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경제활동인구조사 발표를 앞두고 관계당국은 비상 사태에 빠졌다.
지난 8월 기준 비정규직 노동자가 86만 7천명이나 늘어나면서 역대 최고 기록을 훌쩍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보통 과장급이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했던 언론브리핑은 서울청사로 자리를 옮겨 통계청장이 직접 진행했고, 기획재정부 1차관과 고용노동부 차관까지 총출동해 추가 설명에 나섰다.
지난해 ILO(국제노동기구)가 국제 종사상 지위 분류 개정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한국 역시 2021년까지 분류체계를 개편해야 했다.
이 때문에 통계청이 국제 종사상지위분류 병행조사를 올해 처음으로 실시하는 과정에서 문항을 바꾼 탓에 기존에는 정규직으로 분류됐던 노동자 35만명~50만명이 기간제 노동자로 옮겨갔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정부 해명을 감안해도 나머지 36만명 증가분은 2003년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래 2번째로 높은 기록이다.
전체 임금 노동자가 51만 4천명 증가하면서 자연히 증가한 비정규직이 약 17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민간일자리에서 소외된 고령층을 위한 정부의 공공일자리 사업이 지난해보다 14만개 가량 늘어난 영향도 크다는 해명도 이어졌다.
이 경우에도 기존 비정규직 증가분은 매년 반영됐기 때문에 유독 올해 비정규직이 급증한 원인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1호 명령으로 내세웠던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을 필두로 한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뿌리부터 흔들릴 상황인 셈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국제 경기가 악화돼 민간 기업의 채용 의지가 약화되는 악조건에도 정부가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건국대학교 최배근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경기가 좋지 않으니 고용을 기피할 수 밖에 없고,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도 시큰둥한 것"이라며 "민간 부문에 정규직 고용을 강제할 수 없으니 조달사업과 연계하는 등 정책적인 유도 노력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권오인 경제정책국장은 "민간 고용 시장이 나빠지면서 정규직 채용이 줄어들고 있다"며 "공공부문이 정규직화를 선도하겠다는 정부 주장은 경제 상황이 받쳐주지 못하면서 '말도 안되는 소리'로 전락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최근 정부 경제정책이 급속히 보수화되고, 한국도로공사의 톨게이트 수납원 사태 등을 거치면서 정부가 정규직화 정책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는 잘못된 신호를 시장에 줬다는 비판도 나온다.
권 국장은 "정규직화 정책은 공공부문에서만, 그마저도 자회사나 무기계약직 위주로 진행됐다"며 "노동시장, 경제상황을 디테일하게 보지 못하고 섣불리 접근했던 측면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민간 일자리는 결국 중소기업에서 창출되고, 특히 비정규직 비중도 중소기업이 높다"며 "정부가 경제 개혁 정책을 대거 포기하면서 중소기업으로서는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능력을 늘리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이사장은 "문재인 정부 초기 공공부문에만 한정해 비정규직 전환을 추진했고, 민간부문에는 영향을 주지 못했다"며 "이후 정부 정책이 보수화되자 민간부문으로 이 변화가 적나라하게 확대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애초 기간제법 등을 손질해 기간제·단시간 노동자의 사용사유 제한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사실상 민간부문의 정규직 고용 문제를 방치하면서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이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 됐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