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대표의 사퇴를 촉구해온 바른미래당 비당권파에 이어 문병호 최고위원은 27일 탈당 선언과 함께 손 대표 사퇴 요구에 가세했다. 문 최고위원은 손 대표가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임명한 인사로 당권파에 속한다.
당내 호남계 의원들도 손 대표 사퇴 시점엔 이견을 보이고 있지만, '손학규 체제'로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과거 손 대표와 정당 생활을 함께 했던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도 사퇴 공세에 합류하면서, 손 대표의 거취를 압박하는 주장은 범(凡)야권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당권파인 문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손 대표의 퇴진을 요구하며 탈당을 선언했다. 정계개편 움직임이 서서히 일고 있음에도 손 대표가 제3지대 세력을 모으기 보단 당권 싸움에만 몰두했다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4·3 보궐선거 이후 자신에 대한 사퇴 여론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지난 5월 손 대표가 직접 지명한 문 최고위원이 공개적으로 사퇴를 촉구했다는 점이다. 사실상 측근으로부터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다만, 문 최고위원은 안철수·손학규·유승민 또는 안철수‧유승민 등 조합으로 제3지대 형성의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 전 대표가 단독으로 이끄는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유승민‧안철수계 의원 15명)이나 안철수‧손학규만으로 구성된 체제엔 합류하지 않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손 대표의 독단적인 당 운영을 비판하며 독자 행동에 나선 변혁 측은 연내 탈당 의사를 밝힌 상태다. 이들은 유 전 대표를 견제하는 당내 일부 호남계 의원들을 등에 업고 손 대표가 버티는 중이라고 비판했다.
변혁 소속 바른정당계 한 의원은 이날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바른정당계든 국민의당계든 모두 총선을 ‘손학규’로 치르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호남계 의원들이 별 대안도 없으면서 유 전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기 싫어 시간을 끄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변혁에 참여한 국민의당계 한 의원도 통화에서 “손 대표가 버티면 정계개편이 어렵기 때문에 기득권을 내려놓고 뒤에서 역할을 해줘야 한다”며 “유 전 대표도 중도‧보수세력을 만들고자 하는데 한국당 쪽과 손을 잡을 것이라고 오해하는 세력들이 있다”고 말했다.
호남계 의원들은 또한 대부분 손학규 체제 하 총선 불가론엔 이견이 없었다. 다만, 최근 보수통합 이슈가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는 점을 의식해 손 대표의 ‘즉각 사퇴’에 우려를 표했다.
유 전 대표와 한국당 황교안 대표 사이에 보수통합 논의가 시작될 조짐이 보이기 때문에, 지금 손 대표가 사퇴하면 한국당과 합당 또는 연대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호남계 한 중진의원은 통화에서 “손 대표 체제는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제3지대 빅텐트를 쳐야 할 상황”이라면서도 “바른정당계가 탈당하고 나면 손 대표도 버틸 명분이 없다. 그러나 그 이전까진 버텨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호남계 중진의원도 “지금 상태론 총선을 치를 수 없고, 제3지대를 표방한 중도개혁을 이끌 새로운 인물이 나와야 할 것”이라며 “다만 지금 손 대표가 물러나면 대안이 없어 혼란이 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도-보수를 표방하든, 호남 중심의 제3세력을 꿈꾸든지 간에 손 대표를 걸림돌로 인식하는 셈이다.
때문에 변혁이든 호남계든 바른미래당 내 대부분 세력이 손 대표 체제 하에서 총선은 불가능하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다만 신당 창당 혹은 보수 통합, 제3지대 형성 등 각자의 정계 개편 시나리오에 따라 손 대표의 사퇴 시점에만 이견이 있을 뿐이다.
비당권파인 이준석 전 최고위원은 이날 자신의 SNS(페이스북)를 통해 "손 대표가 임명한 지명직 최고위원(문병호)도 당권파를 버렸다”며 “어디까지 갈지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홍 전 대표도 이날 페이스북에서 “최근 손 선배의 행보는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며 “사퇴 약속을 수없이 하고도 지키지 않은 그의 잘못된 정치 행보 때문”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그 사람의 평가는 말년의 정치 행보에서 결정된다”며 “이제 그만 사퇴하시라”고 강조했다.
홍 전 대표는 손 대표와 한국당의 전신인 신한국당‧한나라당에서 정당 생황을 함께 한 바 있다. 해당 페이스북에서 홍 전 대표는 1995년 미국 워싱턴 유학 시절과 2007년 손 대표의 탈당 전 만남 등 인연을 언급하기도 했다.
한편, 손 대표 측은 문 최고위원을 대신할 지명직 최고위원을 시일 내 임명해 당을 정상화하겠다고 밝혔다.
당내 호남계 의원들이 변혁의 독자 행동에 맞대응 차원으로 국민의당 출신 의원들과 매주 정례모임을 시작하면서 당권파의 추가 이탈 여부가 주목된다. 현재 손 대표에 대해 그나마 우호적인 현직 의원은 김관영, 임재훈, 채이배 의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