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감독은 22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자전 에세이 '야구는 선동열' 출판 간담회를 열고 48년 야구 인생을 돌아봤다. 1996년 일본 진출 당시 출간한 에세이 '정면으로 승부한다'가 대필이었다면 이번에는 직접 저술한 책이다.
이날 선 감독은 "지인들의 권유도 있었고, 딸도 27일 결혼하는 터라 이참에 내 야구 철학을 담은 책을 써보기로 했다"면서 "젊은 청년들에게 좌절을 극복한 내 경험담을 전해주고 싶었다"고 출간 배경을 설명했다. 선 감독은 딸 민정 씨는 이번 주말 신부가 되면서 사위를 맞는다.
이번 에세이를 관통하는 화두는 실패와 성찰이다.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투수로 추앙받는 선 감독이지만 실패의 순간을 먼저 떠올렸다.
그래서 3부로 구성된 에세이의 첫 소제목이 '나는 국보가 아니다'이다. 선 감독은 "일본(주니치)에서 가서 첫 해 실패를 봤을 때 엄청난 좌절을 맛봤다"면서 "2군도 아닌 3군 교육리그에 갔던 것을 잊을 수가 없더라"라고 돌아봤다.
한국 야구를 대표했던 그였기에 상실감은 더 컸다. 선 감독은 고려대 시절 1982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MVP에 등극했고, 이후 프로에서는 엄청난 결과를 냈다. 1985년 KIA의 전신 해태에서 데뷔해 1995년까지 11시즌 367경기 146승 40패 132세이브 평균자책점(ERA) 1.20을 기록했다. 80년대 한국시리즈(KS) 4연패와 90년대 2번의 우승을 이끌었다. 정규리그 MVP도 3번이나 수상했다.
그런 선 감독은 일본 진출 첫 해 부진에 빠졌다. 선 감독은 "국보급 투수라고 하는데 나에게는 과분한 별명이었다"면서 "그런데 실패를 하면서 내 자신에게 너무 부끄럽고 '진짜 우물 안 개구리구나,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선 감독은 이듬해 멋지게 재기에 성공해 센트럴리그 최다 세이브(38개)를 기록했다. 이후 1996년부터 1999년까지는 10승 4패 98세이브의 성적을 올리며 '나고야의 태양'으로 칭송받았다. 선 감독은 "당시 고(故)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선은 태극기를 등에 지고 있는 것 같다'고 하더라"면서 "그걸 내려놓고 나 자신을 위해 던지면 더 편안하게 던질 수 있을 것이라는 조언을 해줬다"고 귀띔했다.
이후 선 감독은 2017년 7월 국가대표 사령탑을 맡아 지난해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냈다. 그러나 일부 선수의 병역 혜택 논란에 시달렸고, 현역 감독으로 처음으로 국회 국정감사장에까지 증인으로 나서는 우여곡절 끝에 자진사퇴했다.
이에 대해 선 감독은 "지난해 국감장은 서서는 안 될 자리라 생각했다"면서 "유니폼이 아닌 사복을 입고 하는 인터뷰에 당황했고 어처구니 없는 질문을 받았을 때 어이가 없었다"고 돌아봤다. 당시 손혜원 의원(현 무소속) 등은 "(아시안게임) 우승이 뭐 그렇게 어려운 우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대표팀을 무시하는 발언까지 내놨다.
이어 선 감독은 "많은 팬들이 지켜보는데 부끄럽다고 생각했다"고 마음고생을 털어놨다. 일부 선수를 뽑는 데 청탁을 받지 않았느냐는 의혹까지 받은 선 감독은 이후 국민권익위원회에 행정 소송까지 걸었다. 선 감독은 "너무 억울하다 보니 권익위에 해명해달라 했는데 아직도 답변이 없다"면서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선 감독은 80년대 군사 정권 시절 안기부에 의해 메이저리그(MLB) 진출의 꿈이 무산된 일과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형 때문에 야구를 시작하게 된 사연 등을 에세이에 풀어냈다. 우상인 고(故)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과 인연, 퍼펙트 게임과 노히트 노런 등 대기록 무산에 대한 소회 등을 담아냈다.
선 감독은 "선수와 지도자로서 인생의 3분의 2를 살았다"면서 "이제 조금 더 공부를 해서 야구를 위해 일할 수 있는 나머지 3분의 1 인생을 계획한다"고 밝혔다. 선 감독은 내년 2월 MLB 뉴욕 양키스의 스프링캠프에 참가해 선진 야구 시스템을 공부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