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영 분열의 단초가 된 탄핵사태 중심에 서 있는 박 전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입을 열면서, 총선이 6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병상(病床)정치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복수의 정치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측근인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이같은 메시지를 전달했다.
당내 핵심 관계자는 이날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박 전 대통령이 최근 '지지율도 침체 상태고, 현역 의원도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 우리공화당으로 선거를 치르기 힘든 상태'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걸 들었다"고 말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탄핵시킨 사람들이 있는 한국당과 당장 손을 잡으라는 뜻은 아닌 걸로 보인다"며 "박 전 대통령이 아직은 '불순물'이 섞이는 그런 방식은 싫어한다"고 보수통합 관련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또 다른 정치권 핵심 관계자도 통화에서 "박 전 대통령이 '지금의 우리공화당으론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걸 들었다"며 "보수진영 대안정당으로 우리공화당을 생각했지만, 자신의 명예회복과 탄핵의 부당성을 알리기엔 당 분위기가 쇄신이 안 되는 것 아니냐는 뜻으로 이해됐다"고 말했다.
지난달 17일 왼쪽 어깨 수술을 받기 위해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했던 박 대통령은 현재 수술 후 같은 곳에서 재활치료를 진행 중이다. 구치소 수감 중에도 자신의 측근 유 변호사의 접견만 허용했던 박 전 대통령은 병원에서도 역시 같은 방식을 고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 측근인 유 변호사는 통화에서 "안 그래도 여러 명이 '박 전 대통령이 우리공화당에 경고성 메시지를 낸 것'에 대해 내게 물었는데, 사실이 아니다"라며 "누군가 '자가 발전'을 하는 것 같은데 그냥 내버려 두고 있다"고 부인했다.
◇ 우리공화당, '조국 사태' 계기 지지율 하락·태극기 주도권 상실
2017년 3월 31일 구속 수감된 이후 약 2년 7개월 간 침묵했던 박 전 대통령이, 탄핵 정국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정치적 발언을 던지면서 당장 우리공화당 내에선 파장이 일고 있다.
당 안팎에선 '조국 사태'를 거치는 동안 우리공화당의 지지율 하락, 태극기 세력에 대한 주도권 상실 등이 박 전 대통령을 움직이게 했다는 게 중론이다.
한국당을 비롯한 정치권과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범국민투쟁본부 등이 함께 개최한 지난 3일‧9일 광화문 반(反)조국 집회엔 대규모 인원이 결집했다. 특히 3일 집회는 광화문과 시청 일대가 인파로 가득 차는 모습이 연출돼 주최 측에선 약 300만명이 모였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문제는 탄핵의 부당성과 박 전 대통령 석방을 주장하며 매주 장외집회를 열었던 태극기 세력이 반(反)조국 집회를 계기로 흡수되는 이미지를 주면서, 사실상 우리공화당이 주도권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두 달 이상 이어진 조국 사태 속에서 우리공화당은 '지지율 하락'이라는 악재를 맞기도 했다.
지난 6월 대한애국당에서 당명을 바꿔 재창당한 우리공화당은 출범 한 달 만인 7월 3주차(YTN 의뢰‧리얼미터 발표, 지난 7월 15~19일,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지지율 2.4%를 기록하며, 민주평화당(1.6%)을 누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조국 사태가 시작된 지난 8월 중순 이후엔 1%대로 하락했다. 리얼미터가 발표한 10월 4주차(TBS 의뢰, 지난 10월 21~23일,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심위 홈페이지 참조) 우리공화당 지지율은 1.6%로 민주평화당(1.6%)과 같은 수치를 기록했다.
◇ 보수대통합 과정 '고립' 가능성·우리공화 '투톱' 갈등설도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내 비당권파(15명) 사이에 보수통합 논의가 서서히 진행되면서 자칫 고립될 수 있다는 우려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유승민 전 대표가 황교안 대표에게 보수통합 논의를 위한 만남을 공식 제안한 가운데 황 대표 측 또한 이에 화답하면서 긍정적인 기류가 흐르고 있다. 우리공화당 입장에선 한국당이 탄핵을 주도한 유 전 대표 측과 먼저 손을 잡을 경우, 보수통합에 합류할 명분을 찾지 못한 채 고립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공화당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투톱' 홍문종‧조원진 대표의 갈등설도 박 전 대통령의 의중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당 탈당 후 지난 6월 재창당에 합류해 공동대표를 맡은 홍 대표와 탄핵 사태 이후 대한애국당을 이끌어 온 조 대표는 크고 작은 사안에서 부딪혀 온 것으로 알려졌다. 홍 대표와 조 대표 모두 이날 통화에서 "갈등설이라고 부를 정돈 아니다"라고 애써 부인했지만, 당내 관계자들은 '상당한 갈등'이 있다고 전했다.
당내 한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인사 문제에서부터 당내 전략 등을 두고 양측이 부딪혀 최고위원회의에서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며 "수감 중인 박 전 대통령에게 서로를 비난하는 편지가 하루에도 수십통씩 날아든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을 종합하면 박 전 대통령 입장에선 현재 '우리공화당 체제'로 내년 총선을 치르기는 어렵다고 판단, 보수통합 합류와 선거연대를 포함한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박 전 대통령이 이르면 다음달 중순 안에 새로운 메시지를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당내 관계자는 통화에서 "빠르면 다음달 초에 박 전 대통령이 특정 인사들에 대한 병실 면회를 허용할 수도 있다고 들었다"며 "박 전 대통령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당이 힘을 잃기 때문에, 이제는 공식적으로 의사 표명을 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