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새 역사교과서, 식민지근대화 빼고 '촛불혁명' 담는다

교과서 국정화 논란 이후 첫 역사교과서 곧 공개
대통령 탄핵까지 낳은 '촛불'의 의미 최초로 담아
'식민지 근대화론'의 허구성, 토론으로 깨닫게
'민주주의','건국절' 논란..교과서 안에서 마침표
최근 사실에 대한 역사적 평가 두고 논란도 일 듯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김정훈 기자 (CBS 심층취재팀)

◇ 김현정> 뉴스 속으로 훅 파고드는 시간, 훅!뉴스. CBS 심층취재팀 김정훈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 속으로 훅 들어갑니까?

◆ 김정훈> 먼저, 몇해 전 뜨거웠던 논쟁의 한복판을 다시 떠올려보는 것으로 시작하겠습니다. 들어보시죠.

[녹취: 박근혜 전 대통령, 시위 현장음]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확고한 국가관을 갖고 주도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도 역사 교육을 정상화하는 것은 당연한 과제이자 우리 세대의 사명입니다."

"친일독재 미화하는 국정교과서 폐기하라!"

2016년 11월 9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국정교과서 폐기·박근혜 퇴진 촉구’ 전국동시다발 시민선언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 김현정>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네요. 갑자기 왜 꺼내셨어요?

◆ 김정훈> 오늘 드릴 얘기가 그때의 국정화 파문 이후 새로 만들어질 새 역사교과서에 대한 내용입니다.

◇ 김현정> 새 역사교과서가 나와요. 그것을 좀 짚어봐야 하는군요.

◆ 김정훈> 네. 박근혜 정부 때 역사 교과서 국정화, 그러니까 정부가 직접 단일한 역사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해서 찬반 논란이 뜨거웠잖아요. 교과서는 정부가 만드는 '국정 교과서', 민간이 만든 교과서를 정부가 인정하는 '검정 교과서'로 나뉩니다. 그런데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중고생들이 배우는 검정 역사 교과서들이 좌편향돼 있다는 주장이 터져 나왔고, 이른바 '교학사 교과서' 사태가 뒤따랐어요.

◇ 김현정> 교학사가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데 친일 역사관을 담았다는 논란이 일면서, 교과서 채택 반대 운동이 크게 벌어졌잖아요.

◆ 김정훈> 결국 어떤 학교도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지 않으면서 급기야 박근혜 정부가 아예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는 방침도 세웠습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흐지부지됐죠. 시간이 흘러 이제 내년부터 쓰일 새 역사 교과서의 공개가 임박했는데, 취재 결과 여러 가지 의미 있는 내용들이 담겨있음이 확인됐습니다.

◇ 김현정> 이제 국정교과서는 아닌 거고요. 민간출판사에서 쓰는 여러 권의 역사교과서라는 건데, 그걸 훑어보셨다는 거예요. 그 내용이 오늘 훅뉴스에서 처음 공개되는 거죠?

◆ 김정훈> 그렇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민간 출판사들이 만드는 한국사 교과서 내용입니다. 세계사와는 달리 중고생들이 필수로 배워야 하는 과목의 교과서인데, 고등학교 한국사의 경우 출판사 10곳이 검정을 신청했지만 최종 8곳이 검정을 통과했습니다. 중학교의 경우 7곳 중 6곳이 사실상 검정을 통과했다고 하네요.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를 위한 3차 범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자료사진)
◇ 김현정> 고등학교 8권, 중학교 6권. 총 14권이네요. 우편향 논란을 빚었던 교학사는 어떤가요?

◆ 김정훈> 교학사는 아예 신청을 안 했어요. 교과서 우편향 논란도 있었지만 이후에도 참고서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합성 사진을 실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거든요. 교학사 측은 지난달 16일 이에 대해 사과문을 올렸는데, 그러면서 한국사 관련 교재 사업을 모두 중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번에 탈락된 곳은 내용의 편향성보다는 완성도에서 미흡한 평가를 받은 것으로 보이고요.

◇ 김현정> 그럼 검정을 통과한 그 교과서들의 주목할 만한 내용을 하나하나 짚어보죠.

