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고위급 3인방' 이어 실무회담 거부… 금강산관광 해법 미궁으로

원로 김계관·2선 김영철·권력 2위 최룡해 연달아 등장해 대미압박
김정일까지 비판하며 "들어내라"는 김정은… "최고 지도자 말 어떻게 어기나"
해결책 찾기 쉽지 않을 듯… 일각에서는 5.24 조치 해제도 거론

통일부가 29일 언론에 공개한 금강산관광지구의 남측 시설 사진. 사진은 금강산 호텔로 북한 소유, 현대 아산 운영으로 2004년 7월 개관했으며 지하 1층부터 지상 12층으로 구성, 객실 219실과 식·음료 시설, 부대시설 등을 갖췄다. (사진=통일부 제공/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29일 우리 측의 금강산 시설 관련 실무회담 제안을 거절하면서, 이번 금강산 사태의 해결책을 찾을 방법이 다시금 미궁에 빠지게 됐다.

외무성 김계관 고문과 노동당 김영철 부위원장에 이어, 권력서열 2위의 국무위원회 최룡해 제1부위원장이라는 고위급 인사 3명을 내세워 대미 압박 수위까지 끌어올림에 따라 대안을 찾는 우리 정부의 고심도 깊어졌다.

지난 24일 북한 외무성 김계관 고문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의지가 있으면 길은 열리게 마련이다"며 "우리는 미국이 어떻게 이번 연말을 지혜롭게 넘기는가를 보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워싱턴 정가와 미 행정부의 대조선(대북) 정책작성자들이 아직도 냉전식 사고와 이데올로기적 편견에 사로잡혀 우리를 덮어놓고 적대시하고 있다"며 미국의 '새 셈법'을 압박했다.

사흘 뒤인 27일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2선으로 물러났던 노동당 김영철 부위원장까지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 직함으로 나타나 "최근 미국이 우리의 인내심과 아량을 오판하면서 대조선적대시정책에 더욱 발광적으로 매달리고 있다"고 발언했다.

그는 "조미(북미)관계가 지금까지 유지되는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친분 관계 때문이다"면서도 "미국이 개인적 친분 관계를 내세워 시간 끌기를 하며 이 해(올해) 말을 무난히 넘겨보려고 생각한다면 어리석은 망상이다"고 했다.

이어 이틀 뒤 금강산 관련 실무회담을 거절한 29일엔 권력 서열 2위인 국무위원회 최룡해 제1부위원장 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까지 나섰다.

그는 지난 25~26일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린 제18차 비동맹운동(NAM) 회의에 참석해 한 연설에서 "지금 조선반도(한반도) 정세가 긴장완화의 기류를 타고 공고한 평화로 이어지는가, 아니면 일촉즉발의 위기로 되돌아가는가 하는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9일 보도했다.

최 부위원장은 이 연설에서 "미국이 우리의 제도안전을 불안하게 하고 발전을 방해하는 대조선(대북) 적대시 정책을 깨끗하고 의심할 여지 없이 되돌릴 수 없게 철회하기 위한 실제적인 조치를 취할 때에야 미국과 비핵화 논의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미협상의 원로와 현직 권력서열 2위를 포함한 고위급 인사 3명이 나타나 연달아 수위를 끌어올린 뒤, 우리 측의 금강산 관광 문제 해결을 위한 실무회담 제안까지 거절한 것이다.

실제로 통일부 이상민 대변인은 25일 북한의 금강산 시설 철거 문제 관련 대남통지문이 오던 날 '외무성 최선희 제1부상이 지난 23일 보도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금강산 시찰에 동행했던 점을 대미협상과 연계해 볼 수 있다고 보는지'라는 질문에 대해 "최 부상이 북미간 실무협상을 수행하는 것으로 봐서는 대미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보고 있다"고 답했다.

나흘 뒤인 29일 실무회담을 거절하는 대남통지문이 전달되자, 통일부 당국자는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금강산 시설의 철거 문제를 언급했기 때문에, 시설물 철거 문제로 (남북 협의를) 제한하고자 하는 의도로 봐야 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

이른바 '수령 무오류설'과 함께 최고 지도자의 발언이 곧 '법'으로 여겨지는 북한에서 '남측의 관계부문과 합의하여'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김 위원장이 직접 "싹 들어내도록 하고 금강산의 자연경관에 어울리는 현대적인 봉사시설들을 우리 식으로 새로 건설하여야 한다"고 지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김 위원장이 극히 이례적으로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행보까지 비판하며 했던 발언에 따른 행보가 이어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 또한 해결책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아산정책연구원 신범철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의 기본 정책은 우리와의 대화 촉진이 아닌데, 따로 만남을 가질 이유가 없다"며 "최고 지도자인 김정은 위원장이 정한 내용이기 때문에 실무자들 또한 그 말에 어긋나게 할 수가 없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철거를 위한 협의라면 북한이 응해 올지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금강산 관광 문제를 실무자가 논의할 수는 없다"며 "정상회담 수준에서 풀지 않으면 실무 선에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대화는 계속하자고 하되, 북한에 대한 압박 수단도 제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장철운 교수는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우리 측의 의도와 상관없이 의도를 관철시키겠단 의지를 다시 한 번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며 "남북관계 전반 상황을 봤을 때 대안을 마련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같은 상황에서 북한을 실무회담에 끌어내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가시적이고 특별한 제안이 나올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세종연구소 정성장 연구기획본부장은 대남통지문이 왔던 지난 25일 논평에서 "지금은 5.24 조치 해제 등 남북교류를 제한하는 조치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를 통해 문제 해결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