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는 연예계 활동을 하는 동안 악성 댓글(악플)과 루머로 인한 고통을 계속 호소해 왔다. 이에 한동안 활동을 쉬기도 했지만, 악플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더군다나 설리는 그간 소신 발언으로 페미니즘과 노브라 등 각종 논쟁의 중심에 섰고, 이에 악플은 더더욱 공격에 힘을 쏟았다.
설리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악플은 기승을 부렸다. 설리의 비보를 전하는 기사나, 인터넷 커뮤니티, 그리고 고인을 추모하는 동료 연예인들의 SNS에서도 악플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로인해 온라인 상에는 이러한 악플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급속도로 터져나왔다. 급기야 '악플금지법'을 제정하라던가, 혹은 악플을 줄일 해법으로 '인터넷 실명제'를 거론하며 시급히 도입을 해야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15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서 '악플'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면, 설리의 사망 이후 하루새 여러건의 청원이 등장했다. 그 중 과반수가 넘는 청원이 '인터넷 실명제' 부활을 주장하고 있다.
한 청원자는 "인터넷 실명제는 폭주하는 인터넷의 발달을 막을 수 있는 방범책"이라며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주장했고, 다른 청원자는 "자신의 신상이나 언론에서의 노출을 감안하여 댓글을 달 수 있도록 해 불필요한 악플, 집요하게 한 사람을 무는 악플들을 없애고 건전하고 깨끗한 소셜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또 다른 청원자는 "내 실체를 숨기고 말하는 것은 때로는 개인의 '자유'로 그치지 않는다. 범죄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면서 "인터넷 실명제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 등 여러 부작용에 대해서도 충분히 검토해 주시고, 대안 마련과 국민들의 동의를 얻어 더 나은 국가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고 행동해 주시길 바란다"고 청원 취지를 설명했다.
방송인 오정연도 이들의 의견에 궤를 같이했다. 오정연은 같은 날 자신의 SNS에 "2012년 인터넷 실명제의 위헌 판정 근거는 '표현의 자유 제한' 도무지 납득하기 힘들다"면서 "'(무분별한)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 하에 그간 몇 명의 꽃다운 생명이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아 끝내 아스러져버렸나"라고 썼다.
그러면서 "자신의 발자취에 책임을 지니는 행동은 인간의 기본 의무인데, 익명성은 그 기본을 망각하게 내버려두는 위험한 장치"라며 인터넷 실명제가 더 늦기 전에 꼭 도입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설리의 죽음 이후 국민 10명 중 7명에 이르는 대다수는 '인터넷 실명제' 도입에 찬성하는 의견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15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2명을 대상으로 '인터넷 댓글 실명제 도입'에 대한 국민 여론을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p)한 결과 응답자의 69.5%가 찬성(매우 찬성 33.1%, 찬성하는 편 36.4%)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리얼미터는 이번 조사에서 거의 모든 지역과 연령층, 이념성향 등 모든 계층에서 찬성 여론이 대다수로 나왔다고 밝혔다.
◇ '인터넷 실명제' 대체 뭐길래?
'인터넷 실명제'는 온라인 상 게시판 등 익명성을 악용한 사이버 범죄가 발생하며 사회적 피해가 커지자 글을 올릴 때 본인 확인을 거치도록 하는 제도로 지난 2002년 처음으로 추진 됐다.
하지만, 2007년 시행 이후 익명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 주민등록정보의 노출에 따른 인권의 침해, 국민의 정치참여 제한 등 문제점이 제기됐고, 2012년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위헌 걸정이 내려져 폐기됐다. 헌재는 인터넷 실명제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공익의 효과도 미미하다고 봤다.
다만 헌재는 2015년 공직선거법상 인터넷 실명제는 합헌이라는 결론을 내리며 여지를 남겼다.
당시 헌재는 인터넷 실명제를 선거 공정성 확보를 위해 필요한 조항이라고 판단하며 실명 확인 후에도 글쓴 사람의 개인정보는 노출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조항이 정치적 익명 표현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후 '드루킹 사건' 등 굵직한 관련 사안이 등장할 때마다 인터넷 실명제 부활의 찬반 논의는 뜨겁게 달궈졌다.
◇ 인터넷 실명제, 어떻게 봐야 할까?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최진봉 교수는 악플 등 문제에 있어 '인터넷 실명제' 도입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정작 실행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최 교수는 15일 "악플 등 문제에서 접근하면 인터넷 실명제는 필요하다. 하지만 정치·권력 비판 차원에서 접근하면 '인터넷 실명제'는 논란이 될 수 밖에 없다"며 "누구든지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게 언론·개인 표현의 자유의 기본적 취지기 때문에 공론화 하는 과정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인터넷 실명제 도입 시) 표현의 자유의 위축 우려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며 "정치·권력의 자유로운 비판이 어려울 수 있어 인터넷 실명제 도입은 실행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는 '인터넷 실명제' 도입과 관련한 여론이 형성되는 것과 관련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면서도 보다 직관적인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평론가는 16일 "'인터넷 실명제'라는 것은 자신의 견해를 인터넷을 통해 그 어떤 제약이나 부담에서 벗어나 표현할 수 있는 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라면서 "표현의 자유 속에서 비판 당하는 것이 두려운 입장의 사람들이 편의에 맞게 선택적 정의로 표현한 것으로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익명 뒤에 숨어서 난동을 부리는 사람들이 확실히 문제이긴 하지만, 그런 문제들은 법을 통해 얼마든지 징계할 수 있다"며 "적절한 절차를 갖춰서 당사자를 찾아낸 다음에 처벌을 할 수 있는데, 현재 그러한 사람들이 적절한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인터넷 실명제를 통해 실명이 드러나봤자 잡히지 않고 오히려 대다수 사람들의 의견을 위축 시켜서 여론의 소통 공간으로써 민주적 참여가 없는 인터넷을 만들어 버린다"고 짚었다.
띠라서 "인터넷 실명제가 아닌 차별 금지법이나, 혐오발언 금지법 등의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평론가는 또 이번 설리의 안타까운 비보와 관련해 악플도 문제지만 유사 언론이 더욱 문제라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김 평론가는 "유사 언론 등 많은 매체가 자극적으로 제목을 뽑고, 어뷰징 기사를 쓰는 등 자극적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 더 문제라고 본다"며 "하지만 이번 사건 역시 유사 언론들은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지 않고 애꿎은 인터넷만 문제다 얘기한다"고 역설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다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