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도 대권출마를 직접 입에 담아 얘기한 적 없지만 여당인 민주당이나 시청안팎에서는 그의 대선 출마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언행으로 미뤄볼 때 박 시장 스스로도 '큰정치'에 대해 이런 저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여의도정치와는 전혀 다른 뿌리를 갖고 있지만 1천만 수도 서울의 시장직을 맡아온데다 여권의 차기주자 중 1명으로 거론되면서 그에게 쏠려 있는 관심은 어떤 여의도정치인보다 커 변방에서 중원으로의 진출을 실감케 한다.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선후보와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를 이뤄낸 뒤, 2012년 서울시장 취임초만 해도 박원순 시장의 대중적 지지도는 차기 주자들 중에서도 수위를 다툴 정도로 고공행진을 거듭했지만 수도 서울의 시장직을 8년째 수행중인 지금은 지지율이 3~4%로 바닥을 치고 있다.
안팎에 벌어진 정치 환경과 지형은 더욱 좋지 않다. 서울의 시장직을 만 7년동안 수행하다 보면 수많은 지지자를 얻을 확률도 높아지지만 반대로 수많은 적 내지 반대자를 양산할 가능성도 동시에 갖게되는 건 정해진 이치이다.
시가 펴는 정책의 수혜를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외되는 시민도 그만큼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박시장의 정책 가운데 도시개발과 주택공급분야를 보면, 무분별한 개발을 억제하고 기존도심을 재생시키는 것과 강남북의 균형개발을 유도하는데 방점이 찍혀 있다.
자연히 빠른 개발을 기대하는 강남이나 목동, 여의도의 수 많은 재건축 대기 단지들은 불만을 갖게 된다. 학교급식으로 수많은 아이들이 혜택을 입지만 급식수준이 낮아졌다고 보는 일부 중산층 엄마들은 제 돈을 받고 제대로 된 급식을 하라는 반대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한마디로 뭉뚱거리면 장기집권의 피로현상으로 요약할 수도 있다. 박원순 시장 스스로는 재임기간 ▲찾아가는 동사무소와 ▲청년수당, ▲균형개발, ▲도심미세먼지 대책 등 수많은 정책을 추진해왔고 이에대한 긍정평가도 많다고 하지만 그만큼 많은 수의 정책이 추진되는 동안 부정평가도 누적돼 온 게 사실이다.
시민 다수는 박원순 리더십을 원해서 박 시장에게 지지를 보냈고, 민주당 정권에 민주당 서울시장 구도까지 갖춰져 시정추진의 동력이 배가된 측면이 있으나 3선 동안 추진된 정책이 피로감도 동반한 것.
박시장 발(發) 개혁정책들이 하나씩 추진되면서 싱가포르가 수여하는 세계도시혁신상 등 유수의 상을 휩쓸고 세계도시포럼 같은 곳에서는 가장 앞서가는 메트로폴리스로서의 서울의 위상이 높을 뿐아니라 박시장의 리더십과 존재감도 작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례없는 서울시장 3선을 기록한 시점에서 시정 주도세력과 시민들 간에 일종의 괴리감이 생긴 건 왜일까, 국내와 외국에서의 시정평가가 엇갈리고, 시정성과가 피부로 잘 와닿지 않는 이유는 뭘까
대중지지율의 지속적 하락을 마주하면서 박 시장 측근에서는 '현재의 지지율은 무의미하다'고 위안하지만 '해온 일'과 '시민평가의 미스매치'를 뭘로 설명해야할 지 난감해하는 분위기도 읽힌다.
