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 가산점? 누군 고발 안 당하고 싶었나"

나경원 "수사대상 의원들, 공천에 가산점"
당내서도 법 무시·역차별이라는 지적 제기
그저 정치적 수사?…임기연장 포석 해석도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최근 '패스트트랙 고발사건' 수사 대상이 된 의원들에게 공천에 가산점을 줄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과 관련해 안팎에서 빈축을 사고 있다.

23일 복수의 의원들에 따르면 나 원내대표는 전날 당 의원총회에서 "패스트트랙 사건은 판사 출신인 제가 검토한 결과 법률적으로 문제 될 것 없다"며 "공천에서도 불이익 없을 것이고 오히려 가산점을 받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날 취재진과 만난 나 원내대표 역시 "정치적 저항을 올바르게 한 것에 대해 가산점을 주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발언 배경을 설명했다.

다만 이런 방침을 원내대표 스스로 정할 권한이 없는 만큼 황교안 대표에게 필요성을 건의했고,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취지의 답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2일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 참여해 당내 조국 인사청문회 대책TF팀 표창장 수여식을 보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뒷모습(사진=김광일 기자)
최근 21대 총선이 6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사건에 연루된 지역구 주자들이 구설에 오르는 경우가 적지 않은 상황. 그렇지 않아도 법적 대응에 고심하던 후보들은 '수사를 받는다'는 점이 경쟁자들에게 이용되면서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한다.

나 원내대표의 이번 발언은 당사자들을 진정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수도권의 한 중진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지역 정치판에서는 경쟁자들이 그 사람들(수사 대상자)을 가리켜 '저 사람 공천 못 받는다'라거나 '나중에 당선 무효형 나오면 선거를 다시 치러야 할 수 있다'고 말하고 다닌다"면서 "그런 점에서 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격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당내에서는 고발이나 소환 대상에 포함됐는지를 기준으로 가점을 준다면 법 규범을 무시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고, 외려 다른 후보에게 역차별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률가 출신 한 중진 의원은 "아무리 그래도 우리 당이 명색이 법치에 가치를 둔 보수정당인데 불법적인 사안을 우대한다는 건 어불성설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고발 대상에 없었던 한 재선 의원은 "그때(충돌 당시) 저도 드러눕고 '나를 밟고 넘어가라'라고 했는데 고발을 안 당하고 싶어서 안 당했겠냐"며 "그것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외부에서도 십자포화가 쏟아진다. 공천을 도구로 범죄를 조장하느냐는 논리다.

더불어민주당은 "법을 위반하는 것이 '저항'으로, 폭력과 무력을 행사한 것이 '기여'로 간주되는 '자유한국당식 공천'이 이뤄진다면 한국의 정치 역사상 다시 없을 역대급 코미디 공천을 방불케 할 것(남인순 의원)"이라고 비판했다.

바른미래당은 "한국당식 폭력우대 정책이 개탄스럽다(김정화 대변인)"라고, 정의당은 "완전히 조폭 중에도 상조폭(윤소하 원내대표)"이라고 각각 맹비난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그럼에도 당시 배석했던 한국당 의원들이 누구도 반발하지 않았던 이유는, 대부분 이 발언을 그저 '정치적 수사' 정도로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러 장의 고발장에 동시에 이름을 올린 한 의원은 "그냥 듣기 좋으라고 말하는 '립 서비스'니까 문제 제기하지 않았지만 의원들 가운데 상당수는 발언 자체에 불쾌해하기도 했다"며 "레토릭(정치적 수사)이었다고 하더라도 하지 말아야 할 얘기였다"고 밝혔다.

이런 탓에 나 원내대표의 이번 발언은 임기 연장을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의심도 나온다. 임기는 오는 12월까지지만, 의총 추인을 받으면 총선 후까지 임기를 늘려 공천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영남권 한 중진 의원은 "나 원내대표가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 얄팍한 수를 쓴 것 같다"며 "가산점 전략은 개인적으로 무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황교안 대표는 23일 부산 부경대에서 열린 '공정 세상을 위한 청진기 투어' 뒤 가산점에 대한 취재진 질문에 "당을 위해 헌신하고 기여한 분들은 평가해야 하지 않겠나. 그런 관점에서 이해해주면 좋겠다"라며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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