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사자 유해, 발굴 8년만에 가족 찾아 …"초상화로 보던 아버지"

1951년 평창 일대서 전사한 김홍조 하사…딸 DNA로 확인

고 김홍조 하사 초상화(사진=국방부 제공)
8년 전 강원도 평창 일대에서 유해로 발굴된 6·25 전사자의 신원이 군 당국의 유전자(DNA) 검사기법을 통해 확인됐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2011년 5월 6일 강원도 평창군 면온리 일대에서 발굴한 6·25 전사자 유해가 고(故) 김홍조 하사(현 계급 일병)로 확인됐다고 20일 밝혔다.

김 하사의 신원 확인은 2000년 4월 유해 발굴을 위한 첫 삽을 뜬 후 136번째이며, 유가족 DNA 검사기법을 적용한 두 번째 사례다.

국방부는 "고인의 딸 김외숙(69) 씨가 등록했던 DNA를 통해 신원을 최종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으며, 향상된 유전자 검사기법을 적용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국방부조사본부 과학수사연구소는 지난 6월부터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유전자 중 2013년 이전에 검사했던 6·25 전사자의 유전자 7천400여 건을 대상으로 유가족 유전자 4만3천여 건을 대조한 결과,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최근 김영인 결사유격대원의 신원을 DNA 검사기법으로 확인한 이후 이번에 같은 방법으로 김홍조 하사의 신원을 확인했다"면서 "앞으로도 신원 확인이 지속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신원이 확인된 김홍조 하사는 국군 제7사단 8연대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1951년 2월 11일, 당시 중공군이 경기 양평과 강원 원주 일대에 공격을 가하자 미 8군사령관은 적을 포위 섬멸하기 위한 격멸 작전을 계획했다.

국군 제3군단은 제7사단을 31번 도로(영월~평창선) 동쪽의 산악지대로 진출 시켜 미 10군단의 공격을 지원했다.

김 하사는 강원 평창 면온리 일대에서 속사리~하진부리 부근 전투(1951년 2~3월) 과정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유해는 미국 별 문양 단추 1점과 고무줄 1점의 유품과 함께 평창 일대서 발굴됐다.

고인은 1923년 7월 15일 경남 울주군 상북면에서 4남 4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19세에 결혼해 슬하에 4자녀를 둔 가장으로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졌다. 농사와 부둣가에서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리다가 27세의 나이로 6·25 전쟁에 참전했다.

그는 어머니에게 "제대하고 꼭 호강시켜드리겠습니다"라고 마지막 말을 남기며 입대했지만,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고인의 남겨진 유품이 없어 슬퍼하던 부인 정종인 씨는 남편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사진을 본뜬 초상화를 액자로 만들어 방에 걸어 놓았고 매일같이 돌아오기를 기도하며 지냈다.

초상화로 봤던 아버지를 68년 만에 만나게 된 딸 김외숙 씨는 "유해발굴 사업을 통해 아버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드디어 이루어졌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이 순간을 맞이하시면 좋을 텐데, 지금에서야 아버지가 가족 품으로 돌아오신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유가족과 협의를 거친 후 귀환 행사와 안장식을 통해 유해를 추후 국립현충원에 안장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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