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세금 안 늘리고도 가능한 의원정수 확대…결론은 민심에

세비 동결한 채 정수 330명 늘리면 의원당 세비 9.1% 줄어든 1억3796만원
심상정 "최저임금 5배 이내로 줄이자"…현재보다 31.2% 줄어들어
정동영은 "4인가구 중위소득인 월 470만원" 주장하기도
연간 의원당 6억 드는 보좌진월급·운영비…30명 늘리면 4년간 725억 추가소요
보좌진 규모 줄이고 공용 인력풀 제도 도입하면 정책효과 유지 가능
결국 정수확대 반대하는 민심 잡을 수 있느냐가 성패 관건

서울 여의도 국회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선거법 개정안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국회의원 정수확대가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일각에서 의원 세비를 동결하더라도 부수비용 등 부작용이 상당해 반대 여론을 극복하지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한편, 국회의원 관련 예산을 통째로 동결하거나 오히려 과감히 세비를 줄이면 무리 없이 정수 확대가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 세비 동결하며 330명으로 늘릴 경우 의원당 세비 9.1%25 감소…삭감도 가능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회의원 1인당 연봉 총액은 1억5176만원이다.

이 중 의원수당은 공무원 보수증가율을 반영해 지난해 대비 1.8% 오른 1억472만원이며, 의원활동비는 국회출석 등 활동실적을 반영해 감액이 가능하지만 기본적으로는 4704만원이 책정돼 있다.

그동안 의원정수 확대를 주장하는 진영에서는 사용해 온 '세비 총액 동결'이라는 표현의 세비란 바로 이 의원 연봉을 의미한다.

의원의 월급 총액을 늘리지 않으면서 의원 수만 늘리면 의원 1인당 받아가는 세비는 줄어들기 때문에 특권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이들 주장의 골자다.

지난 4월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기 전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야당들은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의원정수 확대가 필요하다며 이같은 세비 동결 주장을 해왔다.

의원정수가 10% 늘어나 330명이 되더라도 총액을 동결하면 1인당 연봉 총액은 1억3796만원 수준으로 9.1% 줄어들게 된다.

최근 들어서는 세비 총액 동결을 넘어 삭감을 하자는 주장들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31일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나선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국회의원 세비를 최저임금의 5배 이내로 제한하자"고 제안했다.

월 소정근로시간을 209시간으로 정해 올해 기준 최저임금의 5배를 하면 월급은 870만원, 연봉으로는 1억440만원이 나온다. 현재 연봉보다 31.2%, 세비를 동결한 채 의석을 330석으로 늘렸을 때 받는 연봉보다는 24.3% 줄어드는 셈이다.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도시 4인가구 중위소득(461만3536원)에 준하는 월 470만원으로 세비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수준만 보장한 채 특권적인 요소를 다 빼자는 것이다.

(일러스트=자료사진)
◇ 보좌진 월급, 의원실 운영비는 어떻게?


의원 세비는 의원의 개인적 요소인 만큼 의원들 개개인이 특권을 줄여야 한다는 의지를 보이면 충분히 감액이 가능하다.

그러나 의원 세비는 줄이더라도 정상적인 의원실 운영을 위해서는 보좌진 월급과 의원실 운영비용은 같은 수준으로 유지되지 않겠냐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의원 1인당 허용되는 보좌진 수는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2명, 6·7·8·9급 비서 각 1명, 인턴 1명 등 총 9명이다.

2019년도 국회의원 보좌직원 보수 지급기준에 따르면 이들의 연간 보수 총액은 상여금과 수당 등을 제외하고 5억598만원 수준이다.

사무실 운영지원과 공모출장 등 교통지원, 입법 및 정책개발 지원, 보좌직원 지원 등 의원실당 지원예산은 연 9837만원이다.

의원 30명이 늘어날 경우 4년간 추가로 소요되는 예산은 보좌진 급여 607억1760만원과 의원실 지원예산 118억440만원을 더해 725억2200만원에 이른다.

정수 확대를 반대하는 측은 의원 30명을 늘려 얻을 수 있는 입법과 정부 감시 효과에 비해 지나친 세금 낭비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의원 세비와 같이 보좌진 급여와 의원실 지원비용도 동결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심 대표와 정 대표는 모두 보좌진 수를 현행 9명에서 5명으로 줄이자고 말했다.

보좌진을 4급 보좌관과 5급 비서관, 6·7·8급 비서 5명으로 축소할 경우 의원 1인당 보좌진 연간 보수 총액은 2억9078만원, 현재의 57.5% 수준으로 급감하게 된다.

이 경우 현재 의원실당 연간 910만원 수준으로 지급되고 있는 식비 등 보좌직원 지원비는 물론 비서실 운영비나 업무추진비, 소모품비 등도 함께 줄어들게 된다.

다소 부실해질 우려가 있는 보좌진의 정책기능은 정당이나 의원에 구애받지 않고 국회의원들이 공용할 수 있는 인력풀(pool) 제도 등을 활용하면 보완이 가능하다.

◇ 남은 과제는 민심

이처럼 의원정수 확대가 예산 증가 없이도 실현 가능하고, 지역구 의석 감소는 최소화하면서도 연동형비례제의 취지는 어느 정도 담을 수 있는 방안임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국회에서 긍정적으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국회를 불신하는 민심이다.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마다 의원정수 확대를 반대하는 의견이 찬성하는 의견을 크게 상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정수 확대 반대를 당론으로 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과 한국당 모두 이같은 여론을 근거로 정수를 늘릴 수 없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정수 확대를 원하고 있는 소수 정당들은 이러한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해 여의도 내·외적으로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결국 선거법 최종 합의 전까지 의원정수 확대가 세금낭비나 국회의 특권 확대가 아니라는 점을 얼마나 국민들에게 잘 호소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릴 전망이다.

최근 취재진이 만난 시민들 중 상당수도 의원 수를 늘리는 데는 반대한다면서도 국회에 들어가는 세금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고민해 볼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야당 관계자는 "여야 각 당의 필요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방식은 결국 정수 확대뿐이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정수가 확대되거나, 그렇지 못하면 현행과 유사한 수준으로 되돌아오거나 둘 중의 하나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며 "특권을 내려놓겠다는 점을 얼마나 강하게 어필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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