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남의 정자로 인공수정한 자녀, 친생자로 봐야"

"아버지-자녀 유전자 달라도 원칙적으로는 친생자"

유전자 검사 (사진=연합뉴스)
유전자 검사 결과 아버지와 자식의 유전자형이 맞지 않아도 원칙적으로는 민법상 친생자로 추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특히 부부가 '진정으로 동의해' 제3자의 정자를 이용한 인공수정으로 자녀를 낳은 경우엔 친생자임을 부인하는 소송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23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A씨가 자녀 두명을 상대로 낸 친생자관계부존재 확인 소송의 상고심에서 A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각하'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다수의견 9명)는 "아내가 혼인 중 남편의 동의를 받아 제3자의 정자를 사용한 인공수정으로 자녀를 출산한 경우 민법상 친생 추정 규정을 적용해 그 자녀를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아내가 혼인 중 임신해 출산한 자녀라면,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남편과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밝혀졌더라도 여전히 남편의 자녀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유전자가 일치하지 않는 것 만으로는 원칙적으로 '친생추정의 예외'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A씨와 전 부인 B씨는 합의 하에 제3자의 정자를 받아 인공수정으로 첫 아이를 출산했다. 이후 B씨는 다른 남성과의 사이에서 둘째 아이를 출산했고 A씨는 두명 모두 자신의 자녀로 출생신고를 마쳤다.

이후 A씨와 B씨가 이혼소송을 하면서 A씨는 두 자녀를 상대로 친생자 부존재 확인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유전자검사 결과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확인됐다.

그러나 1심은 "원고의 아내가 혼인 중 피고(자녀)들을 임신한 이상 원고의 친생자로 추정된다"며 "무정자증 진단이 있다고 해서 친생추정의 예외를 인정할 수 없다"고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의 내용에 대해 판단한 '기각'과 달리 소 자체가 부적법하다는 의미다.

항소심에서는 첫 번째 자녀에 관한 판단에서 A씨가 제3자 정자를 이용한 인공수정(AID)에 동의한 이상 친생자로 추정된다는 논리를 덧붙였다. 둘째 자녀에 관해서는 (부친과 자식 간) 유전자형이 달라 친생추정의 예외가 인정되지만 이미 '유효한 양친자관계'가 성립된다며 역시 항소를 기각했다.

민법 제844조는 혼인 중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하고 있다. 이를 부인하려면 친생자가 아님을 안 날로부터 2년 내에 친생부인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다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부부가 같이 살지 않는 등 외관상 명백한 사정이 있으면 소송을 통하지 않더라도 친생추정을 부인할 수 있다는 '예외'를 인정한 바 있다.

해당 전원합의체 판결이 1983년 나온 것이어서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이러한 좁은 예외사유가 변경될지 주목됐으나 그대로 유지됐다.

이번 판결에 따라 향후 AID 출생 자녀에 대한 친생부인의 소에서는 부부간 '진정한 동의가 있었는지'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전망된다. 동의가 있었다면 이번 사례처럼 소 자체가 각하될 사안이기 때문이다.

유전자형이 다른 것으로 확인된 자녀의 경우 친생부인의 소 제기 자체는 가능하지만 기존과 마찬가지로 언제 친생자가 아님을 알았는지가 쟁점이 된다. 다만 제소기간이 경과하면 기존과 마찬가지로 친생자 추정을 번복할 수 없다.

한편 이번 판결 관련 반대의견(1명)으로는 부부가 동거하지 않는 것뿐 아니라 명백한 '다른 사정'이 있는 경우에도 친생추정의 예외가 인정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해당 반대의견은 "유전자형이 맞지 않는 것(배치)과 별거 유무, 혼인·가족관계 파탄 여부, 친생자 관계를 부정하려는 사람과 그 목적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해 친생추정의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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