생에게 상점을 주는 규정 등의 사례도 파악됐다.

학생들은 이같은 통제가 지나치다고 여기면서도, 비용이 저렴하고 통학이 편하다는 장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숙사 규정을 따르며 생활한다고 말한다.

대학생 최모(23)씨는 "통금이나 점호, 불시점검 등을 당하면 '성인이 이런 것까지 통제받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기숙사를 한번 나가면 다시 들어가기가 바늘구멍이어서 참고 생활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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