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로 이뤄지는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무단진입에 대한 우리 공군전투기의 대응 출격은 일상이 됐고 지난 7월에는 독도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 조기경보기를 향해 우리 공군전투기가 경고사격을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특히 러시아는 한국과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한 공군 간 직통전화(핫라인) 개설 등을 논의하기 위한 합동군사위원회를 열기 직전인 22일에도 전투기와 전략폭격기 등 군용기 6대로 4차례나 카디즈에 진입하면서 한반도 주변 상공을 휘저었다.
한국이 설정한 방공식별구역 즉 카디즈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을 명백히 한 것으로 앞으로도 카디즈 무단 진입과 이에 따른 우리 전투기들의 대응 출격이 반복될 전망이다.
각국의 군용기들이 가까이 접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발적 충돌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의미다.
힘의 논리가 최우선일 수밖에 없는 군사세계. 동북아 상공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 중·러 군용기들의 일상화된 카디즈 무단 진입과 우리 전투기들의 차단비행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은 일반적인 방공식별구역(ADIZ,Air IdentificationZone)앞머리에 KOREA를 상징하는 'K'자를 붙인 것이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로 일본방공식별구역은 ZADIZ, 중국방공식별구역은 CADIZ로 불린다.
방공식별구역은 국제법상 영토의 12해리(22.224km) 범위내 상공인 영공을 수호하기 위해 그 외연해 설정한 또다른 구역이다.
국제법상 영공은 아니지만 영공침범을 사전에 방지하고 우발적 충돌을 막자는 취지로 각국이 알아서 설정해 발표한 구역이다.
각국 공히 '영공은 아니지만 우리 영공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관할하는 구역이니 이곳에 진입할 때는 사전에 통보하고 양해를 구하라'는 의미다.
각국이 상대국을 고려해 이를 지키면 좋지만 제주도 남방 '이어도' 상공처럼 한중일 3국의 ADIZ가 겹치는가 하면 러시아처럼 스스로 방공구역을 설정하지 않고 남의 나라 방공구역도 인정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드나드는 나라도 있어 갈등이 커지고 있다.
방공식별구역 무단 진입은 훈련비행임을 내세워 '영공 침범은 아니니 할테면 해보라'는 식의 힘의 과시인데 러시아가 올해들어 카디즈를 침범한 사례만 20여회, 중국 군용기는 25회 이상 카디즈를 침범한 것으로 파악된다.
군 당국에 따르면 한,중,일 3개국의 방공식별구역이 겹치는 이어도 일대 상공에서는 수시로 3국 군용기 비행이 혼재해 출격 대응의 의미 자체가 없고 이어도 쪽에서 북상하거나 러시아 전투기처럼 북쪽에서 남하해 카디즈 내 비행을 지속할 때 우리 공군 전투기가 출격해 차단비행 등 대응 조치를 한다.
군 당국에 따르면 방공식별구역 KADIZ는 현재 30여개 국가가 설정해 운용하고 있는데 한국방공식별구역 카디즈는 6.25 전쟁이던 1951년 3월 22일 설정됐다.
중공군의 공습에 대비하고 한국의 방공망을 강화하기 위해 미국 태평양 공군이 설정했다.
당시에는 중공군과 북한군의 항공작전능력을 고려해 남쪽으로는 마라도 남방 6.5NA(Nautical Mile)까지만 설정돼 이어도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69년 9월 일본이 서쪽으로 이어도 주변 수역을 포함하는 자디즈를 설정해 우리 비행정보구역(FIR)에서 발생하는 조난 사고에 대한 수색 구조작업도 일본과 사전협의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됐다.
한일간 방공식별구역 조정이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2013년에는 중국까지 카디즈와 일부 중첩되고 이어도 주변 수역을 포함하는 동중국해방공식별구역을 우리 정부와 사전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선포했다.