◆ 김정훈> 첫 번째 포인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비롯해 촛불집회의 역사적 의미를 평가했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교과서가 이를 언급하는데, 촛불을 든 광장의 시민들이 직접 민주주의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냈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새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한 일선 학교 역사 교사의 말을 직접 들어보시죠.

[녹취: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역사교사]
"촛불이라고 하는 2000년대 이후의 시민들의 정치참여의 상징성인데... '시민들이 촛불을 들어 박근혜 정부가 탄핵되었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이렇게 간단히 언급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곳은 특별히 의미부여를 하는, 혹은 촛불의 역사를 2002년부터 시작된 것을 좀 자세히 쓸 수 있는 교과서도 있을 것이고요."

◇ 김현정> 2002년의 촛불이라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효순이 미선이' 사건 때를 말하는 거네요.

◆ 김정훈> 범국민적 촛불시위의 첫 등장이 그때였죠.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시위가 있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시위도 있었습니다. 사실 세계사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자발적 시민들이 대규모로 모여 촛불을 들고 평화적 시위를 벌인 그 사례들이 역사 교과서에서 담긴다는 겁니다.

◇ 김현정> 사실은 교과서에서는 그동안 쭉 외면해왔던 것인데, 그것들이 들어간다는 거예요.

◆ 김정훈> 비폭력 시민 저항, 직접 민주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촛불시위의 역사가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담기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검정을 통과한 모든 교과서에 공통적으로 실릴 것 같은데,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또 다른 역사학자는 "개별 교과서들이 내용에서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고 어떤 사진을 어떻게 배치했는지, 분량은 어느 정도나 할애했는지 등 형식면에서만 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김현정> 무슨, 지침 같은 게 있었던 건가요?

◆ 김정훈> 지침이라고 하면 지난해 6월 발표된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개정안이 있었습니다. 역사 교과서를 제작할 때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인데, 아래와 같은 언급이 있었을 뿐이에요.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6월 민주 항쟁의 원인, 과정, 결과에 대한 이해를 통해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을 파악하도록 한다'.

◇ 김현정> 6월 항쟁까지 지침에 언급돼 있는데, 뒤에 일어났던 것들은 각 교과서들이 알아서 담고 있는 거네요.

◆ 김정훈> 네. 새로 바뀔 역사 교과서에서 주목해야 할 두번째 포인트도 있는데요, 바로 일제 식민지 시기에 대한 서술입니다.

◇ 김현정> 이 부분에 주목이 되네요. 이 부분은 어떻게 평가했는가.


◆ 김정훈> 최근에는 '반일 종족주의' 같은 친일 역사관을 담은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잖아요. 그 정도로 식민지배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것 같아요.

일제강점기 군산항 모습. (사진=연합뉴스)
◇ 김현정> 완벽 정리되지는 않았다고 말하고 싶어요. 다른 말이 나오니까.

◆ 김정훈> 새로 나오는 역사 교과서에서는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이 어떤 면에서는 도움이 되기도 했다는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이 싹 빠집니다. 한발 더 나아가 그러한 식민지 근대화론이 왜 문제인지를 비판적으로 따져 묻는 내용도 있습니다. 역시 교과서 집필자의 말로 들어보시죠.

[녹취: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역사교사]
"식민지 근대화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자료로 제시한다든가 혹은 탐구활동으로 토론해보도록 제시한다든가 많이 했을 거예요. 식민지 근대화론의 주장, 그리고 이것을 비판하는 주장을 함께 실어서 토론하거나 생각해볼 수 있도록 제시할 거예요. 어느 입장이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는가..."

◇ 김현정> 식민지 근대화론, 일제강점기 덕분에 우리가 잘 살게 된거라는 주장이 나오는 현실에서, 이걸 교과서에 실어서 토론하게끔 만든다?

◆ 김정훈> 자율적인 토론을 통해 정말 정답이 뭐냐, 옳은 시각이 무엇이냐를 학생들 스스로 깨닫게 한다는 거죠.

◇ 김현정> 그렇군요. 세 번째는 뭔가요?

