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을 하면서 '나는 뭘 하고 있나' '나는 어떤 상태인가'를 보게 됐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다가와요. 제게 '너는 괜찮아?' '넌 어떻게 살고 있어?' '뭘 하고 싶어?'라는 물음을 던지는 이야기였죠."
정유미는 이 영화에서 우리 시대 여성의 전형인 김지영을 연기했다. 23일 개봉에 앞서 최근 서울 삼청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마주한 그는 "처음 시나리오를 다 읽은 뒤 덮고는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며 말을 이었다.
"'하루하루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을 소홀히 대하지는 않았나'라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거든요. 그것을 이해해 준 가족에게 고맙더군요. 당연하다고 여겨 온 것들 혹은 잊고 지내 온 것들에 대한 미안함이랄까요. 그것을 깨닫고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인지는 했잖아요. 그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시나리오에게 고마웠어요."
그는 "이 이야기는 82년생 김지영이라는 한 여성의 것이 아니라, 갇히고 상처받은 사람이 그것을 부수고 나가려는 이야기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이 영화 엔딩이 부조리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소설과 다른 데 대해서는 "시나리오를 봤을 때 그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며 "소설과 영화는 각자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소설이 화제에 오른 때와 마찬가지로, 제작이 결정되고 캐스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부터 일부 누리꾼들의 혐오 발언에 시달렸다. 이에 대해 정유미는 "(악플에 대한 걱정은) 별로 없었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현실감이 없었으니까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어요. 물리적인 비판은 너무나 듣고 싶죠. 모든 사람이 다 좋게 볼 수는 없잖아요. 놀라기는 했는데, 그것이 일을 하는 데는 전혀 방해 되지 않았어요. 악플이 전체 의견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표현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을 테니까요."
◇ "좋은 이야기 잘 전달해야 한다는 마음 하나뿐이었다"
"사실 제가 조금 비겁해서 (다양한 캐릭터가) 무리 지어 나오는 작품을 선호해요. (웃음) 앞에 서서 이야기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타입이거든요. 그러한 제가 '82년생 김지영'을 한다는 것이 모순될 수도 있죠. 무엇보다 이야기가 주는 힘이 컸습니다."
그는 "출연을 결정하는 데 많은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원래 제 성격대로라면 제작·홍보 기간에 해야만 하는 일 등을 염려하면서 고민했을 텐데 그런 생각이 없었다. 왜 그랬는지…"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정유미는 앞서 지난 14일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첫 공개된 언론시사회 현장에서 '출연에 용기를 낸 것 아니냐'는 취재진 물음에 "진짜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은 따로 있다"고 답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인터뷰에서 그에게 '진짜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라고 묻자, "말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부하며 환하게 웃었다.
"사람들의 그러한 (진짜 용기를 내야 하는) 행동을 보면서 저 역시 용기를 냅니다. 그것이 제 안에 쌓이면서 작품을 결정할 때와 같은 선택의 기로에서 도움을 줘요. 제 몫은 배우로서 작품 안에서 맡은 역할을 제대로 보여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가 건강하게 있어야겠죠. 그래야 (작품을 보는) 좋은 눈도 생길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