이에 우리 정부도 2013년 11월 카디즈 조정에 돌입했고 12월 8일 정부안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뒤 12월 15일 14시에 발효시킴으로써 62년만에 이어도 주변 수역을 포함하는 새로운 카디즈를 설정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군 당국은 카디즈 조정에 대해 "군사분계선 이남 지역의 영토와 영해,관할수역 상공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해 국익을 증진했다"고 평가한다.
또 제주도 남방구역에서 우리 영공을 수호하기 위한 방공완충 공간을 확보하고 남방 해상교통로와 항보를 보호할 수 있게 됐고 카디즈의 남방 경계선을 비행정보구역과 일치시킴으로써 국제 항공질서와 민간 항공기의 안전한 운항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주변국 신뢰를 증진할 수 있도록 했다고 평가했다. (2016 국방백서 중)
그러나 중국의 경우 우리 카디즈를 수시로 침범하면서도 중첩된 방공식별구역 및 양국의 방공식별구역에서의 우발적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협의에 상당히 소극적이다.
사드 문제로 한중 국방교류와 협력 논의조차 중단시켰던 중국은 최근에서야 차관급 회의체를 재개시켰지만 우리 국방부가 제안한 군사적 충돌 방지를 위한 논의 자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히 일본과는 2014년 3월 방공식별구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방지를 위한 전술조치 절차가 합의됐다.
다만 일본의 경우 지난 7월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영공침범 때 우리 전투기가 경고사격을 하는 등 대응조치를 한 것에 대해 자신들의 영공을 침범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유사시 독독에 전투기를 출격시킬 수 있다는 내용을 자신들의 국방백서에 포함시키는 등 독도 도발을 계속하고 있다.
수시로 한일 방공구역에 무단 진입하는 중러 군용기에 맞서 한국과 일본도 출격대응을 해 수십대의 전투기가 얽히는 것처럼 우리 공군의 입지는 중국과 러시아 또 러,중 연합 나아가 한미일 안보협력이라는 같은 틀 속에 있으면서도 잠재적 도발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일본에 대한 견제도 게을리할 수 없는 형편이다.
◇ 전문가들 "군사세계, 힘의 논리가 우선일 수밖에 없어…강하게 대응하는 수밖에"
23일 한국과 러시아 군 당국이 서울에서 우발적 충돌방지, 공군 간 직통전화(핫라인) 개설 등을 논의하기 위한 합동군사위원회 회의를 비공개로 열었다.
이번 회의는 러시아 군용기 6대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전역에 진입하는 상황이 발생한 지 하루 만에 열린 것이다.
회의를 하루 앞두고 상대국 방공식별구역에 무단 진입하고 주변을 휘저은 러시아의 행태로 봤을 때 결과는 뻔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지난 7월 23일 러시아 A-50 조기경보관제기가 독도 영공을 침범하는 사건이 발생해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되자 러시아 측이 협의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지만 방공식별구역 무단 진입에 대한 우리 측의 강력한 항의에도 러시아는 국제법을 준수하며 훈련비행을 했을 뿐이라는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의도적으로 카디즈를 무시하는 것임을 알면서 회의를 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신종우 국방안보포럼 분석관은 "러시아의 경우 방공식별구역 설정 없이 국제법을 준수한다고 주장하지만 흑해 일대에서는 미국 정찰기만 떠도 난리를 친다"며 상대국 군용기 진행방향 앞을 가로지르는 위협비행 등도 서슴지않는다고 말했다.
이번에 러시아가 최신예 전투기인 SU-35까지 동원해 카디즈를 침범한 것은 의도적으로 공중전에 뛰어난 전투기를 내세워 동북아 상공에서 힘의 우위를 보여주고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에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신 분석관은 "한미일 안보협력이 흔들리기도 하지만 결국 군사세계에서는 힘의 논리가 우선시될 수밖에 없다.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계속 밀린다"며 "우리 전투기의 차단비행 강화 등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