대중정치인은 지지율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데 지지율이 바닥이니 고민이 없을리 없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현실참여적이면서 인권변호사로서 활약해 온 점에서 박원순 시장과 공통점이 있다. 정치지형에 따라 작은 민주당과 민자당, 민주당으로 당적이 바뀌는 와중에서도 비타협적이면서도 개혁적인 컬러를 일관되게 유지해왔고 이 과정에서 강고한 지지세력이 형성된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민주정권을 연장하는 경우였지만, 현대 정치사에서 전임자와 차별화를 시도하는 경우도 많았다. 역으로 지지세력 구축에 실패해 대권의 목전에서 고배를 마신 주자들도 많다. 국민대중들은 늘 새로운 것에서 신선함을 느끼고 변화를 찾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인권변호사로서 불의에 항거하고 시민운동을 통해 끝없이 사회개혁와 변화에 힘을 보태온 경력, 이를 바탕으로 친서민 행보를 보이고 사상 첫 3선 서울시장이란 이력을 써가고 있지만 이런 성과를 '브랜드화'하는 데로 까지는 나아가지 못하는 느낌이다.
최근들어 박시장이 보여주는 여권 지지층 흡수노력은 정치인 박원순의 정체성을 더욱 모호한 지점으로 흘러가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진보가 옳다면 진보 스탠스를 취해야 하나, '진보라는 이유'로 '진보 지지세 결집'을 목적시 하는 건 경계해야할 부분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와 그 측근들로 대표되는 적폐세력이 국민적 항거로 법적 단죄를 받게 된 걸 끝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부터 20년동안 이어져온 '진보-보수 대립정치'도 그 생명력을 다해가고 있다.
지난 세월 '어느 진영에서도 국민을 두루 아우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한 채 대립과 반목을 이어가고 있는게 대한민국 정치현실이자 한계이기도 하다.
대중 정치인은 시대변화를 먼저 읽고 국민들의 요구가 어느 지점에 있는 지 파악하는게 무엇보다 긴요하다. 하지만 여의도정치로 대변되는 현실정치는 '대립의 프레임'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 국민들은 여기에 절망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은 경남 시골 출신으로 농부의 아들이란 출신성분으로 보나 시민운동가 출신의 3선 서울시장이란 경력으로 보나 누구도 갖지 못했던 이력에 더해 수더분하고 친근한 이미지까지, 차별화된 정치적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최근 "사람을 대할 때, 상대를 존중하고 착하게 대하는 게 기본 아니냐"며 "모든 정치인들이 여의도 정치는 잘할지 몰라도 시민을 생각하고 세상을 바꾸는 일은 (제가)자신이 있다"며 기성 정치인과의 차별성을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그의 행보에서는 '여권 지지세력을 품고가겠다'는 의지가 너무 강하게 드러난다. 조국사태에 대한 그의 즉자적 지지표명이나 광화문광장에 대한 대응, 정치색 짙은 이슈에서 현 여권 지지세력과 비슷한 스탠스(입장)를 나타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세력을 흡수하겠다는 판단이 개입됐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 지지세가 몰릴 지도 미지수지만 이런 행보가 반복될수록 박원순의 정체성은 희미해지는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
같은 진영의 지지를 모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영에 의존한 채 독자적 지지세력을 구축하지 못해 대권도전에서 실패한 사례는 근현대 정치사에서 다반사였다.
박원순 시장의 한 측근은 "최근 박원순 시장이 가진 강점과 색채를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는 조언이 많은 것으로 안다"면서 공감을 표시했다.
박 시장은 이번주 연이어 열린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뚜렷한 소신발언으로 야당의 반발을 샀지만 대중들로부터 큰 관심을 끌었다. 예년 국감에서 볼 수 없었던 단호하면서도 절제된 어조로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혀 야당 의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고 한다.
박 시장은 이와관련해 18일 CBS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번 국감에서 말이 안되는 얘기를 하는 경우가 많아 배려와 절제를 하면서도 제가 할 얘기를 다했다"고 말했다. 적절한 시점에 적당한 방법으로 서울시장이 할말을 했기 때문에 국감 참석자는 물론 시민들도 발언에 주목한 것 아닐까, 박원순만의 정치를 생각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