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현실적으로 한일 정부의 입장차가 너무 커 곧바로 문제가 해결되기보다는 이를 풀 수 있는 디딤돌을 만드는 정도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국무총리실은 13일 오후 보도자료를 내고 "이낙연 총리가 일본 나루히토 천황(일왕)의 즉위식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오는 22일부터 24일까지 일본을 방문한다"고 밝혔다.
총리실 관계자는 "이 총리가 22일 열리는 즉위식과 궁정 연회, 23일 열리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주최 연회에 참석할 예정이다"며 "이밖에 일본 정재계의 주요 인사와 면담하고, 동포 대표를 초청하는 간담회 등을 열 예정이다"고 설명했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이 총리가 우리 정부의 입장과 메시지를 일본에 전달하는 등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아베 총리와의 회담을 할지 여부다.
일단 아베 총리가 즉위식을 계기로 방일한 50여개국 인사와 개별 면담을 할 예정이고, 23일 오후에 열리는 아베 총리 주최 연회에 이 총리도 참석할 예정이기 때문에 가능성이 낮지만은 않다.
이에 대해 총리실은 "방일이 이제 막 확정됐고, 세부 일정은 지금부터 구체적으로 조율해 나갈 예정이다"고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앞서 일본 NHK는 지난 9일 "일왕 즉위식을 계기로 아베 총리가 한국 정부 측 대표로 참석이 유력한 이낙연 국무총리와의 단시간 회담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교도(共同)통신도 7일 외교 소식통 등을 인용해 "이 총리가 모리 요시로(森喜朗),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일본 총리와 회담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1989년 히로히토(裕仁) 일왕이 사망하고 이듬해 11월 아키히토(明仁) 전 일왕이 즉위할 때도 당시 강영훈 국무총리가 일본을 방문해 즉위식에 참석한 선례가 있다.
때문에 이 총리의 방일 역시 이같은 외교 관례 차원에서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측에서도 마이크 펜스 부통령, 중국에서는 왕치산(王岐山) 국가 부주석이 참석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정부 내 대표적인 일본통으로 꼽히는 이낙연 총리의 방일이 확정되기 전에도 그가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는 등의 방법으로 한일관계를 풀 수 있다는 관측은 계속해서 나왔었다.
곧바로 정상회담을 추진하기에는 현재 한일간의 간극이 상당히 크기 때문에, 외교 관례 등을 감안해서라도 먼저 이 총리의 방일을 통해 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총리는 동아일보 기자 시절 도쿄 특파원 경험이 있어 일본어에 능통한데다, 국회의원 시절에는 한일의원연맹 간사장과 수석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한일친선협회 일본 측 회장 자격으로 방한한 가와무라 다케오(河村建夫) 일한의원연맹 간사장과 만나, 당시 20주년을 맞은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언급하며 한일 관계를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하자고 의견을 모으기도 했다.
이 선언은 지난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일본 총리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했었다.
정부 관계자 등에 따르면, 올해 여름 무렵부터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조치와 한국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등으로 한일관계가 얼어붙은 상황에서도 일본 인사들은 줄지어 이낙연 총리를 만나려고 했다.
지난달 2일에도 이 총리는 한국을 방문한 가와무라 간사장과 만나 강제징용 소송, 일본의 수출 규제 강화 조치, GSOMIA 종료 문제 등을 놓고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다.
성공회대 일본학과 양기호 교수는 "현실적으로 한일 정부간의 입장차가 크고, 아베 총리를 만난다고 해도 그 시간은 아주 짧을 것이다"며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는 방법 등으로 현재 국면을 풀어나가자는 강한 메시지를 일본에 전하고, 일본 측의 요구를 들어 보면서 문제를 풀 수 있는 디딤돌을 만들면 성과는 있다고 본다"고 내다봤다.
양 교수는 "일본 외교가 현재 '아베 외교'가 돼 있는 만큼 주변의 전직 총리들이나, 가능하다면 나루히토 일왕을 직접 만나는 것도 이 총리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면서도 "한일 정상 간 직접 만나지 않으면 문제를 풀 방법이 없다. 현재 일본 정부의 입장이 워낙 완강해 이낙연 총리가 간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고 신중하게 진단했다.