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시인' 박노해가 20년 간 기록한 세상 곳곳의 '하루'

[신간] '박노해 사진에세이' 시리즈 첫 출간…'하루'

(사진=느린걸음 제공)
'하루'. 참으로 평범하고도 경이롭고, 흔하고도 무서운 말이 '하루'다. 하나의 물방울이 온 하늘을 담고 있듯 하루 속에는 영원이 깃들어 있는 일일일생一日一生의 하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하루는 저 영원과 신성이 끊어진 물질에 잠긴 시간이 되고 말았다. 지금 시대는 돈이 없이는 살 수 없고 돈이 있어도 삶이 없는 시대가 되었다. - p11~12


1980년대 시집 '노동의 새벽'으로 널리 알려진 시인 박노해가 '지구시대 유랑자'로 20여년 간 기록해온 사진과 글을 담은 에세이를 펴냈다. 신간 '하루'는 그 시리즈의 첫번째 책이다.

1957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난 박노해 시인은 1984년, 27세에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출간했다. 당시 이 시집은 독재정권의 금서 조치에도 100만 부 가량 발간되며 한국 사회와 문단에 충격을 안겼다.

박노해는 이때부터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리며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됐다. 그는 1991년 체포돼 1998년 특별사면으로 석방될때 까지 7년 6개월간 수감생활을 한다.

이후 그는 2003년 이라크 전쟁터에 뛰어들면서 전 세계 가난과 분쟁의 현장에서 평화 활동에 힘썼다. 또 '지구시대의 유랑자'로 20여년 간 티베트, 볼리비아, 파키스탄, 인도, 페루, 에티오피아 등 전 세계 11개 나라를 떠돌며 마주한 '하루'를 자전적 이야기와 함께 책에 담았다.

'박노해 사진에세이' 시리즈 첫 책인 '하루'는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 '긴 하루의 생'으로 시작한다.

그는 지금의 '하루'를 걷기 위해 지내온 수 많은 '긴 하루'를 서문에 담았다. 군사독재 시절 고문 등 살아온 동안 그가 느꼈을 '하루의 무게'는 절박함을 넘어 고귀함 마저 느껴진다.

"군사독재에 맞서다 안기부 지하 밀실에 끌려가 고문을 당할 때였다. 50여 명이 24시간 교대로 자행하는 고문장의 하루하루는 의지도, 생각도, 투지도 작용할 수 없는 오직 비명만이 가득한 새하얀 시간이었다 그들이 요구하는 건 간단했다. '단 한 명만 불어라!' 그러나 만약 내가 한 명의 동지를 불고 나면 그들은 최후까지 밀어붙일 것이었다. '하나만 더. 하나만 더!' 그것을 뚫고 나가는 나의 주문은 단 한 마디였다. '하루만 더. 하루만 더! 죽는 최후의 순간까지 하루만 더!' 그렇게 24일이 지났던 것 같다. - 서문 '긴 하루의 생' 中

그는 또 '하루'라는 한 의미가 나오기까지 긴 여정을 걸으며 '감동하고 감사하고 감내하며' 살아가는 전세계인의 '하루'를 사진으로 기록했다.

이를 통해 누구에게나 주어지고, 우리가 의식없이 지나쳐온 '하루'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운다.

느린걸음. 글·사진 박노해. 136쪽. 18,000원

한편, 박노해가 2000년 설립한 비영리사회단체 '나눔문화'에서 운영하는 라 카페 갤러리에서는 동명의 전시도 진행 중이다.

이곳에서 지난 6월 말부터 개최된 '하루' 사진전에는 약 2만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전시는 내년 1월 10일까지 열리며 관람료는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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