◆ 김정훈> 그렇죠. 세번째로 대한민국의 이념과 정통성도 적어도 교과서 안에서는 마침표를 찍게 됐습니다. '자유민주주의'냐 '민주주의'냐 하는 표현의 문제가 있었는데, 교육과정 개정안의 지침대로 '민주주의'로 통일한 겁니다. 다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도 쓸 수는 있고요. 또 건국절 논란에서 비롯된 문제인데, 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날로 정리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독립운동의 역사를 존중한다는 취지죠.

◇ 김현정> 그동안 왜곡됐던 역사를 학교의 교과서에서 바로잡겠다는 차원일 텐데, 또 다른 논란도 예상이 되네요.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라는 표현으로 돌릴 때도 반발이 엄청났잖아요.

◆ 김정훈> 앞서 교육부의 의견수렴 과정에서도 반대 의견이 쇄도했죠. 이제 곧 공개될 교과서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걷어내고 박 전 대통령 탄핵의 의미까지 부여하면서 다시 반발 여론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국정교과서 집필진으로 참여했던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의 말을 들어보시죠.

[녹취: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현대사가 학생들에게 중요한 이슈이긴 하지만 역사라는 것은 현재 진행형인 자체를 다루는 데 굉장히 신중해야 합니다. 확정된 사실을 가지고 기술을 하는 것이 교과서의 취지에 맞고. 탄핵은 더군다나 지금 끝나지 않은 걸 기술했는지 내용을 봐야겠지만, 그런 상황 자체를 역사라고 하는 틀 속에서 다루기에는 너무 성급하지 않나. 어떤 입장이라도."

고등학교 한국사 8종 검인정 교과서. 금성출판사, 두산동아, 미래엔, 비상교육, 천재교육, 리베르스쿨, 지학사, 교학사. (사진=자료사진)
◇ 김현정> 대통령 탄핵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이르다, 그렇기 때문에 의미를 담아 교과서에 싣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거네요.

◆ 김정훈> 반면 촛불 시민에 의한 탄핵과 새로운 정부의 등장이 객관적 사실인 만큼, 이를 역사 교과서에 담는 데 주저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 있는 것이죠. 이것은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말로 들어보겠습니다.

[녹취: 박태균,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객관적인 사실이잖아요. 저희가 역사책 쓸 때도 그 이전 정권까지는 서술하잖아요. 저는 박근혜 정권까지는 교과서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랬을 때 그런 흐름이 촛불과 평화로운 시위의 양태가 나타났고, 그것이 2002년 대통령 선거와 2016, 2017년 정권교체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만 서술한다고 한다면, 그것을 역사책에 서술한다고 해서 그게 문제가 뭐가 되겠어요."

◇ 김현정> 어쨌든 과거와 다른 새로운 역사 교과서의 구체적 내용들이 공개될 텐데, 이것으로 끝이 아니죠?

◆ 김정훈> 네, 최종 검정 결과의 발표가 곧 있을 예정입니다. 그리고 나면 이달 27일 새로운 역사 교과서, 중학교 6종과 고등학교 8종이 일반에 공개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각 학교별로 어떤 교과서를 쓸지 결정하는 건데, 교육부 관계자의 설명으로 들어보시죠.

[녹취: 교육부 관계자]
"발표가 되면 학교마다 전달이 되어서 공문이 가고 전시본이 학교로 가게 되면 교과서를 가지고 선생님들이 각자 학교에 적합한 교과서들을 선택하게 되는 거죠. 2020년 입학하는 1학년 학생 대상으로 이 교과서가 적용이 되는 겁니다."

◇ 김현정> 최종적으로 어떤 교과서를 채택하겠다, 이런 것은 개별 학교의 선택으로 남겨지는 거네요.

◆ 김정훈> 우리 모두가 상식으로 받아들일 역사적 사실과, 아직은 더 토론해볼 만한 역사적 쟁점들이 새로운 역사 교과서의 등장으로 가려질지 지켜봐야겠습니다.

◇ 김현정> 아직 공개 안 된 14종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이후 처음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내용이 궁금했는데 굵직한 부분들 먼저 짚어봤습니다. 김정훈 기자,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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