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사건의 사법처리가 막바지에 이른 상황에서 최순실(최서원)씨 측이 다시 한 번 판을 뒤집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미 앞선 사실심(1·2심)들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유죄로 인정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공모관계를 없던 것으로 돌리겠다는 것이다.
◇ 대법원 '유죄'라는데 파기환송심서 '뒤집기' 시도
지난달 30일 서울고법 형사6부(오석준 부장판사)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최씨에 대한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최씨의 변호인들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공모 △삼성이 제공한 말의 처분권 이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주요 쟁점에 대해 모두 반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앞선 사실심에서는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의 공모관계에 대해 제대로 다투지 못했다며 박 전 대통령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두 사람 사이의 공모관계가 성립해야만 공무원이 아닌 최씨에게도 뇌물수수죄가 인정되기 때문에 이 논리가 깨지면 최씨의 형량도 매우 낮아질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사실심은 물론 대법원(법률심)까지 거쳐 유죄가 인정된 사안을 파기환송심에서 새롭게 다툴 수 있을지 주목된다. 최씨 변호인인 정준길 변호사는 "재심사건이 아니라 형이 확정되지 않은 항소심 사건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새로운 증거가 나온다면 얼마든지 다시 판단을 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대법원 판례와 학계 통설은 파기환송심 역시 대법원의 하급심으로서 기속력이 미친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기속력이 파기환송심이라는 이유로 인정되지 않는다면 법령 해석·적용의 통일이라는 상고법원의 중요한 업무가 무력화될 수 있어서다. 소송 당사자의 법률관계와 안정성도 고려된다.
지난해 5월 넥슨 측에서 '공짜주식'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됐던 진경준 전 검사장의 파기환송심에서 재판부가 선고 당일 이러한 사항을 설시한 적도 있다. 해당 재판부는 "대법원이 상고심으로서 판단한 부분은 확정력이 미치기 때문에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다른 판단을 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파기환송심에서 이례적으로 대법원의 인정 사실을 뒤엎는 결정을 하더라도 재상고심에서 또 파기될 가능성이 높아 소송경제 관점에서 매우 소모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5월 '환송판결의 기속력의 객관적 범위' 논문을 낸 이충상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만약 이번 사건에서 최씨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고 추후 재상고심에 올라간다면 내용 여하를 떠나 법리적으로 무조건 파기환송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사법농단 재판서도 "이론상 가능하지만…거의 드물어"
1일 진행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 재판에서도 비슷한 쟁점이 나왔다. 이날 재판부는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만 약 5년간 근무한 홍승면 전 수석재판연구관을 증인으로 불렀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홍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에게 "파기환송심에서 그 전에 제출되지 않은 새로운 증거가 나온 경우 (기존 대법원 판결의) 기속력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냐"고 물었다.
홍 전 수석재판연구관은 "이론상은 가능하고 종종 파기환송 후 새로운 증거에 따라 대법원 취지와 달리 선고하는 경우가 있다"면서도 "실제로는 파기환송할 때 논쟁적인 부분에 대한 판단도 (추가로) 써두기 때문에 (뒤집히는 일은) 아주 드물다"고 답했다.
이어 "파기환송 판결이 다시 상고된 후 2차 파기되고, 또 3차 파기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의 파기 취지와 다른 내용이 선고됐을 때 재재상고심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최씨 변호인단 내에서도 이러한 변론 전략에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 변호를 계속 맡아온 이경재 변호사는 첫 재판을 마친 후 "저는 박 전 대통령을 증인으로 신청한 바 없고 증인신청에 반대하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며 정 변호사와는 다른 입장을 표했다.
재판부는 오는 12월 18일 두 번째 기일을 진행하고 증인 채택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